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대 국회 해부 ②선거법 위반] 16대 국회는 \'반칙왕\'
선거법 위반자 중 한나라당 소속 50.9%, 민주 24.6%, 우리당 21.1%
참여연대 장흥배 기자 2004-01-15
인터넷참여연대는 오는 4월 실시될 17대 총선에 맞춰 16대 국회와 국회의원을 분석하는 기획 시리즈를 연재한다. 기획 시리즈는 부정부패, 선거법 위반, 의정활동 등 주요 쟁점별로 구성된다. 그 두 번째 기획으로 선거법 위반을 다룬다. 이 기사가 다루는 선거법 위반은 16대 국회의원이거나 국회의원을 역임한 308명의 인사 중 2000년 4·13 총선과 이후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에서 선거법 위반으로 기소돼 재판을 받은 의원들에 한한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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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법은 선거라는 게임에 임하는 선수들이 지켜야 할 규칙이다. 선거법이 다른 법률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 법을 만든 주체들이 자신이 만든 법의 구속을 가장 집중적으로 받는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16대 국회의원들은 자신들이 만든 게임의 규칙을 얼마나 지켰을까?
의원직 상실 12명 포함해 전체 57명 유죄 판결
한 마디로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은 선거법을 잘 지키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현재 16대 국회의원이거나 16대 국회의원을 역임했던 308명 중 57명이 선거법 위반으로 재판을 받았다. 전체 의원의 18.5%가 자신들이 만든 게임 규칙을 위반했다는 의미다. 선거관리위원회나 사법 당국의 선거법 위반 처벌 의지가 훨씬 강해졌다는 것을 고려하더라도, 무려 57명의 선거법 위반은 15대 국회 선거법 위반 기소자가 10명이었다는 점에 비춰 16대 국회를 \'반칙왕\'이라 불러도 족할 듯하다.
판결에 따라 의원직 유지냐 상실이냐를 기준으로 선거법 위반자를 분류하면 유지 의원이 43명, 상실 의원이 12명, 기타 3명이다. 기타에 해당하는 3명은 1심에서 의원직 상실 판결을 받고, 2심에서 의원직 유지 판결을 받았으나 개인 사정으로 의원직을 사퇴한 의원, 당선 무효 대법원 확정 판결 이전에 의원직을 사퇴해 재선거에서 당선된 최돈웅 의원, 그리고 재판 도중 사망한 심규섭 의원 등이다.
의원직을 유지한 43명의 경우 ▲1심부터 상급심까지 의원직 유지에 해당하는 판결을 받은 이가 30명 ▲1심에서 의원직 상실에 해당하는 판결을 받았으나 상급심에서 의원직 유지 판결을 받은 경우가 13명이다.
선거법 위반 의원이 소속된 현 당적을 기준으로 살펴보면 전체 57명 선거법 위반자 가운데 한나라당이 절반에 가까운 29명-50.9%, 민주당이 14명-24.6%, 열린우리당 12명-21.1%, 자민련 1명-1.8%, 기타 1명 순으로 나왔다.
의원직 상실의 경우로만 살펴보면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각각 6명씩 반반을 차지했다. (민주당 의원직 상실 의원의 경우 현재 당적을 확인할 수 없어 의원직 상실 판결 당시의 소속당 인 민주당으로만 통계를 잡았다.)
선거법 위반, 개혁 보수 성향 불문
장정언 민주당 전 의원의 경우 본인을 포함해 회계책임자, 선거사무장, 직계비속 등 무려 4명이 선거법 위반으로 피소돼 16대 선거재판에서 한 소송에 가장 많은 피고소인이 발생한 경우다. 장 의원의 경우 회계책임자와 선거사무장은 1심에서 당선 무효에 해당하는 판결을 받았으나 2심에서 벌금형을 받았고, 직계비속은 1심에서 벌금형을 받았다. 본인만 당선 무효 판결을 피하면 의원직을 유지할 수 있었으나 1심에서 징역 8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2심에서 벌금 500만원을 받아 결국 의원직을 상실했다.
최돈웅 한나라당 의원의 경우는 현행 선거법의 맹점을 그대로 드러낸 경우다. 최 의원은 1심에서 회계책임자가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으로 당선 무효형을 선고받았으나, 대법원 확정 판결 이전에 의원직을 사퇴해 해당 지역 재선거에 다시 출마, 당선된 경우다. 현행 선거법은 본인이 아닌 선거운동 관계자의 선거법 위반으로 당선무효 형이 확정될 경우 당선무효와 함께 재출마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형 확정 전에 의원직을 사퇴하면 당선무효가 아니어서 출마가 가능하다는 선관위 해석에 따른 행동이었다. 그렇게 해서 재당선된 최 의원은 \'차떼기\' 수법의 한 주역으로 등장하게 된다.
열린우리당 소속 선거법 위반 의원의 경우 특이한 케이스는 눈에 띄지 않지만 1심에서 당선 무효형을 선고받았으나 2심에서 당선 유지에 해당하는 판결을 받아 의원직을 유지하는 의원들 13명 중 과반수가 넘는 7명이 현 열린우리당 소속이라는 점이 눈에 띈다. 뒤에서 다시 얘기하겠지만, 열린우리당의 경우 선거법 위반자에 대한 법원의 관대한 처분의 최대 수혜자라고 말할 수도 있다.
선거법 위반과 관련 또 한가지 눈에 띄는 점은 국민들에게 비교적 개혁적으로 알려진 인사들도 상당수라는 점이다. 한나라당, 민주당, 열린우리당 등 당을 불문하고, 각 당에서 비교적 개혁 의원으로 통하는 의원들도 게임 규칙을 다반사로 위반한다는 점은 우리 국회의 전반적인 선거법 준수 정도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신속한 선거재판 필요성 다시 확인
지난해말 대법원에서 당선 무효가 확정된 한나라당 김윤식 전 의원의 경우는 선거재판의 신속성과 관련해 많은 논란을 빚었다. 대법원 확정판결에 따라 당선무효가 된 인사가 의원직을 거의 4년 가까이 수행해온 것이다.
2000년 개정된 현행 선거법은 \'선거사범에 대한 재판은 1심은 기소 후 6개월 이내에, 2심과 3심은 각각 3개월 내에 판결을 선고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국회의원들이 고의적으로 재판을 질질 끌면서 사실상 임기를 채우는 것에 대한 국민적 비판에 따라 선거재판은 1년 이내에 끝내야 한다는 취지로 개정된 것이다. 이에 따라 대법원의 선거사범재판 예규 역시 피고인이 정당한 사유 없이 출석하지 않을 경우 구인·구속 등 불이익 처분을 내릴 수 있게 했다.
그러나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이 상실된 11명(1인은 자료 불충분으로 제외) 인사들의 재판절차를 통해 확인한 결과, 기소일로부터 1심 재판까지 소요되는 평균 기간이 약 9개월 15일로 나타났다. 법 규정보다 3개월 이상이 더 소요되고 있는 것이다. 기소일로부터 최종 확정일까지 걸리는 평균 기간도 1년 8개월로 나타나 정해진 기간인 1년보다 8개월이나 지연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법원 확정 판결 전에 의원직을 사퇴한 김영배 민주당 전 의원의 경우 기소일부터 확정 판결까지 무려 2년 5개월이 걸렸다. 김윤식 의원은 2년 2개월이 소요됐다. 현 선거사범 재판일정대로라면 대법원까지 의원직을 다투는 경우 당선무효 판결에 해당하는 많은 의원들이 임기 수 개월 전까지 의원직을 수행하는 경우가 다반사로 생길 수 있다는 의미다. 물론 이는 해당 의원들이 고의적으로 재판기일을 연기시키는 이유가 크기도 하겠지만, 개정된 선거법과 대법원 시행규칙에 따라 법원이 더 강력한 사법적 수단을 강구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 지적이다.
1심에서 당선무효에 해당하는 판결을 받고도 상급심에서 의원직을 유지할 수 있는 판결이 다반사로 일어나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현행 선거법은 \"후보 본인이 100만원 이상 벌금형을 받거나 선거 사무장 또는 회계책임자, 직계가족 등이 선거와 관련 징역형을 선고받으면 그 후보의 당선을 무효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1심에서 당선무효에 해당하는 판결을 받았으나, 상급심에서 의원직을 유지할 수 있는 판결을 받은 13명을 분석한 결과 1심에서 본인이 벌금 100만원∼150만원을 받았으나, 2심에서 50만원∼80만원 벌금형으로, 불과 몇 십만원 벌금의 차이로 의원직을 건진 경우가 상당수다. 또 선거관계자가 1심에서 징역형을 받았다가 2심에서 벌금형으로 바뀌어 의원직을 유지한 경우도 상당수다. \"4년 동안 국민을 대표할 의원들의 막중한 정치적 책임에 비춰 벌금 몇 십만원 차이로 의원직을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은 사법의 권위를 스스로 떨어뜨리는 일\"이라는 지적이 나올 만한 것이다.
또 하나 지적될 것은 전체 선거법 위반에 관한 재판에 있어 검찰이 기소하지 않아 상대 후보자의 재정신청에 의해 재판이 받아들여진 경우가 전체의 20%나 된다는 점이다. 이는 선거법 위반자에 대한 검찰의 처벌 의지가 여전히 미흡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와 더불어 선거법 위반자의 피선거권 제한 규정을 대폭 강화한 범국민정치개혁협의회의 선거법 개혁안이 국회를 통과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