사랑하고 존경하는 회원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의 상임공동의장으로 일해온 최교진입니다. 이른 더위가 온다 싶더니 장마가 시작되었습니다. 큰물 피해 없이 장마가 끝나길 바래봅니다. 이런 저런 전염병이 돌고 있다 해서 걱정이기도 합니다. 특별히 회원님들과 가족여러분께서 건강에 유의하시길 바랍니다.
오늘 글을 올리는 까닭은 참여자치연대의 대표직을 사임한다는 송구한 말씀을 올리기 위해서입니다. 지난 총회에서 여러분들께서 보내주신 과분한 성원에 힘입어 1년간 참여자치연대의 대표자로 일하며 시민사회의 발전을 위해 봉사할 것을 약속했는데, 이를 지키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진심으로 사과 드립니다.
참여자치연대 상임의장직을 사임하는 이유는 정치개혁운동에 본격적으로 헌신하기 위해서입니다. 저는 최근 정치개혁의 핵심 내용으로 추진되는 정당개혁운동에 힘을 보태고자 범개혁신당추진국민운동본부에 대전지역을 대표하여 참가하였습니다.
우리 단체는 정치적 독립성을 엄격하게 견지하기 위해 임원직을 맡은 신분으로는 정당에 직을 갖지 아니하도록 임원 규정에 명문화되어 있습니다. 범개혁신당추진국민운동본부는 비록 정당이 아니지만 국민참여를 통한 상향식 공천을 이루고자 하는 정당의 창당을 추진하는 조직이라는 점에서, 참여자치연대의 정치적 독립성에 대한 내외의 우려가 생길 것을 고려하여 상임의장직을 사임키로 한 것입니다.
회원 여러분들께서도 잘아시겠습니다만 우리나라의 정치현실은 너무나도 암울합니다. 선관위가 2000년에 조사한 바에 따르면 우리나라에는 현재 12개의 정당이 있고, 당원 수는 총 611만 명에 이른답니다. 선거인수 대비로 18.3%이고 가구수로 대비하면 38.8%이므로 열 집 중에 네 집에는 정당원이 한 분씩 있는 셈입니다. 가히정당의 천국입니다. 그러나 실제 당비(회비)를 내는 진짜 당원은 전부를 통틀어 2만4천명에 지나지 않습니다. 서울 참여연대에 돈 내는 회원 1만3천명의 두배가 안되고, 환경연합 회원 5만명의 절반에도 못 미칩니다.
이런 유령 정당들이 국가권력을 장악하고 국민의 혈세를 보조금이란 명목으로 몇백억원씩 받아 흥청망청 쓰면서 나라를 망치고 있습니다. 나라를 동서로 쪼개고 할거하면서 보스 한사람이 공직후보자를 지명하고, 이를 당선시키기 위해서 검은 돈을 거래하며 유권자를 동원하는 관행이 일상화 되어 있습니다. 지역주의와 연고주의에 기대어 연명하는 정당들은 말로는 국민 모두를 대표하는 국민정당을 표방합니다만 실제로는 그 누구도 대변하지 않습니다. 오직 자신들의 잇속만 챙길 뿐입니다. 억울한 일을 당한 서민들의 눈물을 닦아줄 정치를 찾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민주화되었다고는 하지만 낡은 관행과 소수 정략꾼들이 판치는 복마전의 토대는 바뀌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정당들이 민주화의 발전을 기화로 국정을 좌지우지하는 와중에 사회적 빈부격차는 더욱 심해지고 있습니다. 대학의 서열화 날로 가속화되면서 과잉교육열로 인한 고통을 전국민이 받고 있지만 해결책은 나오지 않습니다. 서울은 포화의 악순환에 고통받고 지방은 영양실조로 죽어가도 정치권은 해답을 내놓지 않습니다. 전쟁의 위협이 제기돼도 당리당략적인 정쟁만 일삼습니다.
강력한 개혁 열망에 힘입어 출범했던 민주정부들이 국가가 감당하여야 할 개혁 요구를 감당하지 못하는 현상이 반복되면서 국민의 실망도 커지고 있습니다. 기성의 정부가 싫지만 대안을 찾을 수 없어 투표율은 갈수록 낮아지고 있습니다. 작금의 정치 풍토에서 마땅한 대표자를 찾을 수 없는 유권자들의 무력감과 정치인들끼리의 다툼은 더 심해지고 있습니다. 우리 국민들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더러워서 피하고만 있는 가운데 정치인들은 무능과 부패의 나락으로 한없이 추락해만 갑니다. 반공냉전주의 망령이 되살아나는 가운데 보수언론과 지역할거적 정치세력의 정파적 갈등의 탈출구는 보이질 않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꼭 해결되어야할 갈등들이 정치를 통해 국가정책에 반영되고 조정되는 것이 아니라 기득권 집단에게 유리한 쪽으로 해석, 귀결되거나 심지어 기득권 집단에 불리하다면 문제로도 취급되지 않는 일이 너무나 많습니다.
낡은 정치가 우리 사회의 정상적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는 점은 온 국민이 목도하는 사실입니다. 정치가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앞선 결정권을 행사하며 모든 것을 끌어들이는 블랙홀이면서 동시에 쓰레기통이 되어 버렸다는 사실을 누가 부인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이런 현실을 뜯어고치기 위해 제 몸을 던지기로 결심했습니다. 참여해서 바꾸자고 결단했습니다. 시민운동을 해왔던 진정성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이겠지만 정치의 주체인 정당을 국민의 것으로 되돌리고, 정치를 근본적으로 개혁하지 않고는 우리들이 사회운동을 통해 추구해온 목적의 달성이 어렵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송구한 말씀이지만 개인적으로 민주화운동과 관련해 3차례 투옥 당했고, 교사로서 3차례 해직도 겪었습니다. 대학시절의 강제징집, 해직, 그리고 투옥의 기억보다도 정당의 개혁, 정치의 개혁에 투신하고자 결심하기까지 더 두렵고 어려운 선택의 고뇌가 있었다는 점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정치는 더러운 것이고 시민운동하는 사람이 기웃거려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통념도 고려해 보았습니다. 그 동안 시민운동하고 교육운동한 것이 결국은 개인적 영달을 위한 것이 아니었냐는 비난이 염려스럽기도 했습니다. 최교진 개인에 대한 비난이 두려워서가 아니었습니다. 참으로 형극의 길을 함께 해 온 민주화운동 동지들의 숭고한 뜻까지 훼손시키는 것이 아닌지 저어되었기 때문입니다. 사회운동의 자리에서 시민운동을 계속하는 것은 쉽지만은 않지만 명예로운 길입니다. 그러나 정당의 개혁, 정치의 개혁에 전면에 나서는 길은 낯설고 어설픈 일일 뿐 아니라 30년간 계속해 온 사회운동보다 더 어렵고, 고통스러울 것이라는 예단을 지우기 어려웠습니다.
아이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교육을 바로잡자고 나섰던 故 이순덕 선생을 생각했습니다. 폐암으로 일찍이 우리 곁을 떠나면서 그 엄청난 교육청과 공안당국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을 살리는 교육개혁의 소신을 꺾지 않았던 그 마음을 생각했습니다. 정치가 더럽다고 해서 우리마저 외면한다면 어떻게 뜯어고칠 수 있을지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나아졌지만 15만원의 월급을 받고도 기쁘게 일해온 사회단체 상근자들의 더불어사는 공동체의 꿈을 생각했습니다. 최교진 개인에게 어려움을 가져다주는지 아닌지, 최교진 개인의 명예에 보탬이 되는지 안되는지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발전에 보탬이 되는지 안되는지를 생각키로 했습니다. 민주주의의 발전의 역사에 저의 몫이 있다면 그 몫에 순종할 것을 기도했습니다.
저는 믿습니다. 혼자 꾸는 꿈은 꿈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수십 수백만이 같이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범개혁신당을 만드는 일에 참여했습니다. 부족한 것이 많고 염려스럽기도 합니다. 꼭 필요한 일이니 내 한 몸 던진다고 결심했지만, 감옥가는 일을 하는 것보다도 더 겁이 많이 납니다. 그러나 참여자치연대의 회원을 생각하면서 힘을 냈습니다. 정말 바쁜 생활, 어려운 형편에도 보이지 않게 우리 사회를 바꾸는데 힘을 보태주신 회원 분들을 생각하며 힘을 냈습니다. 정말 맑은 눈동자의 아이들을 생각하며 힘을 냈습니다. 회원님들의 너그러운 이해를 바랍니다.
회원여러분! 참여자치 연대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권력으로부터 독립된 운동을 계속해 나가야 합니다. 정치가 아무리 바뀌어도, 어떠한 권력도 자신을 은폐하고자 하는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우리 참여자치연대는 이런 권력을 감시하고 권력을 국민의 것으로 만들어가도록 계속 노력해야 합니다. 투명하고 합리적인 사회운영을 위한 실천을 게을리 해서는 안됩니다. 정치개혁을 위한 저의 소신이 여러분들의 이런 노력에 해가 되질 않기를 바랍니다. 옳은 것은 옳다고 하고 그릇된 것은 잘못되었다고 이야기하는 우리 단체에 정치개혁운동가가 임원직을 갖고 있는 것이 부담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참여자치연대의 상임의장직을 사직하고자 합니다.
비록 의장직은 물러나지만 참여자치연대의 정신을 잃지 않고 살겠습니다. 회원으로서의 도리를 다하는 시민의 자리를 양보하지 않을 것입니다.
긴 글을 읽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평화와 더불어 사는 세상을 꿈꾸며 인사드립니다.
회원님 댁내에 행운과 건강이 함께 하시길 기원합니다.
2003. 6. 30
최교진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