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행정체계 개편, 충분한 검토와 준비 없는 졸속추진 곤란 주민의 자기결정권 보장해야
주민투표 없는 자치단체 통합 있을 수 없어
1. 행정안전부는 지난 30일 전국 18개 지역 46개 시·군이 행정구역 자율통합 건의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행안부는 이달 중 여론조사기관을 통해 통합대상 지역에 대한 동시 여론조사를 한 뒤 통합이 바람직하다고 판단되는 지역에 대해 지방의회 의견을 수렴하거나 주민투표를 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행안부의 ‘통합시 출범 7단계 로드맵’에 따르면 연말까지 통합여부를 결정한 뒤 내년 6월 지방선거를 거쳐 7월 통합 자치단체가 출범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고, 통합 대상 단체장과 의회가 찬성할 경우 주민투표를 생략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최근 이달곤 행안부 장관도 “여론조사 찬성 비율이 60%를 넘으면 주민투표 없이 지방의회 의결로 지자체의 통합을 결정하겠다”고 또다시 밝혀 논란이 일고 있다. 지방행정체계 개편은 충분한 검토와 준비가 필요한 중대한 사안으로 주민투표를 반드시 거치는 등 주민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하는 방식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2. 이미 참여자치지역운동연대는 논평을 통해 지방행정체제 개편에 대해 행정력 낭비를 축소하기 위한 행정단계 축소에는 원칙적으로 찬성하나 충분한 의견 없이 기한을 정해 놓고 추진되는 하향식 행정체제 개편 논의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지방행정체제 개편은 주민들의 생활과 직결되어 있는 문제이고, 선거구제 개편 등과 맞물려 있는 매우 정치적인 의제임과 동시에 한번 바꾸면 되돌리기 어려운 비가역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광역 시․도를 폐지하고 기초 시․군․구를 통합하여 계층을 축소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지방행정체제 개편 방향에 대해 ‘자치역량 강화’와 ‘주민참여 활성화’ 등 올바른 지방자치와 참여민주주의 실현이라는 큰 방향에 역행하고, 오랜 기간 지속되어온 역사적․문화적․정신적 공동체성의 파괴가 가속화될 가능성도 크다. 현재 지역 차원에서 자율적 행정통합이라는 명분하에 진행되고 있는 지방자치단체간 통합논의와 방향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오히려 중앙정부의 행․재정 지원을 빌미로 사실상 중앙정부에 의해 주도되는 강제적 통합에 다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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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우선 행정안전부의 통합 로드맵과 이달곤 장관의 발언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반민주적 반자치적 발상이다. 지방행정과 지방분권, 주민의 자치권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사안을 주민투표 절차를 생략하고 통합을 결정한다는 발상은 지방행정구역 개편에 있어서 지역주민 스스로의 결정권이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한다는 기본 원칙을 무시한 발상이다. 이는 풀뿌리 지방자치의 근본정신을 훼손함은 물론 헌법정신에도 부합하지 않는 반민주적 절차이다. 또한 내년 지방선거 전에 통합시를 개청하고 6.2 지방선거에서 통합시장을 선출하겠다는 발상도 문제이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정치적 이해관계를 가질 수밖에 없는 지방자치단체장들이 통합추진을 주도하고 있는 상황에서 지방선거 전으로 기한을 정해 놓은 것은 그 자체로서 졸속일 뿐만 아니라 정부의 국정방향이나 지방자치단체장의 정치적 이해에 따라 행정통합 절차와 내용이 왜곡될 가능성이 많고, 지역주민들의 참여와 공론형성을 가로막을 수 있기 때문에 폐기되어야 한다.
4. 현재 지역의 행정통합 논의는 그야말로 단체장들의 세력과 주도권 싸움 양상으로 치닫고 있고, 중구난방·동상이몽의 백화점식 통합전선이 형성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적 이해관계를 가질 수밖에 없는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정략적 차원에서 행정통합문제에 접근함으로써 오히려 주민들만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심지어 3선 제한의 지방자치단체장이 통합을 주도하고 있는 지역도 있다. 이러다보니 행정구역 통합의 기본인 주민 자율성은 사라진 채 여론은 분산되고 추구하는 길은 제각각이다. 이렇게 된 원인은 통합논의가 지방자치단체장들의 정치적 접근과 여론 주도층의 입김에 좌지우지돼 온 탓이다.
5. 이제 공은 정부로 넘어갔다. 많은 지역에서 누더기로 변해 올라간 통합그림을 철저히 주민여론에 기초해서 바로잡아야 할 책무가 정부에 있다. 또한 더 이상 정부가 행정 및 재정적 인센티브를 빌미로 지역의 행정통합을 강제하는 방식은 중단되어야 하고, 통합의 여부와 시기는 전적으로 주민들이 스스로 정할 수 있도록 자기결정권을 보장해야 할 것이다. 스스로 통치한다는 ‘자치’의 원칙에 어긋나는 행안부의 ‘통합시 출범 7단계 로드맵’을 즉각 폐기해야 할 것이다. 참여자치연대는 지방행정체계개편의 올바른 대안을 만들기 위해 시민사회와 지역주민의 의견을 수렴하는 활동을 펼칠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