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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코미디가 된 과학벨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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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래(단국대 도시및지역계획학과 교수)

 

블랙 코미디가 된 과학벨트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이하 과학벨트) 입지선정 문제가 블랙 코미디로 전락할 처지에 놓여 있다. 올 초 방송좌담회에서 대통령이 충청권 약속을 헌신짝처럼 저버리고 과학벨트를 과학자에 맡겨 새로 입지 선정하겠다는 입장을 밝히자, 여러 지역들이 과학벨트 입지유치전에 뛰어들고 있다. 과학벨트 입지 선점을 둘러싼 춘추전국이 벌어지고 있다. 우리나라 정치판에서 지역주의적 정치 갈등은 정치의 모든 에너지를 빨아드려 올바른 정치가 갖는 긍정적 기제의 작동을 가로막는다. 아니다 다를까, 각 지역들이 모두 국가백년대계를 내세워 과학벨트 유치에 뛰어들자 과학벨트는 완전히 새로운 것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지역주의 요구가 정치적 에너지를 갖게 되면서, 정부는 어느 요구도 쉽게 거부할 수 없게 되자, 과학벨트는 ‘분산벨트’란 것으로 형해화 되고 있다. 정치적 에너지가 어떻게 실리고, 이를 어떻게 서로 흥정해 표가 되는 것으로 적절히 배분하느냐에 따라 ‘분산벨트’는 여러 기괴한 모습을 하고 있다. 과학벨트의 핵심은 ‘중이온 가속기와 기초과학원’이다. 이 두 가지를 중심으로 어떻게 적절히 분산하느냐에 따라 여러 조합 안이 제시되고 있다. 중이온 가속기는 충청권에 두고, 기초과학원을 영남과 호남에 나눠주자는 안, 중이온 가속기와 기초과학원은 충청권에 두되 기초과학원 분원을 분산시키자는 안, 중이온가속기와 기초과학원은 충청권에 두되 지역별로 특성화된 연구센터를 두자는 안이 제안되어 있다. 여기에 덧붙어, 차제에 사업비를 현재 3조 7천억원 남짓한데서 3배인 10조원으로 뻥튀겨, 아예 충청권, 영남권, 호남권에 각각, 3개의 벨트를 만들자는 겁 없는 안도 나와 있다. 이 모든 안들은 대개 한나라당 쪽에서 나온 것이다. 최근 들어 한나라당 핵심인사들은 더욱 용감한(?) 안을 내놓고 있다. 가령, 한나라당 박근혜의원은 대구, 대전, 광주를 잇는 삼각벨트를 구축해 각각을 과학기술특구로 지정하자는 차기 대통령 공약수준의 안을 내놓고 있다. 한나라당 원내대표도 이에 뒤질세라 ‘과학벨트가 가는 곳에 (수익자 부담원칙에 따라) 방폐장도 함께 가야 한다’는 생뚱맞은 안을 던져 놓고 있다.   과학벨트 논의가 이쯤 되면 이는 코미다. 코미디 중에서도 우리를 슬프게 하는 블랙코미디다. 과학벨트를 분산시켜 모든 지역이 골고루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도 나쁠 게 없다. 그러나 분산벨트는 더 이상 본래의 온전한 과학벨트가 아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 뒤, 그 악화에 엉뚱한 정치적 혼령을 불어 넣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비극인 까닭은 국가의 과학미래를 위한 것이란 진짜 과학벨트에 죽임을 가한 뒤, 허깨비 과학벨트를 만들어 놓고 편협한 소지역주의자들이 게걸스럽게 뜯어먹는 탐욕의 대상으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비극의 뿌리는 이 사회의 원칙과 신뢰의 붕괴다. 표를 의식해 과학벨트의 충청권 약속을 내걸고 당선된 것도 속임이었지만, 표를 의식해 약속한 것이니 이젠 법과 과학에 맡겨 입지를 선정하겠다고 하면서 당초 약속마저 저버리는 것은 더욱 노골적인 속임이다. 그러나 그 속임을 행하는 자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속이면서도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있다. 그동안 속임을 줄곧 해왔으니 속임의 부도덕성이 무감각할 수밖에 없을지 모른다. 최고통치권자가 원칙과 약속을 밥 먹듯 속이니, 국민의 누가 과학벨트를 올바르게 추진하려고 할까? 이런 상황이라면, 탐욕스러운 지역이기주의를 거리낌 없이 드러내고 과학발트를 자기지역으로 가져가겠다고 하는 것에 대해 누가 돌을 던질 수 있을까? 원칙과 신뢰가 존중받지 않는 사회는 결국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적 약속이 작동하지 않는, 그래서 ‘사회가 실종한 무(無)사회’를 말한다. 그것은 홉스가 말하는 만인에 의한 만인 투쟁이 전면화 된 사회다. 그러한 사회에는 온전한 과학이 있을 수 없고, 또한 과학을 통한 국가의 미래가 있을 수 없다. 원칙과 신뢰의 파기로부터 파생되어 나온 분산벨트는 기만의 벨트일 뿐이고 과학과 과학의 미래를 죽이는 벨트일 뿐이다. 치유법은 단 한가지다. 당초의 약속으로 돌아가야 한다. 즉 신뢰에 터한 원칙으로 돌아가는 것만이 답이다. 당초 약속대로 세종시-대전대덕-오송오창을 엮는 과학벨트로 조성하는 것만이 실추된 원칙과 신뢰를 복원할 뿐 아니라 과학벨트를 올바르게 조성하는 길이다. 벨트의 광역화는 그 다음으로 가져가야 할 과제다. <끝> ----------------------------------------------------------------------------------------- 위의 글은 <참여와 자치> 3,4월 합본호에서 발췌한 글임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