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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을 깔아줬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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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남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 집행위원, 대전CBS 기자)

 

다른 단체 이야기를 잠깐 하겠습니다. 저는 기자가 되기 전 마포공동체라디오라는 곳에서 일했습니다. 공동체라디오는 이름 그대로 지역주민이 프로그램을 직접 만들고 운영에도 참여하는 \'동네방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루는 과일가게 사장님 한 분이 방송국을 찾아오셨습니다. 그분은 \"내가 인생에서 주인공이 된 건 처음\"이라며 우리는 물론 건물 다른 층들과 나누고도 남을 만큼 많은 과일을 안겨주고 가셨어요. 한 프로그램에 \'릴레이 초대석\'이라는 코너가 있었는데, 주민들을 한 두름으로 엮어보자는 취지에서 만든 인터뷰 코너였습니다. 나오신 분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다음 주자를 정하면 그분이 나와 또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과일가게 사장님도 그렇게 나오신 분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뭐 그런 걸 하느냐고 했는데, 마지막에는 감동이었답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여러 사람 앞에서 하고, 또 그것을 누군가가 귀 기울여 들어준 건 처음이라고 하셨습니다. 저에게도 변화가 있었습니다. 삭막해보이기만 하던 서울 한복판에서, 한 분 한 분이 달리보이고 같이 살아가는 느낌. 릴레이 초대석 이 한 코너에서만 1년간 약 500여명의 주민을 스튜디오에 모셨습니다. 마포구청장도, 가수 김장훈도, 홍대를 주름잡는 인디밴드들도 \'마포 주민\'이라는 이름으로 묶였습니다. 개인적인 만족에 그치지만은 않았습니다. 경력단절여성이나 다문화가정 아이들에게 마이크는 자신감을 얻고 다른 일을 새롭게 시작하는 동력이 됐습니다. 각종 지역 현안을 발굴하는 것은 물론, 당시 홍대 두리반 사건 등 굵직한 사건에도 집중했습니다. 기성언론과 다른 점이 있었다면 지역주민들이 자기가 사는 곳의 일들을 다루고 말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그 과정에서 실감한 건 \'판을 깔아주는 것\'의 중요성이었습니다. 공동체라디오의 취지는 바로 옆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사람들 간 공동체를 회복한다는 의미도 있었지만, 특정 누군가에게만 집중된 마이크를 모두에게 돌려준다는 의미도 있었습니다. 마이크를 들려주자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사람들에게서도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은 우리가 더 나은 오늘을 사는 데 영향을 주고, 도움이 됐습니다. 다양한 수단을 통해 사람들이 자신을 말하고, 알리는 것이 익숙해진 요즘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말하고 알릴지를 고민합니다. 새로운 수단에 익숙하지 않거나 접근이 어려운 이들에게는 오히려 자신의 목소리를 들려주기도, 듣는 이를 찾기도 어려워진 측면이 있습니다.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도 앞으로의 20년에 고민이 많습니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시민운동이라는 이름은 무겁게 느껴지고 문턱이 높게 여겨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앞으로의 활동은 어떻게 해나갈지, 회원과 시민들에게 어떻게 다가갈지 생각이 복잡합니다.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가 대전에서 \'판을 깔아주는 것\'은 어떨까요. 목소리를 내고 싶지만 내지 못했거나 내고 싶어 하는지조차 깨닫지 못했던 사람들을 도와주고, 함께하는 역할 말이지요. 대전 월평동 화상경마장 문제에서 연대는 직접 활동을 하기도 했지만 월평동 주민들이 제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문턱을 낮추고, 판을 깔아준 것이지요. 연대가 \'판\'이 될 수도 있을 겁니다. 주민들이 부담 없이 들러 즐겁게 떠들다 엮이기도 하고 답을 찾기도 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기도 하는 판 말입니다. 올해부터 집행위원으로 참여하게 됐습니다. 사실 고민이 많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저는 중닭도 안 된 병아리 회원인데. 일단 회원 활동 좀 열심히 하라는 뜻인 것 같고 저 같은 사람도 집행위원을 하는 것 자체가 일종의 문턱을 낮추는 일이 아닌가 생각해봤습니다. 사람들이 좀 더 편하게 떠올리고 찾을 수 있는, 그로 인해 저마다에게 또 지역에 유쾌한 변화를 가져다줄 수 있는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가 됐으면 하는 바람을 집행위원회에서, 그리고 회원 분들과 지속적으로 나누고 하나하나 같이 만들고 싶습니다. 반갑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