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아줌마!”를 불러도 소용없다
박 찬 인(충남대 교수, 생명의 숲 운영위원)
우리 집 아이들도 삼겹살을 곧잘 먹는다. 얼마 전에도 온 식구가 삼겹살집에 갔다. 부모님을 포함하여 모두 여섯 명이므로 우리는 늘 두 상을 차지한다. 우리 부부는 늘 서로 다른 상에 앉아 고기 굽는 일을 맡는다. 한창 먹새가 좋은 아이들은 익는 게 무섭게 먹어치운다.
녀석들은 상당히 오래 전부터 식당에 가면 항상 내 옆에 앉는다. 아빠가 고기를 더 맛있게 잘 굽는다는 이유에서이다. 아내는 가끔 입을 뽀로통하지만 애들 입맛은 정확하다. 학생들 데리고 회식을 할 때도 서로 내 옆자리에 오려는 것을 보면 고기를 잘 굽는다는 게, 사실은, 꽤 알려져 있나보다.
생 삼겹살이나 목(삼겹)살 전문 식당에서는 대부분 돌 판 아니면 무쇠로 된 판에 고기를 굽게 된다. 어느 판이든 판이 뜨거워진 후 생고기를 올리는 게 좋다. 고기를 올려놓은 다음에는 적당한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조급하게 고기를 뒤집으면 판에 고기가 달라붙으며 살점이 떨어진다. 달라붙은 고기는 타게 되고 다시 올려놓는 고기마저 달라붙게 만든다. 이런 작업이 몇 차례 반복되면 고기 맛이 없어진다. 결국 외쳐야 한다. “아줌마, 판 바꿔주세요!”
처음 판에 고기를 올리고 진득하게 기다린 후 뒤집으면 고기가 판에 묻어나지 않는다. 제대로 잘 떨어질 뿐만 아니라 판에 기름이 고루 배어 뒤집은 고기도 붙지 않는다. 생고기를 새로 올려도 오히려 고소한 맛이 배면 배었지, 타서 쓴맛을 얻지는 않는다. 여기에 신 김치를 올려 익혀 먹으면 고기 기름이 배어 정말 맛나게 된다. 말하자면, 앞의 달라붙게 만드는 판이 악순환을 부른다면 말끔한 판은 그에 대응하는 ‘선순환’을 반복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건 역시 불판에서 눈을 떼지 않고 관리하는 일이다. 적당한 시간을 염두에 두고, 익은 건 내려 놓고, 새로운 고기를 알맞은 양으로 올려놓고, 적정 시점에 뒤집고... 끊임없이 살피고...
20-30년 전에는 고기 맛이나 고기 부위 같은 것을 별로 따지지 않았다. 그저 많이 먹을 수 있으면 그게 고마웠다. 하지만 지금은 ‘고기 먹여줄 테니 가만있어’라는 말로 되는 세상이 아니다. 시대가 바뀐 것이다. 시대착오란 별 게 아니다. 세월의 변화에 눈과 귀를 닫아버리면 그것이 바로 시대착오이다.
지난번에는 고기를 굽다가 문득 정치판도 이런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4년 전 “바꿔! 바꿔!”라고 외치며 상당수의 의원을 바꿨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던 까닭은 ‘판’을 바꾸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다는 깨달음이 든 것이다. 지역분할구도라는 판, 보스와 패거리 중심의 판, 섬김과 살림이 아닌 누림과 누름의 판이라면, 찌꺼기가 누적된 판이라면, 어떻게 맛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탄 찌꺼기가 잔뜩 붙은 판에는 생고기를 올려도 분명히 제 맛을 내지 못한다. 정말 정치판도 그런 걸까... 그렇다면 분명히 판을 바꿔야 한다. 이번에는 “아줌마!”를 불러도 소용없다. 우리가 바꾸는 것이다. 여기에서도 더 중요한 것은 물론 판을 바꾼 다음 끊임없이 살피고 관리하는 일일 것이다.
<편집자 주>본 글은 대전플러스(4월 1일자)에도 실린 글이며, 필자의 동의를 받아
본 단체 홈페이지 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