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을 사람의 만남이 아름다운 도시로,

열린시대 새 지방자치를 만들어갑니다.

칼럼·기고·주장

촛불과 직접민주주의
  • 177


글 | 김병구 변호사(우리단체 집행위원)

 

두 달 동안 촛불집회가 계속되고 있다. 필자는 두 달 전 본 ‘금요논단`에 기고한 글에서 한미쇠고기협상의 문제점을 나름대로 지적하며 재협상의 필요성을 문제제기한 사실이 있다. 그러한 필자로서는 이후에 전개되는 한미쇠고기협상 반대 및 재협상 촉구의 촛불집회를 관심있게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금번 촛불집회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영역에 대하여 근본적인 차원에서 우리 사회에 많은 과제를 안겨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촛불집회가 던져 준 화두에 대하여 어떤 식으로든 답을 하지 않고 넘어 간다면 똑같은 일이 되풀이 될 것이다. 인간의 자유에 대한 열망은 불가역적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 계제에 직접민주주의에 관하여 한번 생각해 보고자 한다. 촛불집회의 합법성 문제를 떠나서 금번 촛불집회는 국가의 중요정책에 대하여 국민이 정부에 대하여 직접 정책방향에 대하여 요구할 뿐만 아니라 그 방법 또한 다수의 국민이 광장에 모이는 집회의 방법에 의하였다는 점에서 이는 분명 직접민주주의의 한 수단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주권자인 국민의 의사를 실현하는 방법에 대하여 우리 헌법은 대의제 민주주의를 원칙으로 하고 직접민주주의를 예외로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즉 우리 헌법은 법치주의 원칙아래 입법, 집행, 사법의 기능을 각각 국회와 정부, 법원에게 맡기고, 특히 국회는 국민에 의하여 직접 선출되는 국회의원으로 구성하며 행정부도 국민에 의하여 직접 선출되는 대통령을 그 수반으로 하게끔 하고 있다.

법치국가에서 입법 및 집행을 국민의 대표로 하여금 수행하게 하는 대의제 민주주의를 기본으로 채택하고 있는 것이다. 복잡한 현대사회에서 국가의 정책에 관한 의사결정을 국민의 대표들에 의하여 수행하게끔 하는 것은 불가피한 선택이다. 현대사회에서 직접민주주의를 통치의 기본으로 한다는 것은 공염불에 불과할 뿐이라는 것은 자명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우리 헌법에서는 직접민주주의를 예외적인 의사결정방법으로 하여 제72조에서 ‘대통령은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외교 국방 통일 기타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을 국민투표에 붙일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우리 헌법 상 직접민주주의적 제도로 인정되는 것은 이와 같은 국민투표권이 유일무이하다시피 하다. 물론 논자에 따라서는 헌법개정안에 대한 국민투표권도 직접민주주의의 한 제도로 인정하는 사람도 있으나, 헌법을 직접 개정하는 것도 아니고 정치권에서 합의된 안에 대하여 찬반투표를 하는 것이므로 그 의미는 크지 않다고 본다.

그러하다면 정부와 국민간에 갈등의 골이 깊어가는 현 시국을 타파하는 방법의 하나로서 대통령이 헌법 제72조에 근거하여 쇠고기 재협상문제를 국민투표에 부의하여 그 결과에 따라 향후 정책을 결정하는 것도 가능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우리 헌법 상 인정되는 직접민주주의제도는 국민투표밖에 없으므로 제도화 되어 있지 않은 직접민주주의제도의 도입도 차제에 논의가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대의민주주의 기구가 국민의 목소리를 제대로 담아 내지 못하는 경우 주권자인 국민으로서는 그러한 대의제 기구를 넘어서서 자신의 요구와 의사를 정책에 반영시킬 수 있어야 하며 그러한 경로가 제도화되어 있어야 국민주권주의에 충실한 민주적 제도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현행 지방자치 관련 법령에 의하면, 지역주민들에게 주민투표권, 조례의 제정 및 개폐청구권, 감사청구권, 주민소환권 등이 인정되고 있는 바 이는 모두 직접민주주의적 제도들이다. 특히 주민소환권 같은 것은 당해 지방자치단체의 장 및 지방의회의원으로 하여금 그 직을 상실케하는 효력이 있는 제도로서 그 견제적 효력은 상당하다.

그러나 중앙정치와 관련해서는 지방자치단체와 관련한 위와 같은 직접민주주의적 제도가 하나도 도입되어 있지 않으므로 작금의 사태를 부른 한 원인이 되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제도정치권에서도 국민의 자기실현에 대한 열망이 어느 정도인지를 알았을 것이므로 좀더 진지하고 적극적인 자세로 이 문제에 임해 주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이글은 중도일보 금요논단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