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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4월 20일 <장애인의 날>을 <장애인차별철폐의 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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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대전장애인대회 조직위원장 김 남 숙

 

이제 4월20일<장애인의 날>을 <장애인차별철폐의 날>로.

 

~♪♬~ 산들산들 부는 바람~♬~아리랑 타령이 절로 나오는 봄이 왔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따뜻해져가는 햇볕사이로 얼굴을 내미는 하얀 목련과 길가 나뭇가지의 푸릇한 새싹이 우리들의 바쁜 일상과 분주한 마음을 잠시 내려놓으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생명이 있는 것은 어느 것 하나라도 존귀하지 않은 게 없습니다. 열 달을 손꼽아 기다리고 몇 시간의 산고를 치른 후 온 가족의 기대 속에 태어난 새 생명, 내 소중한 아이가 몸 어딘가에 이상이 있다고 의사는 말합니다. 신생아실의 다른 아기들처럼 너무나 귀엽고 예쁘기만 한데... 뇌의 어딘가가 손상되어 평생 장애를 갖고 살 수도 있다는 청천벽력 같은 검사결과를 받았습니다. 내 주변 곳곳에 장애를 가진 분들이 우리의 이웃으로 살고 있다는 걸 분명히 알고 있었지만, 내 아이에게 또 우리 가족에게 닥쳐올 수 있다는 생각은 정말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많은 장애인 가족들은 이런 기분을 공감할 것입니다. 장애자녀를 둔 부모님들에게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세 가지 소원이 있습니다. 첫 번째 소원은 내 아이가 나이먹지 않고 그냥 어린 아기로만 평생을 살았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아이가 한 살 두 살 커가는 모습을 보면서 기특하고 행복해지는 마음은 크게 기대하지 않았지만, 주변의 시선 때문에 느끼는 고통이 이렇게 클 줄은 몰랐습니다. 아이가 어릴때는 병원의 재활치료실에서 살다시피 하고, 조금 더 자라서 여느 아이들처럼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넣으려고 하니 돌봐줄 인력도 없고, 편의시설이 안되어 있다며 입학거절을 당합니다. 8살이 되어 내 집 앞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에도 학교에서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특수학교를 가는 게 어떠냐며 밀어내는 바람에 이른 아침부터 1시간이 넘게 통학버스를 타야하는 먼 곳의 학교에 입학해야 했습니다. 이렇게 어렵게 고등학교까지 왔는데 졸업 후 지역사회의 어디에도 갈 곳이 없어 다 큰 아이가 집안에서 갇혀 지내다시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내 아이의 장애원인이 어느 날 기적처럼 좋아지거나, 장애인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어 많은 사람들과 어울려 살게 되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사실 쉽게 그렇게 될 리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기적을 바라는 것은 장애인을 바라보는 우리사회 구성원들의 인식 때문입니다. 결국 장애 문제의 해결방법은 장애와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각에 달려있는데, 장애인은 여전히 ‘시혜와 동정’의 대상이며 그러한 장애인을 위해 ‘봉사’하는 것은 삭막한 곳에서 인간미 넘치는 아름다운 선행 정도로 생각합니다. 개인의 능력과 노력으로 장애를 ‘극복’하고 ‘성공’한 장애인의 영웅담은 그렇지 못한 장애인들을 무능하고 나약한 사람으로 몰아가며 모든 문제를 장애인 개인에게 떠넘기고 있습니다. 「장애인이기 때문에 차별받는 것이 아니라, 차별받기 때문에 장애인이 된다」는 말을 장애인단체에서는 자주 합니다. 우리 모두 깊이한번 생각해 보았으면 하는 중요한 말이라고 생각됩니다. 마지막 세번째 소원은, 장애를 가진 자녀보다 어떻게든 부모가 하루라도 더 살아야한다는 것입니다. 장애인복지가 시혜적이고 형편없는 이 땅에서 장애인으로 혼자 살아간다는 것은 초인적인 힘을 갖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신체적․정신적 손상으로 인해 일상생활에 상당한 제약을 받는 자‘라고 하는 장애인에 대한 의학적 정의에서 신체적 손상impairment은 그냥 손상일 뿐입니다. 이것으로 인해 배제되거나 차별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비장애인이 만든 사회적 환경과 조건 그리고 물리적 장벽 때문에 장애를 갖는 일이 사라질 때 우리 부모들의 말도 안 되는 세 가지 소원은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 위의 글은 참여와자치 3,4월 합본호에서 발췌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