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을 사람의 만남이 아름다운 도시로,

열린시대 새 지방자치를 만들어갑니다.

연대활동 성명논평

제5차 대전산내학살희생자 위령제(자료집 별첨)
  • 180
1. 행사개요 - 일시 / 2004년 7월 4일(일) 오전 10시부터 - 장소 / 대전역 광장(동구 산내에서 대전역으로 장소변경) - 주요행사내용 - <10:00 - 10:40 / 1부 : 개회식>   개회선언   산내학살 희생자 영령 묵념   진행경과보고   추 념 사   추 도 / 이광재 대전 유족회 대표              김익중 제주도 유족회 대표              여수순천 유족회 대표   특별법 제정 경과보고 - <10:40 ~ 11:50 / 2부 : 위령 공연 및 헌화>                  (민족예술단 \'우금치\') - <12:00 / 해산> ** 대전시민여러분들의 많은 참석을 바랍니다. 2. 대전산내학살 사건이란? 1950년 7월, 대전형무소에는 제주4.3사건과 여순사건 관련 정치범들로포화상태였다. 정원이 1200명이었으나 3배가 넘는 3-4000명이 수감되어 있었던 것으로 당시 간수들에 의해 확인되고 있다. 수형인들의 대부분은 제주4.3사건과 여순사건 관련자, 전쟁직후 예비검속된 보도연맹원 등이었다. 1950년 7월 6, 7일 양일에 걸쳐 명적계를 보고 분류된 수형인 중 사상범들은 8-10일 사흘에 걸쳐 대전시 산내면 골령골로 끌려가 미군과 사회 유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전원 학살당하였다. 그러나 학살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형무소 관계자들이 3일간 수형인들을 끌고나갔다고 증언하는 것과 달리 현장 총살집행자 등 관련자들은 학살이 총 10일간 진행되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또한 주변에 살던 주민들도 열흘간 학살이 진행되었다는 동일한 증언을 하고 있다. 이는 수형인 학살 이후, 대전 지역의 보도연맹원과 좌익 관련 활동 전력이 있는 이들을 예비검속하여 모두 학살하였기 때문으로 밝혀졌다. 즉 형무소 사상범 외에도 군경이 후퇴를 시작한 7월 14일~16일 막판까지 골령골에서는 학살이 끊이지 않았던 것이다. 대전형무소에서 학살된 수는 해제된 미군문서에서는 여순사건 관련자 1200명, 제주4.3사건 관련자 300명 등 총 1800명이라고 하고 있으나 3000명 이상이 학살된 것으로 추정되며 앨런 위닝턴 등 외신기사는 7000-8000명이 학살된 것을 보았다는 주장을 하기도 하였다. * 참여자치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10-06-11 10: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