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씻기지 않은 산내 골령골의 아픔>
[연합뉴스 2006-06-22 14:40]
한국전쟁 최대규모 학살사건.. \"바라는 것은 오직 진실뿐\"
(대전=연합뉴스) 김병조 기자 = \"당시 아버님이 끌려가 처형됐지만 집안 어른들이 그 사실을 금기시해 성묘조차 못 하다가 2000년이 돼서야 아버지가 묻힌 곳이 골령골이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단일 사건으로는 국내에서 가장 큰 규모의 민간인 학살이 자행됐던 `대전 산내학살\' 유족회 김종현(69) 회장은 아직도 그날의 기억이 생생하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1950년 7월초 이승만 정권은 대전을 거쳐 부산으로 피난했으며 같은 달 8일 전국에 비상계엄령이 선포됐다.
앞서 7월 1일 미국 24사단이 대전에 도착했으며, 2일부터 대전형무소 제소자들이 처형되기 시작한 데 이어 11일부터는 보도연맹가담자 등 좌익인사들이 산내 골령골로 끌려가 처형됐다.
7월 14일 대전형무소는 폐쇄됐고 형무소 특경대원도 모두 철수했다.
당시 처형당한 피해자는 최소 1천800여명에서 최대 7천여명으로 이들은 모두 대전 산내 골령골에 집단 매장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같은 사실은 1992년 한 시사 월간지를 통해 최초로 세상에 알려졌다.
`대전 산내학살\'로 알려진 이 사건은 그러나 구체적 증거가 없어 의혹만 제기돼 오다 1999년 12월 미국에서 비밀해제된 문서가 공개되면서 대전형무소 제소자 1800명에 대한 집단처형 보고서 및 학살현장 사진이 발견됐다.
문서를 통해 학살이 사실로 드러나자 2000년초부터 본격적인 진상조사가 시작됐다. 처음으로 30여건의 피해신고가 접수됐으며 유족모임이 결성됐으며 이 해 7월 8일 산내 골령골에서 학살피해자를 위한 첫 위령제가 열렸다.
그러나 진상규명과 피해조사는 쉽지 않았다.
대전교도소를 비롯해 경찰, 검찰, 국방부, 대전시, 동구청, 청와대, 국정원 등 모든 행정기관을 상대로 행정정보 공개를 요청했으나 이들 기관으로부터 돌아온 답변은 \"관련 자료가 없다\"는 것뿐이었다.
한 군청에서는 당시 교도소로 보낸 제소자 명단이 보관돼 있다는 제보를 받았지만 확인해주지 않았고 심지어 대전 동구청은 학살현장으로 추정되는 지역에 건축허가를 내줬다 건설현장에서 유골이 무더기로 나와 유족의 항의를 받기도 했다.
김 회장은 \"다른 학살피해 지역과 달리 지난 6년 간 대전시장은커녕 구청장조차 단 한 번도 위령제에 참석하지 않았다\"며 \"최대규모의 학살사건인 `산내학살\' 사건의 해결과 화해를 위한 정부기관의 노력은 여전히 부족하다\"고 꼬집었다.
그는 또 \"유족들은 90년대 초까지도 연좌제의 굴레를 쓰고 각종 차별을 당했기 때문에 아직도 피해 사실을 밝히길 꺼리고 있다\"며 \"적어도 연좌제를 적용했던 자료라도 공개한다면 피해자 명단은 알수 있지 않겠냐\"고 지적했다.
이들 유족회가 마지막으로 희망을 가지는 것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작업이다.
김회장은 \"과거사위가 내년도 조사작업에 산내 학살사건을 포함했다는 얘기가 들리고 있는데 이 조사에서 진실이 많이 밝혀지길 기대하고 있다\"며 \"유족이 바라는 것은 오직 진실뿐\"이라고 말했다.
kbj@yna.co.kr
* 참여자치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10-06-11 10: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