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을 사람의 만남이 아름다운 도시로,
열린시대 새 지방자치를 만들어갑니다.
신정섭(전교조대전지부 대변인)
지난 6월 4일 치러진 지방선거는 여도 야도 아닌 진보교육감의 승리라고 평가할 수 있다. 17개 시․도교육청의 수장을 뽑는 선거에서 무려 13명이 이른바 진보 성향을 가진 인물이기 때문이다. 대전은 설동호 전 한밭대총장이 31.4%의 득표율로 당선됐다. 초등 인맥을 중심으로 한 조직력에서 타 후보를 압도했다는 평가가 많다. 설동호 교육감 당선인은 지난 6월 11일 모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교육에 보수와 진보는 불필요한 구분이지만, 굳이 색깔을 정해야 한다면 나는 개혁적 보수다.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는 혁신 교육을 통해 학생의 행복과 성공이 구현되는 대전교육의 성공시대를 열겠다”고 당찬 포부를 밝혔다. 그의 대표적인 공약으로는 유․초․중․고․대학 연계 교육, 창의․인성교육 확대, ‘좋은인재기르기협력단’ 구성․운영, 학교 안전교육 강화, 공립형 대안학교 설립, 공정한 인사검증 시스템 강화, 지역 교육격차 해소 등을 들 수 있다. 전임 교육감들의 선거 공약과 비추어 볼 때, 별로 새로울 것이 없는 보수적인 공약들이다. 진보․보수를 떠나 대전 시민들은 그에게 거는 기대가 클 것이다. 그동안 좀처럼 혁신의 모습을 찾기 어려웠던 대전교육계가 이번에는 좀 달라지지 않을까 내심 생각하는 분들도 많다. 하지만 이러한 기대가 현실화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설 당선인의 교육철학과 비전, 공약 등을 꼼꼼히 살펴보면 교육 혁신과는 거리가 멀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진보․보수를 아우르기 위해 노력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여지없이 보수본색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의 대전교육 청사진 중 긍정적인 측면을 갖고 있는 것도 없지 않다. 유․초․중․고․대학 연계 진로교육, 창의․인성교육, 학교 안전시스템 강화, 공립형 대안학교 설립 등 앞서 언급한 선거 공약들을 올곧이 지켜낼 수만 있다면, 대전 시민들이 지레 기대를 접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공약에는 우려스러운 지점이 적지 않다. 심지어 일부 공약은 우려를 넘어 위험해 보이기까지 하다. 먼저 ‘대전형 혁신학교’ 설립을 예로 들어보자. 원래 이 사안은 공약에 포함돼 있지 않았으나, 진보교육감 시대라는 대세를 의식한 듯 당선 이후에 끼워 넣었다. 그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혁신학교추진기획단을 구성하겠다. 기존의 혁신학교가 갖고 있는 장점을 살리되, 대덕특구와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와 연계해 아이들의 과학 역량을 키울 수 있는 대전형 혁신학교를 구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제 겨우 구상 단계이고 교육감직인수위원회 활동상이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아 단언할 수는 없지만, 이는 토론학습․협동학습․창의적 자기주도 학습이라는 혁신학교 본래의 취지와 맞지 않아 보인다. 그의 구상은 대전이 갖고 있는 풍부한 교육인프라, 특히 연구단지 등 과학 연구 인력풀을 최대한 활용해 학생들에게 양질의 교육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것으로 읽힌다. 얼핏 보면 나쁘지 않은 생각이다. 하지만 혁신학교는 학교 혁신의 일부여야 한다. 이렇게 인프라(하드웨어) 차원에서만 접근해서는 안 된다. 혁신학교는 ‘주입식 일방통행’ 수업에서 ‘쌍방향 소통’을 지향하는 수업으로 바꾸자는 취지로 도입된 수업 혁신 운동이다. 즉 다시 말해서, 특별한 학교를 새로 만드는 게 아니라 일반학교의 보통 교실에서 교육 방법론을 창의적 방식으로 확 바꾸자는 것이다. 교실 모형을 ‘ㄷ자 형’으로 바꿔 토론과 협동을 유도하는 한편, 교사가 주도하는 ‘가르치는 수업’이 아닌 ‘학생 스스로 깨우치는 수업’을 기본 정신으로 삼는다. 대덕연구단지 연구원이 우수한 인력풀임에는 틀림없지만, 단순히 그분들과 끈을 맺어준다고 해서 곧바로 수업 혁신이 일어나지는 않는다. 대전형 혁신학교가 ‘과학 역량 강화’라는 그럴듯한 명분으로, 공부 잘하는 소수 아이들에게만 혜택을 주는 수월성 제고를 위한 수단으로 변질되지 않을까 매우 우려스럽다. 설동호 대전시교육감은 스스로 ‘준비된 교육감’이라고 자부해 왔지만, 혁신학교와 관련해서는 준비된 게 별로 없어 보인다. 충남․충북․세종교육감이 진보이고, 혁신학교에 대한 대전 시민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고 해서, 설익은 생각을 즉흥적으로 언론에 발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교육은 백년지대계라 하였다. 민심의 향배를 좇아 단기적 성과만을 위한 실험에 그쳐서는 안 될 일이다. 필자는 이 글을 통해, 교육감이 만들겠다고 밝힌 혁신학교추진기획단에 전교조대전지부를 비롯한 교육전문가들이 대거 참여할 수 있도록 문호를 개방할 것을 제안한다. 다른 공약으로 옮겨가 보자. “지역 간․계층 간 교육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기숙형 대안학교를 설치하고, 전 학교 스마트교육 인프라를 구축하겠다”고 한 것은 제발 ‘헛공약’이기를 바란다. 이는 앞뒤 논리가 맞지 않는 전형적인 ‘거꾸로 정책’이다. 왜 그럴까? 교육 양극화를 완화하려면 교육 여건이 열악한 지역의 공교육을 강화하기 위해 행․재정적 지원을 대폭 늘리는 것이 해법이다. 혁신학교를 도입하고, 방과후학교를 학생 맞춤형으로 설계해 양질의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한편, 공립형 대안학교를 여럿 설립해 학업 중단을 막아야 한다. 공립유치원을 대폭 확충해 ‘출발점 평등’ 실현을 위해 적극 노력하는 것도 꼭 필요하다. 그런데 그런 내용은 담겨있지 않다. ‘기숙형 대안학교 설치’는 뭐고, ‘모든 학교 스마트교육 인프라 구축’은 또 무엇인가. 기숙형 대안학교는 ‘우리 곁의 세월호’에 다름 아니다. 가뜩이나 심각한 살인적인 입시경쟁을 가속화할 뿐만 아니라, 공교육을 강화하기는커녕 도리어 사교육에 편입시키는 최악의 선택이 될 것이다. 스마트교육 역시―긍정적 요소가 없는 건 아니지만―자칫 우리 아이들을 무분별한 IT 콘텐츠에 중독되게 만들고, 창의․인성교육을 황폐화시킬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교육력이 열악한 지역 및 계층의 아이들일수록 (생계형 맞벌이 가정이 많으므로) 그런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크다는 연구 결과는 수없이 많지 않은가. 교육감의 공약 사항 중 우려되는 게 또 하나 있다. 우수 학생을 지원하기 위한 ‘대전인재역량강화센터’가 무엇인가. 대전은 공부 잘하는 아이들을 더욱 잘하게 하는 수월성 교육 여건이 전국 그 어느 지역보다도 잘 갖추어진 곳이다. 게다가 김신호 교육감 재임 기간 동안 ‘인재 역량 강화’를 위한 노력은 지나칠 정도로 넘쳐났다. 자사고, 대전국제중․고를 비롯한 특수목적고는 이미 포화 상태를 넘어 보통․평등교육을 위협하고도 남을 만큼 과잉돼 있다. 그런데 그 위에 또 뭘 더 얹겠다는 것인가. 공부 못하는 아이들은 내팽개치겠다는 것인가? 설동호 대전교육감이 진정 ‘개혁적 보수’를 표방한다면, 충남․충북․세종 등 이웃 진보교육감들과 적극 협력하여 ‘교육 혁신’을 이루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특히, 전교조대전지부를 대전교육 발전을 위한 대등한 파트너로 인식하고 단체교섭에 성실히 임하는 한편, 청와대 국민소통 자유게시판에 민원 글을 올린 양심 교사들에 대한 ‘징계 불가’ 입장을 천명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것이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는 혁신 교육을 통해 대전교육의 성공시대를 열어가겠다”고 선언한 자신의 교육철학을 올바로 커밍아웃하는 길이다. 설동호 교육감이 선거에서 보여 준 유능한 ‘조직 리더십’을 진보와 보수를 아우르는 ‘소통과 변화의 리더십’으로 승화시켜 내기를 간절히 바란다. 대전 시민이 눈을 부릅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