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을 사람의 만남이 아름다운 도시로,
열린시대 새 지방자치를 만들어갑니다.
한종구(연합뉴스 기자)
지인으로부터 한국마사회가 대전 서구 월평동에 있는 대전마권장외발매소를 확장하려 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마권장외발매소는 과천과 제주 경마장에서 진행되는 경마 경기를 중계하며 마권을 판매하는 이른바 ‘화상경마장’이다. 국가가 인정한 도박장인 셈이다. 문제는 화상경마장이 이곳에 자리를 잡으면서 경마 경기가 있는 날이면 월평동 일대 교통이 마비되는 것은 물론 돈을 잃은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를 배회한다는 점이다. 여기에 유흥업소까지 몰려들면서 이 지역의 초중학교는 도심 한 복판에 있으면서도 학생 수가 매년 감소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화상경마장을 2배로 확장한다니, 믿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사실이었다. 한국마사회는 한국마사회빌딩 7∼12층을 리모델링해 화상경마장으로 활용하겠다는 계획을 세웠고, 이듬해 2월부터 공사에 착공할 예정이었다. 3천 300명 수준이던 하루 입장객이 6천700명으로 2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분석됐다. 곧바로 문창기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 사무처장에게 전화를 했다. 전화기에서 들려오는 문 처장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아니 흥분을 했다고 표현해야 맞는 듯하다. 문 처장은 당시 “마권 장외발매소는 레저시설 성격이 취약하다 보니 도박중독 유병률이 높다”며 “출입자들의 절반 이상이 저소득층으로 조사돼 이들을 도박 중독의 길로 내모는 등 부작용이 심각한 곳”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이 같은 내용은 바로 기사화 됐다.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도 한국마사회의 대전 화상경마장 확장 계획 중단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고, 며칠 후에는 한국마사회 대전지사 앞에서 기자회견도 열었다. 여기까지는 정책의 문제를 지적하고, 시민단체가 반발하는 일반적인 모습이다. 서론이 길었지만, 필자가 하고 싶은 얘기는 지금부터다. 지역 주민과 시민단체들이 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월평동 주민들과 대전지역 10여개 시민단체들이 화상경마장 확장을 막아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지역 주민과 시민단체로 구성된 시민대책위를 출범시켰다. 시민대책위에는 인근에서 장사하는 상인과 주민은 물론 주민자치위원회, 교육기관 운영위원회, 아파트 입주자 대표회의, 부녀회 등이 참가했다. 지금껏 세상에 태어나 집회 한번 참석한 경험이 없다는 50대 아저씨, 5살 난 딸을 둔 주부, 식당 사장님, 독서실 총무님 등 지극히 평범한 시민들이 머리띠를 메고 거리로 나섰다. 대책위는 화상경마장 확장 저지를 위한 1인 시위와 서명 운동 등 실질적인 행동에 들어갔고, 월평동 일대에 수백 장의 반대 현수막을 게시하며 의지를 불살랐다. 지역구 국회의원인 박범계 의원은 현재 운영되는 화상경마장이라도 주거 지역이나 학교 인근에 있다면 이전이나 폐쇄할 수 있도록 하는 법률안을 발의하는 등 한국마사회 관계자들을 압박했다. 결국 주민대책위가 구성된 지 3개월 만에 한국 마사회는 확장 계획 철회 의사를 공식화하며 두 손을 들었다. 시민들이 거리로 뛰어 나오자 지역 국회의원은 물론 시의원과 구의원을 비롯해 지방선거 시장과 교육감 후보들까지 확장 반대 운동에 동참했고, 화상경마장 확장 문제가 지방선거 이슈로 부상하면서 마사회 측이 정치적인 부담을 느꼈을 것으로 생각된다. 주민대책위의 활동 제일 앞에는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가 있었다. 개인적으로 한국마사회의 대전화상경마장 확장 계획 철회는 지역 주민과 시민단체, 정치권이 힘을 모아 잘못된 정책을 되돌린 모범 사례로 꼽고 싶다. 10여년 전부터 전문가들은 시민운동의 방향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다. 거대 단체 중심에서 지역화, 전문화로 가야하고, 특히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한 생활 밀착형 이슈를 제시해 시민들의 목소리를 이끌어 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중요한 이슈에 대해서는 시민단체의 연대를 통해 사회 전반이 주목하는 거대 현안으로 부각시키며 정부에 대한 감시와 함께 협력의 역할도 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화상경마장 확장 철회를 위한 시민대책위 활동에서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가 보여준 모습은 한국 시민운동의 나아갈 방향을 가장 잘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겠지만, 사회가 세분화되면서 사회 이슈도 갈수록 세분화되고 있다. 거대 이슈도 중요하지만, 작고 세밀하게 가야하며, 지역 주민들의 생생한 의견을 모으고 지역 공동체를 복원하는 역할을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가 해주길 기원한다. 마지막으로 가장 강조하고 싶은 말은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는 대전시나 시의회 등이 스스로 발견하지 못하는 문제를 발견하고 지적할 수 있다. 시나 의회가 해결하지 못하는 제도나 정책 개선에 대해 전문성을 바탕으로 도움을 주며 함께 대안을 모색하길 바란다. 그러나 가끔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의 활동에서 이익단체와 비슷한 행동도 보인다. 여기에 이념적 편향도 강해 보인다. 그 때문에 시민들이 참여를 꺼리게 되는 측면도 있는 만큼 이념적으로 보다 더 유연해질 필요가 있다는 말을 덧붙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