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을 사람의 만남이 아름다운 도시로,
열린시대 새 지방자치를 만들어갑니다.
대전시내버스 파업이 11일 만에 끝난 뒤 대전시와 일부 언론은 ‘대전시와 대전시민의 승리’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보수언론은 지방도시의 파업사태를 이례적으로 사설로까지 다루며 차제에 노조의 기를 팍 꺾어버리겠다는 기세입니다. 내용인즉, 한마디로 “불편은 참을 테니 노조에 굴복하지 말라”는 시민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대전시에 노조가 백기투항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아전인수입니다. 체결된 노사합의서를 보죠. 시가 공표했던 임금인상 3% 가이드라인은 무너졌고, 사실상 4% 인상에 합의했습니다. 추가 1% 인상분은 시가 아닌 사측이 지급하는 것이라지만 이는 ‘눈 가리고 아웅’입니다. 사측이 부담하는 것은 올해까지고 내년부터는 시가 떠안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실익은 오히려 노조가 챙겼는데 이걸 승리의 전리품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어찌됐든 파업사태를 빨리 끝내지 않았느냐”고 또 말을 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이번 파업은 무려 11일간 계속돼 대도시 시내버스 파업 사상 최장기록을 세웠습니다. 서민과 학생은 연일 장맛비와 무더위 속에서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느라 파김치가 됐습니다. 잘 참았다는 시민들은 아마 승용차를 가진 사람들일 겁니다. 대전시는 그래도 더 장기화할 수 있었던 파업사태를 이 정도에서 마무리한 것은 큰 성과라고 항변합니다. 그렇다면 파업 전으로 되돌아가보죠. 노조는 당초 10%가 넘는 임금인상을 요구하다 7%대로 낮추고 나중에 5%대로 내렸습니다. 하지만 시는 3%에서 한 푼도 더 줄 수 없다며 아예 ‘협상’의 여지를 없앴고 결국 파업사태가 이어졌습니다. 노조 편을 들자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노조는 시민들의 호된 질타를 받아도 할 말이 없습니다. 시민을 볼모로 삼은 노조의 책임은 분명하기에, 또 이미 수많은 비난을 받았기에 더 언급하지 않을 뿐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전시의 책임이 해소되는 것은 아닙니다. 시는 성실하고 끈기 있는 협상으로 파국을 막아야 했지만 그런 노력이 부족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 어떻게 생고생을 한 시민들을 들먹이며 승리를 운운할 수 있는 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협상의 모든 과정을 지켜본 노동청과 경찰 관계자들조차도 “시가 좀 더 일찍 1% 추가 인상안과 같은 유연성을 가지고 성의 있게 협상을 했다면 파업을 막거나 더 빨리 끝낼 수 있었다”며 씁쓸해합니다. 일각에서는 정말 나와서는 안될 이야기이지만, 결과적으로 시가 파업을 유도한 것처럼 되어 버렸다는 말까지 불거졌습니다. 임금협상은 물가상승률 등을 계산기로 두드려 몇 %라고 나오면 팍 도장을 찍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왜 협상과 교섭이 필요하겠습니까. 과거의 어떤 임금협상이, 단체교섭이 이렇게 타결됐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협상’이란 측면에서 본다면 막무가내식으로 밀어부친 것은 노조만이 아니라 대전시가 더 했습니다. 그래도 시와 시민의 승리라고 고집한다면 ‘상처 투성이 뿐인 승리’라고 밖에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번 파업사태가 아무런 성과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대전시와 버스 노사 모두가 준공영제를 ‘부실ㆍ난폭운행’하며 혈세를 낭비해온 실체를 시민이 알게 된 것이 큰 소득입니다. 따라서 진정한 시민의 승리는 이제부터 준공영제를 착실히 개혁함으로써 얻어지게 될 것입니다. 이를 위해 대전시는 보다 많은 시민들이 편하고 빠르게 시내버스를 이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이에 앞서 준공영제를 섣불리 도입해 혈세를 낭비한 책임에 대해 사과하고 관련자에 대해서도 엄중 조치해야 합니다. 저의 주장에 대해 본질적인 문제에서 벗어난 곁가지이고, 괜히 파업사태의 후유증을 키우는 소모적인 논쟁이라고 반박하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번 파업사태에서 대전시와 일부 언론이 보여준 편향된 태도에 대한 비판이 결코 사소한 것이 아니며,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족을 붙입니다. 다른 많은 언론인처럼 저 또한 기자는 기사로 말해야 한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몸담고 있는 신문의 지면사정 때문에 이같은 취지의 기사가 게재되지 못했고, 고민 끝에 이 지면을 빌렸음을 밝혀드립니다. -한국일보 전성우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