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을 사람의 만남이 아름다운 도시로,

열린시대 새 지방자치를 만들어갑니다.

칼럼·기고·주장

시민없는 시민운동?
  • 188

글 | 김제선(우리단체 정책위원장, 풀뿌리사람들기획단장)

 

시민 없는 시민운동이 문제라는 이야기를 한번쯤 들어보았을 것이다. 시민의 권익을 지킨다면서 정작 ‘꾼’들만 판쳐서, 정작 시민들은 참여하고 싶어도 참여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비아냥거림이 담겨 있는 말이다. 총선시민연대의 낙천낙선운동이 성공한 이래 높아진 시민운동의 영향력에 대한 비판이 보수언론과 단체들에 의해 본격화 되면서 이 말은 회자되기도 했다. 그러나 ‘시민 없는 시민운동’이라는 말은 시민운동의 성숙을 위한 성찰의 결과물로 만들어진 말이었다. 이슈만을 쫓아다니는 운동이 아니라 시민의 참여와 토론에 기초한 시민단체가 되어야만 우리 사회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는 시민운동 내부의 성찰을 압축적으로 표현했던 말이 바로 이 말이었다. 실제 시민단체에 회비를 매달 내는 회원의 수는 국가의 특별법에 의해 보호 되고 육성되는 정당의 그것에 비하면 매우 크다. 정당들이 상향식 공천을 한다면서 급조된 당원들을 억지로 늘리기 위해 이른바 동원당원, 문서 당원들이 횡행하는 상황에 비추어본다면 ‘당원 없는 정당’이 여전히 문제가 될 상황이지 ‘시민 없는 시민운동’을 문제로 삼는 것은 합당해 보이지 않기도 한다. 사실 시민운동에는 알려진 것 보다 훨씬 많은 시민들이 참여하고 있기도 하다. 잘 알려진 시민단체인 환경연합은 5만여 명, 참여연대는 1만4천여 명이 매달 자발적으로 1만원 내외의 회비를 납부하고 있으며 다른 나라의 시민단체에 비해 재정 자립도도 매우 높은 편이다. 한국의 시민단체들이 재정자립도가 높은 것에는 여러 사정이 중첩되어 있다. 외국의 시민단체들의 경우는 권력을 감시하고 시민의 권익을 옹호하는 대변형의 조직 유형보다는 사회서비스를 공공부문을 대신해 전달하는 유형의 시민단체들과 지역사회 개발을 위한 시민단체의 비중이 높은 탓에 재정 자립도가 낮은 편이다. 반면에 대변형의 시민단체가 많이 알려져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감시의 대상이기도 한 정부나 기업으로부터 지원을 받는 것은 독립성의 훼손을 가져올 수밖에 없어 이를 꺼리는 경향을 가질 수밖에 없고 그래서 재정자립도를 높일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비록 내핍과 궁핍의 고통이 따르더라도 말이다. 그런데 한국의 시민단체들이 높은 재정자립도와 적지 않은 회원 참여라는 성과를 이룩하고도 ‘시민 없는 시민운동’이라는 성찰을 내놓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강한 국가에 비해 취약하기 짝이 없는 시민사회의 영향력이 시민 참여를 가로 막고 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시민의 참여를 훨씬 더 이끌어 내야한다는 시민운동의 성찰적 노력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문제는 시민운동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의 시선은 예전 같지 않다는 점이다. 공공선을 해결하기 위해 고생하는 단체라는 우호적 지지도 있지만 시민단체가 나서면 문제 해결이 더 어려워지고 갈등만 증폭된다는 부정적 인식도 적지 않다. 이런 점에서 헌신과 결단의 시대, 진정성 소통의 시대를 넘어서 자기 결정의 시대를 맞는 시민운동의 숙제는 새로워지고 있다. 정부와 기업에 변화를 요구하고 감시하는 것을 넘어서 시민 개인, 나 스스로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운동, 시민단체의 주장이 옳다는 확신을 넘어 시민사회와 소통하고 협력하는 개방적 자세, 생활의 현장인 마을과 직장에서 직접 참여하고 실천하는 운동을 만들어가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옳은 것은 옳다고 이야기하고 그른 것은 그르다고 이야기하는 정도의 용기에 시민들은 더 이상 감동하지 않는다. 정론적 기능은 더욱 강화되어야하겠지만 방식에 있어서는 시민들이 생활의 문제를 직접 진단하고, 행동 방식을 스스로 결정하도록 만들어가기 위한 노력이 시민운동에 필요한 일이 아닐까? 시민단체들의 ‘시민 없는 시민운동’에 대한 걱정은 이렇게 업그레이드 되어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