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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기고·주장

얼굴 가린 여성들 -김선건 공동의장
  • 185
-7호


얼굴 가린 여성들

 

김선건(공동의장, 충남대 교수)

 

  산과 들에 찔레꽃이 지천으로 피어나고 녹음이 짙어지는 유월이다. 여가시간이 늘어나고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등산하는 사람들, 산책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건강을 유지하고 체중을 조절하는 데에는 걷는 것이 가장 좋다. 또 누구나 손쉽게 할 수 있는 방법이다. 시민들이 사는 곳에서 차량에 방해받지 않고 쉽게 접근할 수 있고 편하게 걸을 수 있는 공간이 늘어났으면 좋겠다. “대전둘레 산길잇기”를 제안하고 시민들과 함께 하고 있는 것도 시민들이 쉽고 편하게 걸으면서 서로의 마음 길도 열렸으면 하는 바람에서이다.


  아파트 주변의 산책로를 걷다보면 혼자 또는 여럿이 걷는 젊은 주부들을 자주 만난다. 자외선을 차단하는 검은색 반투명 챙이 달린 모자를 쓴 여자들이 스쳐지나간다. 자외선을 가리는 데에만 신경을 쓰고 남의 시선에는 무신경한 젊은 주부들은 챙을 너무 내려 쓴 나머지 마치 그들의 얼굴을 검은 먹으로 지워놓은 듯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어찌 보면 공포스럽기도하다. “아무리 자외선이 무서워도 그렇지, 저게 뭐야? 무심코 걷다가 깜짝 깜짝 놀란다니까, 꼭 철가면을 쓴 흑기사 같지 않아?”


  그런데 요즈음은 그것도 부족하여 복면강도처럼 아애 하얀 얼굴가리개로 얼굴 전체를 가리고 걷는 여성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참으로 끔찍하다. 심한 화상을 입어 상대에게 혐오감을 준다거나 아니면 자신을 숨기고 범죄를 하는 경우라면 모를까 도대체 피부미용을 위하여 사람들이 다니는 공적인 장소에서 서슴없이 얼굴을 가리는 여성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얼굴을 타지 않게 하려면 넓은 모자나 크림 정도로 그쳐야지, 그것으로 부족하면 아예 나오지 말아야지 이 파렴치한 여성들은 도대체 누구를 위하여 얼굴을 가리고 걷는 것일까, 어쩌면 저렇게 무례할 수 있을까, 복면여성들의 머리 속이 궁금하다. 서로 만날 때는 상대에게 얼굴을 보이는 것이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서 가장 기본적인 최소한의 예의이다. 이 기본룰을 어기는 것은 심리적인 폭력이다. 오로지 자신의 하얀 얼굴을 위하여 다른 사람을 철저히 무시하는 염치없는 극단적 이기주의자들을 보면 도무지 불쾌해서 견딜 수가 없다. 이 용감한 여성들에게 다른 사람은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 것일까, 마치 중세의 귀족부인들이 사람으로 여기지 않는 하인들 앞에서 거리낌 없이 옷을 벗었듯이.


  복면여성을 만나면 들으라고 “예쁜 얼굴을 왜 가리고 걷느냐” 그것도 안 되면 “얼굴이 얽었나 보다” 등의 반응을 보인다. 내가 심한 것일까? 아내도 불쾌하기는 하나 내버려두지 뭘 그러냐고 해 서로 다투고 함께 산보를 안 한다. 내버려둘 일이 따로 있지, 이제는 꼴 보기 싫어 아예 산보를 안 한다.


  사람의 얼굴이 사라지고 타인에 대한 배려가 사라져가는 사회, 미용을 위해 염치를 버린 여성들이 키우는 아이들이 앞으로 만들어갈 사회는 어떠한 모습일까? 아파트 생활의 도시적 익명성이 확산되고 웰빙풍조와 외모지상주의와 건강자체가 목적이 되고 있는 맹목적인 사회의 삐뚜러진 욕망이 급기야는 낮도깨비 같은 복면여성들을 출현시켰다.


  가면을 벗고 맨얼굴로 만나야 비로소 사람 사이의 관계가 이루어져 마음이 열리고, 함께 사는 성숙한 시민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 천박한 물신적 자본주의를 넘어서. 얼굴 가린 여성들이여 가면을 벗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