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을 사람의 만남이 아름다운 도시로,
열린시대 새 지방자치를 만들어갑니다.
대통령 선거가 끝난 후 식구들끼리 몇 차례 선거 얘기를 나누게 된 적이 있었다. 탈학교생이며 투표권이 없는 딸 조차도 인터넷으로 열띤 토론에 참여했기에 이야기에 빠지지 않는다. 그러나 항상 되돌아 오는 질문은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였다. 어떻게 그 출신당의 국회 청문회 기준에도 못 미치는 사람이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는가라는 질문이다. 도대체 국민들은 무엇을 원하는 것이었을까? 선거과정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가장 많이 듣는 얘기는 노무현 정부에 대한 심판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얘기는 한쪽에는 민노당으로 부터 다른 반대편의 조선일보까지 공통적으로 하는 얘기였다. 심지어는 대통합신당까지도 이러한 주장에 동조했으니까? 사실상 모든 사람이 인정하는 얘기인 것 같다. 그렇다면 노무현 정부의 실정만으로 이명박의 당선을 설명할 수는 없는 것이다. 거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다음으로 나오는 얘기가 ‘경제에 대한 국민의 기대’ 때문이라는 것이다. 직장의 불안정성, 청년실업, 부동산 문제 등 경제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이명박을 찍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이러한 경제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해결책은 문국현 후보나 권영길 후보가 오히려 더 내실있는 해결책을 제시했다는 것이 후보들의 정책에 대한 일반적인 평가이다. 이 때 등장하는 것이 언론의 문제점에 대한 지적이다. 선거가 끝난 후 제시된 민언련의 선거관련 보도 모니터링 보고서에 있듯이 조중동은 물론 공중파 방송, 나가서 이번에는 인터넷 뉴스 포털까지 편파적이고 여론몰이 경마식 보도를 일삼았다는 것이다. 이 점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조중동이나 공중파를 포함한 언론들이 공정하지 않았다는 것은 한나라당 경선 후 박근혜 측이나 선거기간 중 같은 이회창 측에서도 제기한 내용이니까. 이러한 언론에 대해 불공정하다고 혹은 편파적이라고 얘기하는 것은 이명박 당선의 결과를 설명하기에는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도대체 이번 대통령 선거 결과에서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노망난 민심을 탓해야 하나? 이명박을 당선자로 만든 표는 어떤 성격의 표일까? 정동영 이회창 문국현 권영길에 던져진 표들은 무엇을 원해서 일까? 김대중 대통령이나 노무현 대통령을 뽑을 때 우리 국민들은 정치적 문제가 먹고사는 문제 이상의 그 무엇에 따라 움직였다고 본다. 그러나 이번에는 이슈가 경제문제로 바뀌었다. 사실 이러한 변화는 2002년 대선 이후 2004년 총선, 2006년 지방선거에 항상 나타난 이슈였다. IMF이후로 우리 국민은 일상적 삶의 문제로 돌아간 것이다. 그 일상적 삶이란 500만 국민 숫자만큼이나 대단히 복잡한 것이다. 이명박을 찍었다고 밝힌 사람들은 이념이나 세대를 초월해 ‘경제’로 뭉뚱그려져서 상징화된, 집, 월급, 장사, 직장, 사교육 등 구체적이고 실물적인 일상적 차원의 이유를 대고 있는 것이다. 부자들에게 경제는 부동산 값의 하락과 종부세이지만 가난한자에게 경제는 기름값과 국민연금일 것이다. 젊은이에게 경제는 청년일자리겠지만 가정주부에게 경제는 남편 직장과 사교육비이다. 이러한 것을 뭉뚱그려 경제라는 이름아래 부르면서 이러한 경제를 살려 줄 대통령에 대한 기대로 이명박을 뽑은 것이다. 사실이 그렇다면 안타까운 얘기지만 노무현에 대한 실망보다 이명박에 대한 실망이 몇 배 더 클 수 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일상적 삶을 뭉뚱그려 말하는 경제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은 없기 때문이다. 이제 경제는 대통령 한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중국의 생산성과 미국의 프라임 모기지 위기와 이라크 석유의 영향력이 삼성의 영향력보다 더 크다는 사실을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 혹시 이명박이 경제를 회생시킬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은 위장회생일 뿐이다. 노무현 정부의 경제성장이 수치적 성장이었지 일상적 삶의 개선이 아니었기 때문에 국민이 돌아선 것이다. 결국 문제는 경제가 아니라 “정치”다. 다만 이 때의 “정치”는 지금처럼 대통령이나 뽑고 국회의원들이 국회의사당 안에서 쌈박질이나 하고 언론이 이를 보도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명박을 뽑은 경제가 일상적 삶을 뭉뚱그려 말한 것이라면 이러한 일상적 삶을 그 주체인 개인 수준으로 되돌리고 이들의 상호작용을 의미있게 만드는 것이 정치라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이제 필요한 것은 거시적 담론으로의 정치나 대통령과 국회의원이 등장하는 정치가 아니다. 이제는 일상 차원에서의 정치가 필요하다. 가정과 마을과 교회와 직장과 학교 교실에서의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가 민주적이어야 하고 갈등이 아니라 협동지향이 되어야 한다. 정치가 제대로 되어야 한다. 이것이 진짜 경제를 살리는 길이다. 이제는 신영복 선생이 얘기했던 것처럼 ‘하방연대’를 해야하는 때가 된 것이다. 글 | 권선필 목원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philkwon@mokwon.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