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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기고·주장

노무현 전 대통령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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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우 한남대 홍보담당관(전 한국일보 차장, 전 대전참여자치연대 감사)

 

당신을 참 많이 좋아했습니다.   당신의 치열한 삶을 존경했습니다. ‘5공(共)청문회’에서 정말 당신에게 반했습니다. 독재권력을 향해 폭풍우처럼 쏟아내는 외침은 카타르시스, 그 자체였습니다. 불끈 움켜쥔 주먹과 날카로운 눈빛, 명패를 내던진 혈기 때문이 아닙니다. 새파랗게 날 선 당신의 치밀한 논리에 매료되었습니다. 그 후로도 말과 실천이 유리되지 않는데서 온 당신의 자신감은 살아 펄떡이는 힘찬 논리로 세상을 압도하는 듯 보였습니다. 서민적인 풍모와 수줍은 듯 어색한 웃음은 또한 진정성과 인간미로 비쳤습니다. “아!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 당신은 청년시절 저에게 ‘복음’처럼 다가왔습니다. 열흘 후면 당신이 떠난 지 1년입니다. 2009년 5월 23일 그 날의 톱뉴스는 정말 믿기지 않았습니다. 비보를 접한 토요일 아침부터 당신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종일 묵상했으나 무엇인가 선명하게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머릿속이 희뿌옇게 먹먹했습니다. 늦은 저녁을 먹고 나서 아이들을 데리고 서대전시민공원에 마련된 분향소를 찾아갔습니다. 1시간 가까이 줄을 서 기다린 끝에 국화꽃 한 송이를 드렸죠. 그리고 돌아오는 길, 시민들이 애도의 글을 적어서 매단 노란 리본들 가운데 하나에 눈길이 꽂혔습니다. ‘노무현, 당신은 예수를 많이 닮았습니다’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동의하지 않지만, 고맙게도 그 순간, 엉켜있던 저의 실타래가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인간의 의로움이란 것이 얼마나 연약한 것인지 깨달았습니다. 한때 제가 그토록 갈망했던 당신의 정의감조차 그렇게 실존의 거부로 끝을 맺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믿는 의로움이란 것이 결국 다른 사람보다 ‘조금’ 나은 것에 불과하지 않나요? 한때 그 차이가 커 보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렇지 않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왜 우리는 이 땅에 태어나는 걸까요?” ‘엠마우스’라는 빈민구호 공동체를 만들어 평생을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과 함께 산 피에르 신부는 그의 책 <단순한 기쁨>에서 이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이지요.” 이어령은 <지성에서 영성으로>란 최근 저서에서 “그동안 걸어왔던 외롭고 황량한 벌판을 보았습니다. 남을 찌르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사막의 전갈 같은 슬픈 운명 말입니다.”라고 고백했는데, 저도 비판적 지식인이란 허울 속에서 전갈처럼 살지 않았나 하는 깊은 찔림이 있었습니다. 이제는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싶습니다. 속상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참고 잘 들어주고, 따뜻한 미소를 지어 주는 것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점차 나아지겠지요. 시인 김용택의 표현처럼, ‘아, 생각만 해도 참 좋은 당신’이 많아지길 소망하면서 말입니다. 날선 이념보다 텁텁한 인품이, 차가운 지성보다 영성의 향기가 느껴지는 그런 세상을 그려봅니다. ‘바보, 노무현’, 당신도 후회 없이 사랑을 하고 떠나셨길 바랍니다. 2010년 따뜻한 봄날, 당신을 더욱 안타깝게 떠올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