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을 사람의 만남이 아름다운 도시로,
열린시대 새 지방자치를 만들어갑니다.
김종서(배재대학교 법학부 교수, 대전충남민주언론시민연합 상임대표)
배재대학교 법학부에서 헌법을 담당하고 있는 김종서입니다. 안녕하십니까, 라는 수많은 대자보가 붙고 있습니다만 대자보를 붙이는 사람도 그 대자보를 보는 사람도 안녕하지는 못합니다. 이 나라가 누구에게 안녕하냐는 인사조차 못하는 나라가 되어 버렸습니다. 이게 무슨 나라입니까? 아이들 놀이모임을 만들어도 이보다는 나을 겁니다. 제가 법을 공부하는 사람인지라, 헌법 이야기를 좀 해 보겠습니다. 2008년 촛불집회 때 많이 불렸던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노래 아시죠? 잘 아시다시피 우리 헌법 제1조 제1항에 있는 말입니다. 민주공화국에서는 왕이 허용되지 않습니다. 나아가 민주공화국에서는 독재자가 용납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민주공화국에서는 국민이 주인이어야 합니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누가 국회 다수당이 되든, 최소한 국가의 운영에 국민의 뜻이 반영되는 나라가 민주공화국입니다.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입니까? 그러면 도대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헌법 조항은 무엇일까요? 최고법인 헌법 제1조부터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럴 리는 없겠지요. 그것은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 아니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대한민국을 민주공화국답게 만들라는 뜻입니다. 민주공화국의 요청에 반하는 일체의 세력에 대하여 단호히 거부하라는 명령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국민의 뜻을 왜곡해서 권력을 획득하고 그렇게 얻은 권력을 국민의 뜻과는 정반대 방향으로 휘두르는 이 정권으로부터,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서, 이 나라를 민주공화국으로 만들기 위해 우리는 지금, 이 엄동설한에 여기 이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헌법 제1조는 제2항에서 또한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주권이란 모든 권력의 위에 있는 최고 권력입니다. 국민이 최고권력자라는 뜻입니다. 소위 민주공화국이라는 대한민국에서, 모든 권력이 댓글에서 나온 처지에, 누구도 안녕하지 못하다고 전국 방방곡곡에 대자보가 붙고 있는 지금, 우리 국민이 주권자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러면 대한민국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는 헌법 제1조 제2항도 거짓말일까요? 그럴 리가 없겠지요. 이 역시 대한민국의 주권자는 국민이어야 한다는 말이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와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국민이 주권자임을 부정하고 국민의 뜻을 왜곡하여 권력을 가로채고 하나부터 열까지 국민의 뜻에 반하는 짓만 골라 하는 정권이 있다면, 이제 주권자인 국민이 나서서 바로잡으라는 명령이겠지요. 그렇습니다. 우리는 지금 국민이 주권자임을 부정하고, 댓글로 권력을 얻고, 그 권력으로 국민의 안녕을 해치는 이 정권에 맞서서, 우리의 주권을 회복하기 위해 이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 함께 다시 주권자로 우뚝 서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철도노조가 파업을 시작한지 보름이 지났습니다. 직위 해제된 노동자가 12월 24일자로 7,712명이랍니다. 그것도 모자라 사상 처음으로 민주노총에 수천 명의 경찰이 강제 난입하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그곳은 경향신문사 건물이었습니다. 노동이 짓밟히고 언론이 유린되는 반민주적 폭거가 일어났습니다. 그것도 압수수색영장도 없이, 체포영장 하나 들고 말이죠. 여러분 민영화가 무엇인가요? 공공의 이익과 직결되는 중요한 재산이나 사업의 경영권을 민간에, 쉽게 말하면 사기업에 넘긴다는 뜻입니다. 사기업이 하는 일이 뭐지요? 이윤 추구, 쉽게 말해 돈 버는 일 아닙니까? 돈 되는 일이면 무엇이든 하는 것이 기업의 생리 아닙니까? 돈 버는 방법은 지출을 줄이고 수입을 늘리는 일이니, 인력 감축과 요금 인상은 예정된 일 아닌가요? 그렇게 철도도, 병원도, 수도도 팔아넘긴다는 게 지난 정권부터 현 정권까지 줄기차게 해 온 일 아닙니까? 우리가 이런 일을 지켜보고 있어서야 주권자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를 대신해서 민영화라는 이름의 사유화를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철도노조 노동자 여러분께 뜨거운 응원의 박수 한 번 보내드립시다. 크리스마스이브에 모처럼 아내와 영화를 보았습니다. <변호인>입니다. 영화를 보다 보니 극장 안에 관객들 중 우시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저는 울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화가 났습니다. 이 영화가 담고 있는 시대가 1978년부터 1987년까지인데, 지금의 상황이 그 때와 조금도 달라진 것 같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대자보 붙인다고 교장이 경찰에 신고하고, 교육부가 공문 내려 보내는 것이 과연 21세기에 있을 수 있는 일입니까? 파업한다고 8,000명 가까운 노동자를 직위해제하고, 파업지도부 체포한답시고 합법적인 노동자단체를 경찰들이 짓밟는 게 과연 민주공화국에서 있을 수 있는 일입니까? 대통령이란 사람이 인사 참사를 일으키고도 자신의 공약을 줄줄이 파기해 놓고서도 사과 한 마디 안 해 놓고서는, 내가 민영화 안 한다고 하는데 왜 못 믿느냐고 하는 게, 난 댓글 도움 받은 일 없다는 게, 이게 가당키나 한 일입니까? 그러나 영화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마지막 장면이었습니다. 약한 시민들은 자신의 권리를 스스로 지킬 수 없으니 법조인이 앞장설 수밖에 없다는 송우석 변호사의 말이 뇌리에 박혔습니다. 모든 법조인이, 모든 법학교수와 법률가가 그렇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송우석, 아니 노무현 변호사는 나중에 대통령까지 한 분이니 그렇게 할 수 있었겠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법조인과 법학교수와 법률가들은 비겁한 사람들입니다. 약한 시민들 앞에 서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모든 법률가들이 송우석처럼 그렇게 나섰다면 이 나라가 지금 이 지경에까지 처했을 리가 없겠지요. 저 역시 법학을 공부하는 연구자로서, 법학교수로서 크게 다르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우리 법률가들과 법연구자들이 송우석처럼, 시민들보다 더 앞에 나서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시민들과 함께 서 있기라도 했다면, 아니 뒤에서 시민들을 응원하기라도 했다면, 백보를 양보하여 최소한 자신이 공부했던 법과 자신이 배웠던 정의와 민주주의를 스스로 배반하지만 않았다면, 모두가 안녕하지 못한 이런 나라가 되지는 않았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공부하고 배웠고 또 제 아이들과 제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그 법과 정의와 민주주의를 배반하지 않기 위해서 오늘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그간의 촛불집회에 많이 참석하지는 못했지만, 최선을 다해서 함께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