굽이도는 금강, 소리 없는 아우성
-시민에 의한 금강 대탐사 참가 후기
잊지 못할 금강 탐사를 마쳤다.
일상에서 벗어나 보자는 뜻으로 참여한 금강대탐사가 이렇게 즐겁고 많은 깨우침을 줄줄은 몰랐다.
많은 것을 느끼게 했으며 소리 없는 아우성, 아니 외면했던 외침이 금강에는 쌓여 있음을 가르쳐 주었다.
심신의 고단함을 벗고자 했으나 온 세상이 소중함으로 가득 찼음을 깨쳐주었다.
비가 오는 길을 걷고 강을 건너고 자전거를 탔으며 뗏목을 만들고 타보았다.
강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도 잠깐 씩이나마 만났다.
장수 뜬봉샘에서 발원한 금강을 따라 진안 무주 금산 영동 옥천을 거쳐 대청호까지의 1차 탐사구간은 상류의 생태계를 중심으로 체험하는 길이었다.
금강의 가장 큰 지천이며 금강의 북쪽 발원지로 부터 시작한 미호천, 금강 생태계의 가장 큰 적(敵)의 하나일 대전의 하수처리장을 거쳐 공주 부여 강경 서천의 길을 따라 마치 원점을 회귀하는 듯이 굽이도는 금강의 끝인 하구둑까지 다녀온 2차 탐사는 강과 더불어 발달한 문화와 역사, 그리고 인간에 의해 버려진 썩어가는 강을 보았다.
금산 방우리의 금강-알려진 동강처럼 휘휘도는 곳이다
금강 천리 길을 온전하게 걷지는 못했다.
말 타고 스치듯 지켜본 것과 다를 바 없는 열흘이었다.
그러나 내 사는 고장, 내 사는 지역의 사람과 자연과 문화가 베풀어주는 은총을 느끼기에는 충분했다.
새롭게 겸손하게 배우고 만나야 한다는 가르침을 얻게 해준 소중한 기회였다.
평생에 한번 얻을 수 없는 기회를 준비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다.
정확히 장마에 맞추어 시작된 탐사지만 바로 그 비가 뜨거운 해를 가려주었기에 일사병을 피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어찌 보면 이도 모두 금강 탐사를 보살펴 주시는 한울님의 은총이 아니고 무엇이랴!
탐사를 통해 웅덩이를 채우지 않고는 앞으로 나가지 않는(盈科後進) 물,
낮은 곳으로 낮은 곳으로 흘러 결국 모두를 하나로 만드는 물의 힘을 보았다.
장대 빗속에서 탁류가 된 금강의 물 흐름이 아무런 소리를 내지 않는 것을 숨죽여 지켜보지 않을 수 없었다.
북쪽을 행해 흘러 반역의 강이라 불리기도 하는 금강이 엄청난 물을 안고 보내면서도, 물의 파동이 마치 유막처럼 얼룩이는 것을 통해 엄청난 흐름을 증명하면서도 아무런 소리를 내지 않는 소리 없는 아우성, 무서운 힘을 보여주었다.
그 넉넉함과 함께 두려운 힘도 보았다.
하류지역의 탐사를 통해선 강이 우리에게 가져다 준 풍요와 문화 그리고 그 찌거기가 만든 인간의 철없는 자연에 대한 도전, 죽어가는 강의 절규를 확인할 수 있었다.
아, 아는가! 금강은 강이 아니라 금강호(湖)인 것을!
하구둑으로 인해 금강은 갇힌 물이 되어 물과 생태계가 왜곡되고 죽어가는 현실이 참담하다.
상류 지역에서는 심각한 지역간 격차와 낙후, 수질 보전을 위한 각종 규제가 상류지역민을 위한 것이 아닌 남을 위한 타율적 규제가 된 현실을 들었다.
이런 타율적 규제의 현실 속에서도 선한 마음을 갖고 사시는 적지 않은 분들의 세상살이가 동행한 우리를 감동 시켰다.
더 이상 아이들이 태어나지 않는 낙후된 마을의 고통을 벗어날 방법으로 생태계의 파괴라도 허용해야 한다는 심각한 생존요구, 절박한 개발 압력도 확인했다.
그러나 추진되는 개발들이 해당 지역민 모두를 위한 것이 아니라 외부자본과 지역의 일부 기득권을 위한 개발로 전락하고 있는 현실도 목도했다.
전체인구가 2만5천에 지나지 않는다는 무주군은 심각한 지역격차와 낙후된 지역현실을 45홀 규모의 골프장을 중심으로 한 기업도시를 만들어 낙후지역이라는 천형을 벗어나고자 몸부림치고 있다고 한다.
수도권 집중으로 인한 지역격차가 또 다시 왜곡된 방식의 개발을 강요하는 무서운 현실을 잊을 수 없다.
압축적 고도성장주의가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수도권 초집중이라는 큰 왜곡이 또 다른 왜곡을 연이어 부르고 있었다.
상하류 유역민 모두의 삶의 질을 높이는 길, 더불어 살아갈 길 찾기를 나의 숙제, 우리의 숙제로 새삼 고민하게 되었다.
낙후지역민들의 균형발전 주장 속에서 가려진 개발의 갈망, 인간다운 삶의 갈구를 이해하면서, 이 어려운 숙제로부터 도망가지 말자는 다짐을 해 본다.
북쪽 발원지인 경기도 안성과 충북 음성의 분기점에선 무수한 공장들이 산재해 있음을 보았다.
오직 수도권에 인접해 있다는 이유로 중부고속도로 인근에 흩어져 소재한 수많은 중소 공장들!
하수종말처리장도 만들어지지 않은 채 개별입지를 마다 않는 공장들로 인해 금강의 또 하나의 발원지는 신음하고 있었다.
남북이 같은 발원지고 낙후지역이지만 생태적 부담은 이렇게 달랐다.
수변지역이기에 먹고 살게 없다는 남쪽과 달리 북쪽은 돈이 되는 한도에서 난개발이 허용되고 있지만 낙후되어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공주 탄천에서 시작한 뗏목은 엄청난 호우에도 불구하고 제자리를 맴돌았다.
그 까닭은 바로 금강을 하구둑으로 막아 거대한 호수가 되어버렸기 때문이었다.
바닷물이 강경까지 밀고 올라오고 내려가는 속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던 뱃길이 없어졌고 생태계가 무너졌단다.
갇힌 금강물이 죽어가고 강과 더불어 번성했던 도시들은 인구 감소로 쇠잔해져 간다는 사실은 잘못된 근대화의 그늘일 것이다.
그러나 죽어가는 금강을 살리는 것이 쇠잔한 인근 도시들을 살리는 새로운 금강의 역사가 되어야 함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상류의 깨끗한 물을 대량으로 소비하는 대전권, 청주권은 하류에 무관심하고 하류는 하류대로 행정구역이 다르고 이해관계가 엇갈려 버려진 강의 신세가 된 것이 바로 금강 형편이 아닐까 싶다.
금강은 사람을 버린 적이 없지만 사람은 필요한 만큼 써먹고는 잊어버리고 있다.
그 아우성을 외면하고 있었다.
상하류민들 공히 금강의 최대 수혜자이며 공적(公敵)인 대전 사람들의 무관심과 운동가들의 나태함에 대한 질타가 적지 않았다.
강만이 아니라 강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요구는 분명했다.
금강이 소리 없이 굽이돌고 있지만 금강 유역민들의 원성도 그 못지않게 굽이돌아 소용돌이를 만들고 있었다.
옥천 어느 강가의 도라지 꽃
개별단체에서 이루어진 많은 탐사가 있었지만 여러 단체와 기관이 함께 어우러진 탐사는 처음이라니 더욱 뜻 깊다.
새로운 길 찾기를 시작한 것 자체만으로도 드높은 성과다.
유역권의 공생을 생각하는 뜻 그자체가 얼마나 소중한 일인가!
다만 앞으론 금강탐사의 경험을 모든 유역민들과 함께하기 위한 노력이 덧붙여지길 소망해본다.
참여자와 참여기관만의 경험이 아니라 모든 금강 유역민의 자산으로 금강탐사가 계속 이루어지도록 만들어가야 한다.
연차적으로 이어지는 탐사 과정을 통해 분야별 생태계 조사를 자료화하거나 하천정비사업의 실태를 조사하는 기쁨을 나누길 바란다.
유역별 수변지역민의 요구사항을 빽빽이 적은 공책을 쌓아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 못지않은 민심을 기록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파괴되는 금강을 지키는 지역마다의 절규에 동참하는 운동의 연속과정으로 탐사가 이루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여러팀들이 같은 기간 구간별 심층 탐사를 진행하고 한자리에 모여 금강의 애환, 참여의 보람을 나누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
금강탐사가 사회화된 탐사로 진화하길 소망한다.
끝없이 이어지는 흔하디 흔한 개망초의 생명력과 나름대로의 아름다움도, 금강이 피해가는 산과 어울려 펼치는 비경과 넉넉함, 부드러움도 잊을 수 없다. 함께한 탐사대원들의 따스함도 가끔씩 생각 날 것이다.
부드러운 지도력, 자신의 몫을 스스로 감당하는 아름다운 동행을 감행해준 탐사대원들을 잊을 수 없다.
흔한 것이지만 옥천 강가에 핀 보라색 도라지꽃의 찬란함, 강가에 나온 송아지와 어미 소의 다정함, 세계의 중심이 되게 해달라는 소망으로 한 퀘이커교도(무교회주의자)가 세웠다는 서천 아리농장의 아침햇발의 평화를 기억하리라.
금산 방우리에서 적벽강을 찾아 강을 건너는 중에 찍은 사진. 적벽강 찾아가는 길에 배탈이 나 등산수건의 다양한 용도(?)를 시연했던 것도 잊을 수 없다.
사무처장 김제선
시민에 의한 금강대탐사-뜬봉샘에서 하구둑까지』는
‘제4회 강의 날 대회조직위원회’가 주최한 행사로
2005년 6월 29일부터 7월3일, 7월 8일부터 12일까지
두 차례에 나누어 10일간 진행되었다.
집과 사무실을 비우도록 허락해주시고 여러모로 걱정해주신 분들께,
금강탐사로 기획하고 준비해주신 모든 분들께 사랑과 감사의 인사를 부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