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을 사람의 만남이 아름다운 도시로,
열린시대 새 지방자치를 만들어갑니다.
조효경(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 협동사무처장)
시민, 500명의 시장과 조우하다 - ‘2014지방선거 시민의제 발굴’을 위한 「대전시민 500인 원탁회의」에 대한 단상 -
집으로 가는 골목길 모퉁이를 돌때면 어느 누군가를 우연히 만나게 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그렇게 대면한 사람이 평소 알고 지내던 이웃이었다면 반갑게 맞이할 것이고, 만약 낯선 사람이라면 그냥 ‘움찔’ 거리면서 지나칠 것이다. 그러나 그 낯선 사람과 그 모퉁이를 돌 때 또 한번 만나게 된다면, ‘‘누구지?’, ‘이사왔나?’ 생각하면서 그 낯선 이에 대해 알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이 이미 오래전부터 살고 있었든지, 아니면 새로 이사 온 사람이든지, 우리 마을 이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그 사람과는 언제든지 만날 수 있는 친근한 동네 이웃으로 인식하게 될 것이다. 낯선 시민과의 두 번째 만남 시민사회와 시민운동에 대한 고민의 길에 서 있는 나에게도 이러한 골목길 모퉁이에서나 발생할 수 있는 깜놀(?)하는 상황을 경험한 적이 있다. 대학 졸업 후 소위 운동권 출신 정치학도로서 시민사회의 정치참여에 대한 열의를 안고 공부를 시작했던 NGO대학원 시절, 나는 그 강의실에 함께 앉아 있는 모든 원우들이 나와 같은 운동적 관점을 가지고 공부하러 온 학생들이려니 하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대다수의 많은 원우들은 골목길 모퉁이의 낯선 사람처럼 나에게는 낯선 이력의 학생들이었다. 종교단체, 구호단체, 봉사단체, 그리고 소위 관변이라 불리는 단체에 속한 사람들까지. 처음 몇 달간은 실망감으로 고민도 했지만, 그들과 함께 토론하며 생활하는 가운데 결국 그들도 ‘시민’이라는 이름으로 그들의 영역에서 운동하는 활동가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깜놀의 상황을 두 번째 맞이한 경우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지난 4월 12일에 열렸던 「대전시민 500인 원탁회의」에서 만난 500명의 시민시장과의 만남이었다. 곧 치러질 지방선거를 앞두고 대전지역 33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대전유권자네트워크’에서는 시민이 직접 의제를 만드는 유권자운동을 전개하기 위해 타운홀 미팅(Town Hall Meeting) 방식의 「대전시민 500인 원탁회의」를 개최하였다. 이 회의에서는 대전시의 미래를 위한 비전을 제시하고, 그러한 비전을 현실화시킬 정책을 전자투표방식을 이용해 시민적 의제로 채택하는 과정이 이루어졌다. 이날 원탁회의에서 시민들은 대전시가 추구해야할 미래가치로 1.복지, 2.정체성을 찾아가는 대전, 3.교육, 4.주민참여, 5.일자리 순으로 보았으며, 이를 바탕으로 채택된 시민의제는 1.과학과 연계한 문화·축제 산업, 2.다양한 계층에 맞는 다양한 복지, 3.일자리 개발 및 확대, 4.주민과의 소통, 5.보편적 복지 순으로 나타났다. 이날 가장 많은 표를 얻은 시민의제인 ‘과학과 연계한 문화·축제 산업’은 대전시의 미래가치에서도 상위를 차지한 ‘정체성을 찾아가는 대전’과 같은 맥락에서 나온 시민의제로, 성별, 연령을 막론하고 모든 참여자 구분에서 1위를 차지하는 결과를 나타내었다. 그러나 이날 채택된 시민의제는 다소 낯선 광경임에 분명하였다. ‘과학문화축제라니?!’ 시민적 의제라면 적어도 ‘참여’, ‘자치’, ‘인권’ 정도는 들어가 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시민운동 진영은 이날 골목길 모퉁이에서 낯선 이와의 조우 같이 움찔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하였다. 그렇다면 분명 시민사회단체에서 선정한 의제라고 생각하기에는 다소 어색한 ‘과학’, ‘축제’, ‘산업’이라는 단어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또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걸까. 원탁, 드러냄의 공간 크디 큰 정부와 상업적 시장 사이에 시민의 공간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식하기에 점점 더 힘들어지고 있다. 시민적 공간에서 시민 권력이 발생될 수 있다는 점에서 시민적 공간마련은 모든 시민운동의 토대가 된다. 시민적 공간이라 함은 국가와 시장 사이에 존재하는 인식적 영역을 의미할 수도 있지만, 이 글에서 의미하고자 하는 시민적 공간은 시민과 시민이 대면할 수 있는 ‘장소’로서의 공간으로 이해하고자 한다. 과거 민주화운동시기에는 ‘거리’와 ‘광장’이라는 장소, 즉 물리적 공간을 통해 시민들이 모이게 되었고, 이곳에서 시민 권력이 드러났다. 그러나 오늘날은 어떠한가. 풀뿌리 주민운동의 활성화로 시민적 삶은 도시와 마을단위의 실존공간에 머무르고 있으며 그곳에서 시민들은 여전히 부지런히 건강한 삶을 살아나가고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시민운동 진영에서는 행동하는 시민이 없다고 푸념한다. 또한 시민들은 ‘시민 없는 시민운동’이라고 비판의 목소리가 가득하다. 분명 서로 마주치지 못하고 계획된 그 길만을 가고자 하는 일편단심에서는 결코 서로 조우할 일이 난무하다. 사회학자 울리히 벡의 말을 빌리자면, “만일 시민들이 정치로 들어오지 않는다면 정치가 시민들에게로 다가가게 된다”라고 하였다. 이것은 분명 현재의 시민사회운동에게도 필요한 조언일 것이다. ‘시민’이 없다고 그 시민을 과거의 광장과 거리와 같은 아스팔트 위 ‘동원의 공간’에서만 찾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아야 할 시기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시민은 어느 장소에서 만나게 되는 걸까? 나는 지난 4월 12일 어느 고교 강당에 마련된 원탁에서 그 시민과 조우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미래학자 토플러는 오늘날의 민주주의의 형태가 대표자인 정치인들을 통해 정치에 참여하는 것과 시민이 직접 정치에 참여하는 것, 이 두 가지가 혼합하여 나타나는 ‘반(半)직접민주주의’의 경향으로 이동한다고 주장하였다. 현재 민주주의 모델에 대한 연구도 과거 대의제 민주주의의 한계에 대한 인식과 함께 다양한 직접민주주의 모델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지는 상황이다. 이러한 현재, 그리고 앞으로의 예상되는 상황에 비추어 볼 때, 분명 현재의 시민사회운동은 직접민주주의에 대응하는 방식이 부족하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즉 직접 시민들이 그들의 의사를 드러내게 할 수 있는 제도적 모색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였다. 물론 직접민주주의를 제대로 가동시킬 수 있는 의사소통 수단의 한계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지난 원탁회의에서 사용한 전자투표와 같은 다양한 의견표출의 수단들이 실험되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시민들은 점점 “자신들이 누구인가를 리얼하고도 교환불가능한 방법”(아렌트,『인간의 조건』)으로 보여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시민적 욕구를 드러낼 수 있는 공공적 공간(장소)을 마련한 것 또한 오늘날 시민사회단체에게 요구되어지는 일임에 분명하다. 욕구 해석의 정치 나날이 발전하는 첨단 통신기술 및 수단은 정치적 의사결정 과정에 대한 일반 시민들의 직접적 참여에 엄청난 가능성을 열어놓을 것이 분명하다. 이러한 매체를 통해 우리는 골목길 낯선이의 조우와 같이 ‘깜놀’의 상황이 여기저기서 나타날 수 있는데, 이것은 시민들의 욕구(needs)가 물리적 공간과 수단을 통해 배출되어지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시민적 욕구를 대중의 감정적 반응이라고 문제시하고자 하는 이도 있겠지만, 분명히 따져보아야 할 것은 이러한 생소한, 그리고 다소 실망스러운 욕구가 왜 분출되었는지 해석하는 일이 시민사회운동의 시대적 숙제로 해결해야할 일일 것이다. 「대전시민 500인 원탁회의」에서 드러난 최우선 시민의제인 ‘과학과 연계한 문화·축제 산업’은 현재 대전시민으로서 요구하는 것이 대전이라는 ‘지방성’(locality)을 드러낼 수 있는 정책적 특수성을 원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우리 단체와 같이 ‘지역’(local)을 발판으로 하는 지역운동이 나아갈 방향과 과제를 안겨준다. 소위 불안과 위험의 신자유주의 지구화 시대에, ‘지역’이라는 공간은 안정과 친밀함을 느낄 수 있는 시민이 살아가는 실존적 공간으로, 그렇기 때문에 또한 대안적 공간으로 시민사회운동의 의미 있는 장소적 토대를 마련해준다. 그렇다면, 이러한 지역이라는 장소에 기반을 둔 운동은 그 장소적 특징과 연계하여 전개시킬 때 시민과 함께할 수 있는 것이며. 그들과 함께 할 때 공공성의 발현이 가능할 것이다. 이처럼 욕구해석의 정치라는 것은 사적인 것과 공공적인 것의 경계선을 둘러싸고 이루어지는 다소 골치 아픈 운동일 수 있다. 그러나 과거 목소리 큰 사람(공공적인 것)의 제안에 목소리 작은 사람들(사적인 것)의 욕구가 덮여졌다면, 오늘날 시민사회운동에서 지향해야 할 것은 그동안 무시되어왔던 사적인 경향들, 그리고 작은 목소리들의 총합을 해석하여 이것을 공공성의 발현으로 재정의 하는 다소 어려운 작업을 해야 할 단계임을 인정해야 할 듯 하다. 이처럼, 지금 시민사회운동은 사적인 것과 공공적인 것의 경계선을 둘러싼 가장 중요한 항쟁 가운데 서 있으며, 이러한 운동적 위치를 인정하면서 서로의 영역이 의사소통할 수 있는 공간적 트임을 마련해야 할 때인 듯 싶다. 이 지점에서 새로운 고민을 시작할 수 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