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시민운동의 위기와 과제 김제선(대전참여자치연대 사무처장)
오늘날의 지역시민운동은 공통적인 어려움을 갖고 있다. 강한 국가와 약한 시민사회, 지방부재의 역사, 지역 사회 권력의 독과점과 일당지배형 지방정치, 지역시민사회의 미성숙과 운동 자원의 빈약과 같은 것들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최근 한국사회의 변동은 새로운 위기를 가져다주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지역개발을 위한 동원이 일반화되고 이 속에서 지역시민사회의 역할이 축소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세계화와 재벌중심 경제체제의 결과물로 심화 되고 있는 사회적 양극화의 폐해가 지역 사회에도 관철됨으로써 더욱 강화되고 있다. 지방자치 10년에도 불구하고 심화 되고 있는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는 주민들에게 자신이 거주하는 지역을 낙후지역이라는 인식을 강화시켜주고 있다. 여기에 상대적으로 경쟁력을 갖추고 있지 못해 지역사회의 지속가능성 마저 흔들리는 것은 아닌가라는 불안심리까지 가중되고 있다.
지방정치는 이러한 낙후지역이라는 문제의식을 지역개발 사업을 향한 지역민을 동원하는 기반으로 삼는다. 수도권은 물론 타지역과 대비해 우리 지역이 손해를 보고 있다는 지방정치 행정 엘리트들의 주장은 지역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 되고 토착 재력가들의 후원을 받아 사회적 켐페인으로 발전되는 사례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켐페인은 구시대의 권위주의적 동원이 포섭과 침투를 통한 동원으로 바꾸어 거번넌스를 표방하는 특징을 보인다. 이른바 역외로부터 재정과 자본을 유치하고, 첨단을 추구하며 거대한 것을 선호하는 식의 무조건적 개발론이 시민사회 내에서 합의되지 않은 상태에서 지역사회의 유일공론으로 확정되고 강행된다. 지역 사회 외부를 향한 동원은 지역발전을 위한 협력으로 치장되면서 지역사회 내부의 문제를 은폐함은 물론이다.
최근 개발지상주의는 지역할거형 정당의 기반으로 기능하기도 한다. 이른바 자민련으로 대표되었던 퇴영적 지역주의를 일정한 변형을 통해 재건하고자하는 시도가 활발하다. 아울러 무분별한 개발지상주의에 대한 시민사회의 비판은 지역발전의 공적이요 대안 없는 비판으로 매도되고 있다.
지역개발지상주의는 이제 일반적인 관행으로 정착되면서 지방정치내에서‘지역(개발)이익’이 ‘중앙당 당론’ 보다 중요하게 취급되고 이를 공개적으로 표명하는 지역할거형 정치행태로 진화하고 있다. 행정도시건설특별법에 대한 한나라당의 내분이나 호남고속철도 분기역 선정에 대해 집권여당인 열린우리당 충남도당이 반발하는 일들이 그 예일 것이다.
문제는 독과점된 지역 권력에 의해 추진되는 지역개발이 지역민 모두에게 골고루 혜택이 돌아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개발이익이 특정한 계층에 편중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빈약한 지역자금을 역외로 유출하는 통로가 되고 있다.
월드컵 광풍이 불 때 대전시는 1200억 규모의 축구전용경기장을 건설 했는데 순수 지방비의 규모가 800억이었다. 물론 공사는 외지의 대형 건설사가 수주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규모의 공사를 수주할 지역기업이 아예 없기 때문이다. 연간 신규 사업비로 시용할 가용재원 500억원 내외 밖에 되지 않는 대전시가 순수 지방비 800억을 쓰고도 지역자금을 역외로 유출시키고, 경기장 운영적자 보전을 위해 매년 수십억을 쓰는 낭비와 비효율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월드컵 경기장 건립비로 사용한 순수 지방비 800억원은 10억원 규모로 마을 도서관을 건립하는데 투자했다면 모든 마을마다 한개 씩의 도서관을 건립할 수 있는 돈이었다. 물론 10억 규모의 공사 80개를 발주하면 지역건설업체들이 모두 수주 했을 것이고 지역민의 고용이 늘어났음은 물론이다. 나아가 도서관 운영을 위한 추가적 고용과 학력 신장을 위해 고심하는 주부들을 도서관을 운영 보람된 자원봉사자로 참여 시키는 일도 가능했다.
이런 예는 끝이 없다. 1m 당 1억원의 건설비가 드는 지하철을 건설하니 교통분담율이 2.7%에(버스노선 2,3개의 효과) 지나지 않는다는 식이다. 2조원을 들이부은 대전지하철 1호선은 개통과 동시에 매년 300~500억원의 운영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나아가 과잉수요 추계를 통한 대형 토목사업은 이제 생태환경의 복원이라는 새로운 길 찾기에 이르기도 했다. 생태하천을 만든다면서 하상도로를 철거하고 대체도로를 건설하자는 식의 대형토록 사업의 수요를 창출하는 것이다. 명분은 환경 살리기인데 내용은 신규 토목사업의 창출이 되고 있는 것이다.
개발지상주의는 사회의 양극화가 심화됨으로써 벌어지고 있는 지역민의 생활상의 절박한 문제를 외면하는 주요한 수단이기도 하다. 획일적 지역개발 제일주의는 사회적 양극화에 따른 지역민의 생활상의 문제를 쟁점화 하고 지역차원의 대안을 만들어가는 것 자체를 막아버린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도시와 농촌, 정규직과 비정규직, 수도권과 지방 등 사회 각 부문간의 양극화 심화는 결국 고용불안을 가중시키며 아동의 보육과 교육에 대한 부담, 가정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유병장수(有病長壽) 노인문제를 더욱 악화 시키고 있다. 실제 2004년에 창출된 신규일자리의 80%는 수도권에서 고용되었다하니 지방의 어려움을 알만할 것이다.
이러한 양극화는 사회적 갈등을 높여 지역운동의 기반을 확충 시키는 측면도 있으나 대항조직의 취약성-10%대의 노동조합 조직율, 50%대의 비정규직 비율, 35%로 추산되는 자영업자 비중-으로 인해 건강한 사회적 갈등과 저항으로 분출되기보다는 개인적 일탈로서 범죄화 될 개연성이 높아지고 있다. 적어도 사회적 공익에 대한 무관심 층이 두터워져 사회운동 자체를 위축 시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생존을 위한 경쟁에 내몰리는 시민에게 공익적 사회운동에 참여를 요구하기는 더욱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지역운동 내부의 위기 증상도 적지 않다. 지역운동 활동가의 연령층이 상승하고 그동안 활동가를 충원해주던 학생운동에서 배출되던 인력도 사라지고 있다. 자체적인 활동가를 육성할 참여형 조직은 발달되어 있지 않고 자원봉사자들도 실무형 참여자를 넘어선 운동가로육성된 성과가 아직은 나타나고 있지 않다. 생존경쟁의 심화와 입시교육의 영향으로 지역시민사회 자체가 보수화될 가능성까지 고려한다면 이른바 ‘지역운동 지속가능성의 위기’가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 상대적으로 제도정치의 절차적 정상화가 진행되면서 지역시민운동의 영향력 또한 감소되고 있다.
그러나 위기는 곧 기회이기도 하다. 변하지 않는 지역 권력의 독과점과 시민사회의 미성숙, 국가적 양극화의 진전이 바로 지역운동의 필요성과 역할, 가치를 더 중요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먼저 지역시민운동은 개발지상주의와 이로 인한 행정의 계층 중립성 상실을 극복하기 위해 지역사회의 의제와 담론을 재구성하는 노력을 기울여야한다. 획일적 개발주의로의 동원이 지역의 자금을 역외로 유출 시키고 있으며 부자에게만 더 많은 혜택을 줄뿐이라는 사실을 쟁점화해야 한다.
이러한 일방적 담론구조에 대한 저항은 그동안 지역시민운동이 추구해온 의사결정의 투명성과 합리성 이라는 절차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라는 방식에서 해당 정책의 타당성여부에 대한 검증과 대안 제시로 변화해야 가능해진다. 특히 고용, 보육 및 교육, 노인문제와 같은 주민 삶의 문제와 밀접한 요구를 해결하기 위한 복지수요를 조사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 대안을 제시하고 쟁점화하는 운동이 필요하다.
지역시민운동의 지속가능성의 위기를 넘어설 실천 대안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풍부한 잠재적 자원봉사층인 여성을 지역사회운동에 참여시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여성의 사회운동 주체세력화는 그들의 생활세계에서 요구되는 과제를 가지고 그들의 일상생활이 이루어지는 곳에서 운동을 전개할 때 효과적이다. 이런 점에서 초등학교를 같이 다니는 마을권에서 풀뿌리 주민공동체운동을 활성화시키기 위한 집중적 노력이 있어야 한다.
사회적 양극화의 대안도 결국 주민들에 의한 공동체적 실천을 통해 마련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도 풀뿌리공동체운동은 중요하다. 모든 것이 시장 가치화되고 있다. 학력이나 자연 환경의 향유조차도 부의 크기가 그것을 결정해주는 현실을 협동조합적 주민참여를 통해 극복하는 운동을 만들어가자는 것이다. 기존의 지역시민운동이 사회행동형이든 공공서비스제공형이든 마을에 기초한 지역성이 부족했음을 반성하면서 아래로부터의 참여형 주민운동을 발전시키기 위해 풀뿌리주민운동 인큐베이팅을 위한 노력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사회변동은 지역사회에 뿌리박은 지속 가능한 사회운동으로 지역운동을 변화 발전시킬 것을 요구한다. 이러한 변화의 요구에 부응치 못한다면 지역운동의 위기는 현실화 될 것이다.
그러나 다양한 생활공동체운동을 한 축으로 세우고 지역사회의 담론과 의제를 주민 생활과 밀착된 복지수요에 눈높이를 맞추어 제기해 나간다면 지역시민운동이 지역사회 아니 한국사회 희망의 근거가 될 수 있다는 믿음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