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 정 사 유
온갖 비리와 범죄에 대한 공명정대한 심판으로 사회 정의와 질서를 바로 세우느라 불철주야 애쓰시는 재판장님의 노고에 깊은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먼저 전합니다.
최근 부정선거 혐의로 1심에서 당선무효형을 선고받은 현 오광록 대전광역시교육감에 대한 교육계와 지역민의 보편적 우려를 전해 드리고자 합니다. 1심 재판부가 현직 교육감에게 나름대로 엄중한 판결을 내린 것은, 청소년과 지역민의 사표가 되어야 할 교육감의 불법적인 행위를 엄단함으로써 공정하고 깨끗한 선거풍토를 조성하고 나아가 교육계를 정화하는 계기로 삼으려는 사법부의 충정으로 보아 그 판결을 최대한 존중합니다. 하지만, 일반인의 상식적인 법 감정으로는 충분히 납득되지 않는 일면이 있고, 또 1심 선고 과정에 특정 시민단체와 학교의 인맥이 동원되어 최대 쟁점 부분을 무죄로 만들어 양형을 줄였다는 로비 의혹이 교육계에 파다한 점, 그리고 지역 교육계의 안정을 고려한 정치적 선처 의혹 등이 계속 제기되는 지역의 여론을 진솔하게 알려 드리는 것이 향후 상급심의 판단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것으로 여겨져, 이렇게 그 뜻을 전합니다.
현직 교육감이 1심에서 당선무효형을 선고받은 것은 경위야 어찌됐건 교육계의 큰 부끄러움이지만, 교육감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고백하고 공개적으로 지역민의 용서를 구하였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습니다. 이는 지역 교육계의 수장으로서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도리마저 저버린 것으로 매우 유감입니다. 오히려 1심 선고일 경호원과 지지자들의 호위 속에 기자들의 접근을 강력 제지하며 법정을 나서는 모습은, 참회하는 죄인이 아니라 승리한 개선장군이었습니다. 이는 그간 가장 무거운 범죄 혐의였던 ‘양주배송 과정의 공모’ 부분이 무죄로 선고되자, 결국 최종 판결까지 가면 현직 유지가 가능한 벌금형으로 종결될 거라는 나름의 믿음에서 나온 오만한 행태로, 사법부의 간곡한 충정을 즉각 배신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사실 1심 재판부가 양주배송 과정의 공모 여부에 대한 판결에서 밝혔듯이, 일반적인 국민정서나 상식으로 보면 공모의 의심이 상당하지만,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의 증명력을 갖춘 증거가 없이는 유죄로 인정하지 않는 형사재판의 원칙을 적용해 무죄로 선고한 것은 존중되어야 마땅합니다. 형사 사건에 대한 공판중심주의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억울한 피해자 발생을 최대한 막고 피의자의 인권도 보호받아야 한다는 대원칙은 지켜져야 하니까요. 하지만 이런 원칙도 결국은 ‘실체적 진실 규명과 그에 상응한 처벌을 통한 범죄 예방’이라는 또 다른 사법절차의 이상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따라서 엄정한 양형으로 유사한 범죄를 예방하고자 한 1심의 판결 취지는 법률문외한으로서도 충분히 공감이 가는 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심각한 불법을 저지른 교육감이 앞으로 구성될 ‘교직비리심사위원회’를 사실상 총괄하며 교사들의 비리를 심사하게 된다면 사법부의 권위가 크게 훼손됨은 물론, 비리의 몸통이 깃털을 단죄하는 격이 되어 지역민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양주를 받은 교장들이 수사기관에서 한 진술을 법정에서 완강하게 부인하며 모르쇠로 일관하고, 죄를 뉘우치기는커녕 재판부를 상대로 교육감의 탄원운동을 집단으로 시도한 것도 공판중심주의의 취지를 악용하여 종범들이 주범의 구명운동을 펼친 격으로, 신성한 법정을 기망한 것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사법부의 판결을 존중하면서도 교육감의 상급심에 대한 지역민의 우려가 계속되는 것은 나름의 근거가 있습니다. 최근 대전고등법원은 지역의 고위 공직자 비리에 대해 잇달아 관대한 판결을 내렸습니다.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기소된 김창수 대덕구청장에게 벌금 80만원을, 진동규 유성구청장 부인에게 구청장직 유지형을, 그리고 김행기 금산군수에게는 집행유예를 선고하면서, ‘대전고법이 형량 할인점이냐‘는 비판까지 받았음을 익히 알고 있습니다. 이로 미루어 결국 오교육감에게 상급심에서 교육감직 유지형을 선고하지 않겠느냐는 어두운 전망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이런 지역민의 우려가 현실화 된다면, 이번 사건이 교육계 자정의 계기로 승화되지 못하고 오히려 불법선거에 가담한 교육감과 교육청 간부 및 각급 학교장 등에게 면죄부를 주는 결과가 될 것입니다. 나아가 지역 교육계는 이번 사법처리 과정에서 양형을 낮춘 데 대한 논공행상으로 더욱 혼탁해질 것입니다.
우리는 이번 사건에 대한 수사가 선거관리위원회의 자체조사에 의한 고발로 시작된 것이 아니라, 다른 후보 세력의 의혹 제기로 시작된 것에 대해서도 주목합니다. 이번 제5대 대전시교육감 선거는 무려 아홉 명의 후보가 난립하고 각종 학연과 지연 등이 뒤엉켜 혼전을 벌인 만큼, 선거가 끝난 뒤 거의 모든 후보가 서로 고발하는 등 그 후유증 또한 컸습니다. 특히 결선투표까지 치렀기 때문에 불법선거에 대한 시비 또한 집요했습니다. 심지어는 특정 교원단체의 이름을 도용해 현 교육감의 엄정한 사법처리를 촉구하는 진정서 사건이 터지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이번 진정서가 공정하고 깨끗한 공직선거풍토를 조성하고 나아가 교육계를 정화하는 계기로 삼으려는 사법부의 충정에 적극 부응하고자 하는 지역민의 순수한 염원을 대변하는 것임을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따라서 우리의 순수한 자정 노력이 어떤 특정 세력에게도 악용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만약 이를 악용하려는 세력이 있다면 결국 지역민의 준엄한 심판을 받을 것임을 강력히 경고합니다. 또한 오교육감을 지지했던 진영도 사회정의의 확립이라는 대의에 적극 동참하길 권합니다.
끝으로, 현 교육감과 그 부인 등의 혐의에 대해 사법부가 인정하는 사실관계에 대하여 의혹만으로 이를 다투려는 의도는 추호도 없으며 사법부의 판결을 최대한 존중할 것을 거듭 밝힙니다. 다만, 현 교육감 부부의 죄질이 결코 가볍지 않은 만큼 그에 상응한 엄정한 사법처리로 고위 공직자의 윤리의식이 엄중해야 함을 경각시키는 증표로 삼아, 우리 교육계가 국민들로부터 신뢰와 존경을 회복하도록 해 주실 것을 간절히 바랄 뿐입니다. 특히 교육계의 수장이 이렇게 각종 불법과 탈법을 동원해 권좌에 올라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는 모순된 현실이, 교육계에 맹목적인 성과주의와 냉소적 허무주의를 만연시켜 각종 변칙과 비리 그리고 무사안일을 확대재생산 시킨다는 점에서 그 폐해가 자못 심각함을 지적합니다. 따라서 다른 공직선거와 달리 교육의 자주성과 전문성을 보장하기 위해 선거운동 유형을 엄격히 제한한 지방교육자치법의 입법 취지에 맞게, 또 일반 고위 공직자 등에게 선거법이 엄정하게 적용되는 일반적 추세에 맞게, 교육감의 선거법 위반은 그 자격을 상실하도록 하는 것이 정당하다는 건전한 상식을 확인하게 해 주실 것을 붙임과 같이 연서명하여 진정 드립니다.
2005년 12월 21일
대전고등법원장 귀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