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을 사람의 만남이 아름다운 도시로,
열린시대 새 지방자치를 만들어갑니다.
강영희(회원, 전 알짬마을어린이도서관장)
“관장님! 마을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편안하고 가볍게 써주시면 되요” 전화 속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모처럼 하는 부탁이라 가볍게 웃으며 승낙했다. 그런데 참 난감하다. ‘마을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쓰려니 숙제로 낸 일기를 써야 하는 기분이다. 특별한 거 없이 그저 그런 날이었는데 갑자기 특별한 거 적어내라고 할 때의 난감함이 온다. 허긴 동네엔 술친구 하나 없다고 말하던 몇 년 전의 우리 신랑을 생각하면 마을에서 차를 마시고, 함께 산책하는 사람이 있고, 같이 책을 읽고 얘기할 친구가 있고 필요한 거 수시로 빌려 쓰고 사는 것이 특별한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쓰고 싶은 얘기가 생긴다. 작년까지 우리 집은 반찬을 배달해 먹었다. 야근도 많고, 저녁 약속도 많아 집에서 밥 먹는 횟수는 점차 줄어들고, 어쩌다 밥을 하다 보니 밥상을 차리는 일이 습관이 아닌 일이 되어버렸다. 귀찮아진 것이다. 때맞춰 반찬 배달을 하는 ‘허준의 밥상’이 생겼으니 난 참 복 많은 여자다. 식당을 크게 했던 이의 말에 의하면 화학조미료를 안넣는 식당은 거의 없단다, 다만 안넣은 듯이 맛을 내는 게 식당업의 기술이란다. 그러나 난 한번도 ‘허준의 밥상’을 의심해 본적이 없다. ‘허준의 밥상’을 운영하는 사람이 마을어린이도서관에서 처음부터 함께 일한 자원활동가이기 때문이다. 그 친구가 사람들에게 음식을 대접할 때 어떤 맘으로 하는지 난 잘 알고 있다. 도서관을 같이 하면서 알게 된 신뢰이다. ‘허준의 밥상’에서 반찬을 주문해 먹은 후 생각지도 못했던 변화가 일어났다. 생활비가 줄었다. 식재료값이 줄었고, 찬거리 때문에 어쩌다 가는 홈플러스에서 과소비가 없어졌다. 그뿐 아니다. 쓰레기가 줄었다. 허준의 밥상은 일주일에 두 번 직접 집으로 배달해주는데 배달 왔다가 우리집에 나오는 폐지나 헌옷을 수거해서 알짬마을어린이도서관 가져다준다. 친정집에 다녀온 정민이 엄마의 고구마를 갖다 주기도 한다. ‘허준의 밥상’은 반찬 뿐 아니라 마을택배의 역할까지도 톡톡히 해 냈다. 우리집 식구들은 ‘허준의 밥상’이 문을 두드리면 서둘러 문열어주며 반긴다. 어머니는 누구세요? 할 것도 없단다. 계단 올라오는 소리만 들어도 아신단다. 발소리도 알아듣고 반가워 할 수 있는 여유가 마을에서 살아간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이런 허준의 밥상이 일을 그만두었다. 같이 할 사람이 없어 재미없다고.... 허준의 밥상이 그만둔지 한 달!! 여전히 마을사람들은 허준의 밥상을 그리워한다. 이 그리움이 또 무슨 일을 만들어내는 조짐이라는 걸 나는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