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연합뉴스) 김준호 기자 = 6.25전쟁 당시 군.경에 의해 대전형무소 수감자를 비롯 민간인 등 최대 7천여명이 학살된 곳으로 추정되는 대전 산내동 골령골 제5학살지에서 1일 오전 열린 개토제에서 김두관 전 장관과 김원웅 국회의원 등 관계자들이 시삽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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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연합뉴스) 정윤덕 기자 = 1일 개토제를 시작으로 국가차원의 유해발굴 작업이 이뤄지는 \'대전 산내학살 사건\'은 단일 사건으로는 국내에서 가장 큰 규모의 민간인 학살사건이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1950년 7월 초 이승만 정권은 대전을 거쳐 부산으로 피난했으며 같은 달 8일 전국에 비상계엄령이 선포됐다.
앞서 7월 1일 미국 24사단이 대전에 도착했으며, 2일부터 대전형무소 재소자들이 처형되기 시작한 데 이어 11일부터는 보도연맹가담자 등이 산내 골령골로 끌려가 처형됐다.
7월 14일 대전형무소는 폐쇄됐고 형무소 특경대원도 모두 철수했다.
당시 처형당한 피해자는 최소 1천800여명에서 최대 7천여명으로 이들은 모두 대전 산내 골령골에 집단 매장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같은 사실은 1992년 한 시사 월간지를 통해 최초로 세상에 알려졌다.
\'대전 산내학살\'로 알려진 이 사건은 그러나 구체적 증거가 없어 의혹만 제기돼 오다 1999년 12월 미국에서 비밀해제된 문서가 공개되면서 대전형무소 재소자 1천800명에 대한 집단처형 보고서 및 학살현장 사진이 발견됐다.
문서를 통해 학살이 사실로 드러나자 2000년 초부터 본격적인 진상조사가 시작됐다.
처음으로 30여건의 피해신고가 접수되고 유족모임이 결성됐으며 같은해 7월 8일 산내 골령골에서 학살피해자를 위한 첫 위령제가 열렸다.
그러나 진상규명과 피해조사는 쉽지 않았다.
대전교도소를 비롯해 경찰, 검찰, 국방부, 대전시 등 모든 기관을 상대로 행정정보 공개를 요청했으나 이들 기관으로부터 돌아온 답변은 \"관련 자료가 없다\"는 것뿐이었다.
한 군청에서는 당시 교도소로 보낸 재소자 명단이 보관돼 있다는 제보를 받았지만 확인해주지 않았고 심지어 대전 동구청은 학살현장으로 추정되는 지역에 건축허가를 내줬다 건설현장에서 유골이 무더기로 나와 유족의 항의를 받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진실화해위원회는 2005년 12월부터 산내학살 사건에 대한 진실규명 신청을 받기 시작해 그동안 116건이 접수되자 지난해 11월 7일과 올해 2월 28일 두차례 직권조사 개시결정을 내렸다.
김종현(70) 유족회장은 \"정부차원에서 유족들의 한을 풀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줘 감사하지만 발굴 면적이 극히 일부분에 불과한 점 등은 아쉽다\"며 \"발굴작업이 최대한 빨리 마무리되기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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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여자치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10-06-11 10: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