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을 사람의 만남이 아름다운 도시로,
열린시대 새 지방자치를 만들어갑니다.
하승수(변호사,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지방자치위원장)
지방자치 20년의 명암
1991년 지방자치가 부활한 지 이제 20년이 되었다. 20년이라는 세월은 사람이 성년이 될 기간이다. 이 기간 동안 우리 지방자치는 많이 성숙했고 발전했는가? 현실을 보면, 우리 지방자치는 여전히 미숙아 수준이다.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부패나 예산낭비는 심각한 수준이고, 일부 지역에서 드러난 지방자치단체장의 독단적인 행태는 수많은 갈등들을 양산해 왔다. 지방의회도 마찬가지이다. 지방의원들의 부패, 낭비성 해외연수, 자질이 부족한 언행 등은 수없이 거론되어 왔다. 보다 중요한 것은 지방자치가 우리들의 삶의 질을 기대만큼 향상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방자치 부활 이후에 지역정책의 핵심은 늘 ‘토건사업’이었다. 지방자치단체의 예산서를 보더라도, 상당수 지방자치단체에서는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항목이 ‘시설비 및 부대비’라는 항목이다. 땅파고 건설하는 데 주로 쓰는 예산이다. 그동안의 경험으로 보면, 이런 식의 토건사업은 지역주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지 못했다. 특히 비수도권 지역에서는 지난 20년 동안의 토건사업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빠져나가고 지역의 활력은 도리어 떨어진 경우들이 많다. 이런 와중에 일부 중앙언론이나 중앙정치인ㆍ관료들은 지방자치 무용론을 계속 퍼뜨리고 있다. 지방자치를 해서 좋아진 게 뭐냐? 는 것이다. 그러나 거꾸로 질문을 던져 볼 필요도 있다. 만약 지방자치를 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필자의 생각으로는 지방자치를 하지 않았다면, 지역의 상황은 더욱 안 좋아졌을 것이다. 중앙집권을 선호하는 사람들은 지역을 무시하고 지역위에 군림하려고 했을 것이다. 그런 정책기조 속에서 지역 스스로 활로를 찾기란 어려웠을 것이다. 지역에서 민주주의를 논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중앙에서 내려오는 관선 지방자치단체장만 있고 지방의회조차도 없었다면 지역은 스스로의 목소리도 내지 못하고 질식당했을 것이다. 사실 아무리 지방자치가 기대에 못 미친다고 하더라도, 그보다는 중앙집권적인 국가체제로부터 나오는 문제가 더 심각하다. 중앙정부 관료들이 지방관료조직보다 더 투명하게 깨끗하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 것인가? 4대강 사업으로 10조원을 낭비하는 중앙정부가 지방자치단체보다 더 예산을 잘 쓰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중앙관료들이 지방자치단체장보다 소통을 잘 하고, 국회가 지방의회보다 유권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잘 기울인다고 할 수 있을까? 물론 지난 20년 동안의 지방자치에 문제가 많았던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지방자치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한국의 잘못된 지방자치제도의 문제였던 측면이 많다. 지방자치 부활 이후에도 중앙이 권한과 재정을 틀어쥐고 있었기 때문에 지방자치단체는 스스로 지역발전의 방향을 잡기가 어려웠다. 중앙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들어 놓았던 것이다. 그리고 지방자치단체장의 권한만 크고 지방의회의 권한은 약한 제도를 만들어 놓았다. 이런 제도 하에서 ‘제왕적 지방자치단체장’의 폐단이 나타났다. 인사, 예산, 도시계획, 인ㆍ허가권을 가진 지방자치단체장을 견제할 주체는 없었다. 그리고 정치의 문제도 컸다. 공천권을 틀어쥔 국회의원들이나 원외위원장들이 공천권을 엉터리로 행사하여 지역정치까지 망가뜨린 측면이 많은 것이다. 또한 지방자치를 부활시키면서도 지역주민들의 참여는 완전히 봉쇄했던 것이 현실이었다. 1991년 당시에는 지방자치법상 주민참여제도가 전무하다시피 했다. 주민참여제도가 도입되기 시작한 것은 2000년이 되어서였다. 그 때부터 주민발의, 주민감사청구, 주민투표, 주민소송, 주민소환 등의 제도들이 도입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은 감이 있었다. 이미 지방자치는 많이 망가져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난 20년 동안의 지방자치를 통해 성과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긍정적인 변화도 있었다. 우선 지방행정의 문턱이 낮아졌다. 또한 주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킨 사례들도 부족하나마 만들어져 왔다. 지역 시민사회가 활성화된 것도 중요한 변화이다. 지역에서 출발한 좋은 사례가 국가차원의 제도를 바꾼 경우들도 있다. 1991년 충북 청주시의회에서 만든 정보공개조례는 국가 차원의 정보공개법 제정으로 이어졌다. 2003년 광주광역시 북구에서 시작된 주민참여예산제는 다른 지역들로 확산되다가 올해 9월부터는 지방재정법에 의해 전국의 모든 지방자치단체에서 의무적으로 시행될 예정이다. 지역의 실정에 맞고 주민들의 삶의 질을 구체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다양한 정책들이 점점 많이 나오고 있다. 제주도의 친환경 학교급식같은 정책들은 지역에서부터 모범사례를 만들면서 전국적으로 확산되기도 했다. 보육정책에 대한 관심도 지역에서부터 먼저 높아졌고, 국가적인 보육정책의 강화로 이어졌다. 국가는 사실상 농촌을 버렸지만, 농촌지역 지방자치단체들은 그런 농촌을 살리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다. 복지와 관련해서도 모범적인 사례들은 지방자치에서 나왔다. 장애인 편의시설 사전점검제도, 지역아동센터 지원 확대, 작은 도서관 활성화 등도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추진된 정책들이다. 이처럼 지방자치 20년 동안 지역에 밀착하고 생활에 밀착한 ‘좋은 사례’들도 많이 나왔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면 기대에 못 미치는 것이 사실이다. ‘좋은 사례’들도 부분적인 수준에 그치고 있다. 지역 전체를 바람직하게 변화시키는 데에까지는 이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20년은 어떠할 것인가? 필자는 우리나라에서도 ‘좋은 지방자치’를 하면 지금보다 민주주의나 ‘삶의 질’ 수준을 높일 수 있다고 믿는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지방자치의 대대적인 혁신이 필요하다. 혁신을 위해서는 두 가지의 방향이 동시에 추진되어야 한다. 첫째는 국가차원의 법제도를 개혁하는 것이다. 불합리한 중앙통제를 철폐하고 재정의 분권을 강화하며, 지역주민들의 참여를 확대하고 지방의회를 활성화하는 제도개선이 필요하다. 둘째, 지역 스스로 더 많은 혁신을 해야 한다. 인사, 예산, 도시계획, 복지, 환경, 교육, 문화, 지역경제 활성화 등 다양한 영역에서 변화가 필요하다. 이러한 변화는 행정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행정, 의회, 시민사회, 지역주민들의 협력이 필요하다. 이런 협력을 통해 나온 창조적인 사례들이 확산되고 국가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면, 자치와 분권을 지지하는 목소리는 기득권 중앙집권세력을 흔들 수 있을 만큼 커질 수 있을 것이다. --------------------------------------------------------------------------------------- 이 글은 비슷한 내용으로 「열린전북」 6월호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