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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의료법 개정안, 무엇이 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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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애 (건강세상네트워크 공동대표)

 

지난 2월에 이어 3월중에도 의사들은 진료를 포기하고 과천 정부청사 앞으로, 공청회장 앞으로 집결하였다. 이 와중에 응급실을 찾아 헤매던 외국인 노동자가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숨지는 일이 발생하였다. 의사들의 폐업은 지난 2000년 의약분업 당시 경험하였던 터라 국민들은 냉소적이거나 한편으로는 불안함을 느끼고 있다. 정부의 발표대로라면 의료법 개정작업을 위해 의료계와 수차례의 논의와 의견 수렴을 하였다고 하는데 의사들은 왜 진료까지 포기하면서 정부의 의료법 개정을 반대하고 나섰는가? 의료계가 반발하는 의료법 개정안의 내용 의료계는 의료행위에 ‘투약’이 포함되어 있지 않으며, 간호사 업무에 ‘간호진단’을 포함하고, 의료인이 아닌 자에게도 보건위생상 위해가 생길 우려가 없는 경우에는 유사의료행위를 할 수 있도록 허용하며, 표준진료지침을 정하도록 한 것에 대해 반대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문제가 진료를 중단할 정도의 반발을 할 만큼 시급하거나 절박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납득하기 힘들다. 의료법 개정안에서는 의료행위를 ‘건강증진과 예방, 치료, 재활 등을 위해 행하는 통상의 행위’로 정의하고 있다. 즉, 검사, 각종 수술과 시술, 투약 등은 건강증진과 예방, 치료, 재활 등을 위해 행하는 통상의 행위에 포함되는 개념이다. 따라서 ‘투약’을 의료행위의 정의에 포함시키자는 의료계의 주장은 의약분업 이후 조제권을 둘러싼 약사와의 갈등과 다툼으로 보인다. 간호사 업무에 ‘간호진단’을 포함시킨 것과 유사의료행위 인정에 대한 의료계의 반대도 간호사와 유사의료행위업자의 업무 영역 확장에 대한 거부로 해석되고 있다. 표준진료지침에 대해서는 의료행위를 규격화하고 의사들의 진료 자율성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고 반발하고 있으나, 환자 입장에서는 전국어디에서나 적정진료를 통해 의료서비스 수준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필요하다. 이미 많은 선진국에서 적정진료와 의료서비스 질 향상을 위해 표준진료지침을 적용하고 있고 정부 개정안에서도 표준진료지침 제정은 전문학회나 단체에 위탁하도록 명문화했기 때문에 의료계의 반대는 설득력을 얻기 어렵다. 시민사회단체가 보는 의료법 개정안의 독소조항 그러나 의료법 개정안은 의료계만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시민사회단체들 또한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시민사회단체 노동단체들이 반대하는 이유는 의료계의 입장과 확연히 다르다. 의료법 개정안이 사실 ‘영리’라는 말은 안 썼지만 실질적으로는 영리 추구를 가능하게 하기 때문에 반대하고 있는 것이다. 먼저, 병원의 인수합병 허용은 사실상 의료기관의 영리화를 인정하는 것이며, 자본이 병원을 사고 팔아 수익을 내고 투기화할 수 있게 된다. 미국의 경우처럼 병원이 지역내 경쟁기관을 인수한 뒤, 폐업시키는 방식으로 인수합병을 악용하더라도 규제할 방법이 없게 될 것이다. 대형 할인마트 하나 들어서면 주변 수백개의 슈퍼마켓이 폐업하듯이 의료자본이 주변의 중소병원을 인수합병하여 특정지역에서 독점적 위치를 가질 수 있게 될 것이다. 환자들은 자기 지역에 병원이 갑자기 문을 닫아 멀리 다른 지역까지 가야하고 더욱 비싼 의료비를 내야만 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될 것이다. 개정안대로 부대시설을 허용하여 모든 병원이 노인복지시설 운영, 건강식품 판매, 장례식장, 편의점, 목욕탕(온천업, 스파), 식당업, 이미용업, 호텔업까지 온갖 장사를 하도록 허용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병원은 정상적인 진료에 충실하고 의료서비스를 향상시키는데 노력하여 환자를 유치하기 보다는 수익 위주로 의료행위를 왜곡시키고 의료이외의 수익행위를 위해 환자를 이용하게 될 것이며, 의료비 상승은 물론 의료 이외의 소비를 증가시키는 등 환자들의 의료이용 양상도 왜곡되어 갈 것이다. 또한 보험적용 외 진료비에 대해 민간 보험사가 병원과 가격을 계약하고 환자를 유인알선하게 허용하게 되면, 신약, 신기술 등 비급여 진료비는 민간보험이 담당하게 고 민간보험에 가입하지 못한 가난한 사람들은 의료이용이 가로 막히게 될 것이다. 민간보험에서 담당하는 비급여가 건강보험으로 확대되기 어려워서 결국 건강보험은 보험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여타의 조항들도 모두 의료영역에 대한 자본 진출을 용이하게 하거나 영리를 위한 경쟁적 의료환경을 심화시키는 효과를 발생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그 결과는 의료서비스 질 향상과 국민건강 증진보다는 의료비 상승을 불러오고 의료의 양극화만 더욱 심화시키는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될 것이다. 국민의 입장에서 만들어야 할 의료법 개정안 의료계와 시민사회단체가 모두 반대함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의료법 개정안을 밀어붙이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미 정부가 답하고 있다. 실제로 정부는 의료법 개정 취지에서 의료서비스를 국가발전의 성장동력으로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2005년부터 의료산업선진화위원회를 구성하여 추진하던 정책을 이번 의료법 개정안에 모두 담아서 추진하려는 것이다. 참여정부는 애초에 공공 의료기관의 비율을 30%까지 확대하고, 총액예산제 등과 같은 합리적 비용절감 제도 도입 등을 통해 의료의 공공성과 건강보험의 보장 수준을 함께 높여 나가겠다는 약속을 했다. 이런 약속은 거의 이행하지 않은 채 오히려 정반대의 길로 가겠다는 것이 의료법 개정안이다. 정부는 이제라도 의료법 개정안에 대한 시민사회단체들의 입장을 겸허히 수렴하고 새로운 대안을 만들기 위한 논의에 나서야 할 것이다. 의료법 개정의 방향은 국민의 건강권을 보장하고 의료의 공공성과 형평성을 달성하기 위한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