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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기고·주장

조중동, 식인귀와 황제폐하의 함수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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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종석 사무국장(대전충남민언련)

 

1815년 3월 초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유배지인 엘바섬을 탈출했다. 그는 세를 불리며 진격하기 시작했고, 같은 달 21일 한달도 채 안돼 파리 뛸르리 궁에 전격 입성했다. 이 20여일 동안 프랑스 일간지 <르 모니뙤르 유니베르셀>의 관련보도는 극에서 극으로 요동쳤다. 이 신문은 1면 머릿기사에서 나폴레옹을 3월9일 ‘식인귀’, 10일 ‘코르시카 산 오우거(주-잔인하지만 멍청한 서양의 괴물, 모욕적인 표현)’, 11일 ‘호랑이’, 12일 ‘괴물’, 13일 ‘폭군’, 18일 ‘강탈자’, 19일 ‘보나파르트’, 20일 ‘나폴레옹’, 21일 ‘황제 보나파르트’, 22일 ‘높고도 귀하신 황제 폐하’로 지칭했다. ‘식인귀’가 2주도 안돼 감히 이름도 부르지 못할 정도의 ‘높고도 귀하신 황제 폐하’가 된 것이다. 일제 강점기에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제호위에 일장기를 올려놓고 ‘천황폐하의 은혜에 감사하고 황군의 일원으로 기꺼이 전쟁에 나서라’는 식의 보도를 하며 친일을 일삼았다. 이 두 신문사의 사장은 김구 선생의 반민족행위 처단 살생부에까지 이름이 오를 지경이었다. 해방 뒤 어느정도 비판성을 회복한 이 신문들은 그러나, 70년대 유신독재에 비판적이던 기자들을 대거 해고한 뒤 다시 ‘찌라시’의 길로 들어섰다. 5공화국 전두환 군사독재 정권 찬양과 왜곡보도에 두각을 보였던 조선일보는 동아일보를 제치고 전두환 군사정권을 거치며 이른바 1등신문으로 도약했다. 이 신문사 출신 기자들은 대거 청와대와 국회로 진출했다. 동아일보 기자였던 정연주는 언론자유수호운동을 펼치다 1975년 해직됐다. 이후 전두환 정권의 모진 탄압과 고문을 피해 미국으로 건너갔고 1988년 한겨레신문 창간과 함께 워싱턴 특파원으로 참여했다. 2000년 한겨레신문 논설주간으로 귀국한 그는 한국 언론사에 기념비적인 용어를 유통시킨 칼럼을 쓴다. ‘조중동’과 ‘조폭언론’이 그것이다. 2003년, 당시 대통령이던 노무현이 선거캠프 고문이었던 서동구씨를 KBS사장에 임명하자 노조와 언론시민단체가 반발해 8일만에 물러났다. 그 뒤 사장추천위원회가 구성됐고 공모절차를 통해 정연주가 사장에 임명됐다. 조선과 동아일보 등은 즉각 정연주를 ‘낙하산’이라고 규정하며 집요한 공격을 퍼부었다. ‘조중동은 조폭언론’이라는 딱지를 안겨준 정연주에 대한 그들다운 보복이었다. 2008년 조중동과 정부기관의 총 공세 속에서 정연주는 결국 불법적으로 강제 해임됐다. 2008년 새 대통령 이명박의 측근 형님인 최시중이 방통위원장에 임명된 것을 시작으로 YTN, 아리랑TV, 한국방송광고공사, KBS 등에 대대적인 낙하산 인사가 단행됐다. 신문법과 방송법 개정안을 내놓으며 조중동과 결탁된 7,80년대식 독재체제로의 회귀를 시도하고 있다. 나는 언론이 한 사람을 ‘식인귀’로도 ‘높고도 귀하신 황제폐하’로도 왜곡해 민심을 어지럽힐 수 있다는 점에서 ‘이명박의 성공’이 두렵고 용납할 수 없다. 자전거와 비데, 전화기, 상품권 등을 뿌리며 신문부수를 유지해 영향력을 행사하는 조중동을 퇴출시키지 않는 한 ‘식인귀’는 ‘높고도 귀하신 황제폐하’가 되고 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