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법 시행 2년이 되었으나 한번 ‘적용’조차 되지 못한 채 유예될 상황에 처해있다. 한나라당은 2년을 유예하자고 하고 있으며 민주당은 이에 맞서 6개월 유예를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민주노총은 비정규법의 시행유예를 절대로 수용할 수 없다.
비정규직법 문제를 포괄적으로 논의키로 한 이른바 ‘5인 연석회의’가 정치권의 정략적 태도로 ‘비정규직법 시행유예’의 통과의례로 전락할 위기에 놓였다. 민주노총은 비정규직법과 미디어법 등에 대한 정치적 거래를 위해 ‘5인 연석회의’와 노동계를 활용하려는 일각의 움직임을 강력히 규탄한다.
5인 연석회의는 ‘비정규직 보호방안 마련’을 위해 구성됐다. 정치권이 노동계의 참여를 요청한 이유도 이것이었으며, 노동계가 참여를 결정한 이유도 이 뿐이다. 연석회의에서 정한 의제 역시 이런 취지에 따라 폭넓게 합의된 상태다. 법 시행 유예를 전제로 만들어진 5인 연석회의라면 아예 참가하지도 않았을 것이며,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인 연석회의가 진행되는 동안 정치권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다. 한나라당은 연석회의에서의 성실한 논의를 약속하고도 ‘비정규직법 시행 3년 유예’ 내용을 담은 개정안을 발의했다. 단독 국회 개원 추진 역시 다수의 의석을 무기로 비정규직법을 강행하겠다는 의사표시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우려스런 기류는 민주당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시행 유예는 없다’던 애초의 입장이 정규직화 지원금 확대를 빌미로 서서히 흐려지는 징후가 나타나고 있으며, 심지어 미디어법과 비정규직법을 맞바꾸려는 의도가 민주당 안팎에서 감지되고 있다. 연석회의가 진행되는 내내 근거 없는 ‘합의설’이 언론을 통해 유포된 점도 매우 유감이다.
민주노총은 최근 일고 있는 이런 움직임에 대해 크게 우려하며, 만일 이에 따라 5인 연석회의가 파탄을 맞아 비정규직법 시행이 유예될 경우 그 책임은 모두 여야 3당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점을 분명히 경고한다.
한나라당과 민주당, 자유선진당은 ‘5인 연석회의’에서 사용기간 제한을 근간으로 한 현행 비정규직법이 잘못된 법임을 스스로 인정했다. 기간제한이 잘못된 법임을 인정했다면, 사용사유 제한 등 근본적인 치유책 마련에 시급히 나서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시행유예는 ‘일단 미루고 보자’는 뜻으로, 여야 3당의 무책임과 무능력을 드러내는 것이며, 스스로 인정한 법안의 문제점을 그대로 둔다는 점에서 말과 행동이 다른 결정이 될 것이다.
또 민주노총이 이미 수차례에 걸쳐 지적한 바와 같이, ‘시행유예’와 ‘정규직화 전환기금 지원’은 동시에 실현될 수 없는 모순된 내용이다. 시행이 유예되는 판에 어느 사용자가 정규직화를 추진할 것이며, 수 조원의 지원금이 마련된들 이를 어디에 사용하겠는가. 다시 말해 여야 3당의 정치적 성과는 될 수 있을지 몰라도, 비정규직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는 최악의 결정이 될 것이다.
7월1일까지 시간이 많지 않다는 주장도 일리가 없다. 여야 3당 스스로가 현행 비정규직법이 잘못됐다는 점을 이미 인정한 상황이다. 그렇다면 당장 사유제한 도입 등 법개정에 나서야 함에도 불구하고 고작 시간타령이라니, 환경노동위원회에게 840만 비정규직의 고통보다 더 중요한 것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이른바 ‘해고대란설’ 역시 근거 없음이 연석회의 논의를 통해 드러났다. 정부의 ‘71만-100만 해고설’이 과대 추계됐으며, 실제로는 매월 3만2천명의 기간제 노동자가 2년 근속기간 만료에 다다를 것이란 점이 이미 연석회의에서 충분히 설명됐다.
민주노총은 연석회의에서 △기간제한 폐지 및 사용사유제한 도입 △정규직 전환의무 비율 도입 △차별시정제도 개혁 △정규직화 전환기금 대폭 확대 등을 양대노총 공동의 요구로 제안했다. 이는 여야 3당이 공히 인정한 현행 비정규직법의 문제점을 극복할 수 있는 가장 유력하고 현실 가능한 대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야 3당이 오직 ‘시행유예’만을 고집하며 5인 연석회의 차원의 합의를 거부하고, 이를 빌미로 여야 3당이 협잡해 시행유예 법개정을 강행한다면, 이는 온전히 여야 3당의 책임이 될 것임을 분명히 한다.
특히 한나라당이 단독국회와 날치기 강행처리를 시도한다면 민주노총은 즉각적인 총파업을 통해 840만 비정규직의 생존권을 사수하기 위해 투쟁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