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을 사람의 만남이 아름다운 도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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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광진(회원, (사)대전교육연구소장)
10여 년 전 상업계 고등학교에 근무했다. 직업교육을 전문으로 하는 학교를 지금은 특성화고등학교라고 부른다. 그 학교는 당시에 정보고등학교라 하였는데, 사업체의 회계담당자를 양성하는 직업교육과정을 갖고 있었다. 이전에 그 학교에 근무했던 동료 교사는 내가 전근을 가게 되자 이왕이면 3학년 담임을 맡으라고 권하면서 이렇게 설명했다. “왜 다들 3학년을 지원하느냐고? 그거야 3학년은 취업하는 아이들이 대부분 사업체로 현장 실습을 가기 때문에 2학기만 되면 널널하기 마련이야. 실습 간 아이들 빼고 남아 있는 아이들만 데리고 수업하는데, 그나마도 대부분 자습이야. 거기에다 말썽피우는 아이들도 없어요. 이제 사회 나가야 하는 아이들이 제 코가 석자인데 무슨 말썽을 피울 수 있겠어. 하다못해 시원치 않은 직장이라도 추천받으려면 담임이나 학교에 잘 보여야지 않겠어. 그러니 자네도 3학년을 맡아.” 막상 그 좋다는 3학년 담임을 맡게 되었는데, 상황이 말한 것과는 달랐다. 현장 실습을 나가는 학생들은 별로 없었고 절반도 넘는 학생들이 대학 진학을 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이다. 진학하겠다는 학생들을 상담해본 결과 대부분 등록금과 수업료를 감당할 만큼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들도 할 수만 있다면 적당한 직장을 갖기를 원했지만 불러주는 곳이 없었다. 그렇다고 담임으로서 걱정만 하지 정작 사업체와 연결하는 대책도 없었고 학교에서도 뚜렷한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교육과정은 인문 교과보다 직업 과정과 관련된 교과와 실습에 따른 수업시수도 더 많았다. 그런데 직업교육 과정과 관련된 취업을 하는 학생들은 거의 없었다. 은행이나 증권회사 같은 금융기관에 취업하는 것은 이미 전설이 되어버린 형국이었다. 취업 준비생 가운데 성적이 좋은 학생들은 반도체 공장으로 뽑혀 갔다. 매년마다 수십 명을 뽑아가는 데, 학급에서 성적이 상위급인 서너 명만이 갔다. 그리고 지역에서 들어오는 취업 의뢰는 회계 업무가 아니라 주로 단순한 계산대 일이 많았다. 쇼핑센터나 백화점의 판매직마저 전문대 졸업생들이 채가는 바람에 고등학교 졸업생들이 뒤로 물러나는 실정이었다. 그런데도 부기와 같은 회계 관련 과목들을 끊임없이 배워야 했다. 학생들은 관련 일자리를 찾기가 어려운데 구태의연한 교육과정으로 취업에 도움이 되지 않는 쓸데없는 내용들을 공부하고 평가를 하는 현실이 지속되었다. 그리고 취업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며 각종 자격증을 따기 위한 사교육비가 지출되어야 했다. 취업을 의뢰한 사업체가 요구하는 것도 아니었지만, 여러 개의 자격증을 갖추면 취업 추천 대상의 앞자리를 차지하기 때문에 학생들은 방과후수업을 하거나 학원을 찾아 다녀야 했다. 그럼에도 관련 사업체로의 취업은 갈수록 더욱 어려워졌다. 컴퓨터를 이용한 회계프로그램이 널리 보급되면서 여러 명의 회계 담당자가 필요했던 일지리가 사라졌던 것이다. 더욱이 프로그램을 익히는데 굳이 전문적인 교육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되었다. 과거에는 수백 명 사원의 월급을 주고 자금의 수입과 지출을 관리하기 위해서 회계 업무에 여러 명이 필요했지만, 컴퓨터 회계프로그램 하나면 족한 현실이 된 것이다. 이런 상황을 교사들은 잘 알고 있었다. 그들도 지역의 사업체를 방문하기도 하고 여러 경로를 통해 취업 정보를 수집하기도 하였지만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학생들은 과거와는 다른 환경 속에서 새롭게 적응해야 했지만 학교는 새로운 교육과정을 만들지 못했다. 사실 그런 권한도 주어지지 않았고 그럴 의지도 없어 보였다. 시간이 흐를수록 학교는 직업학교로서의 정체성을 잃어갔다.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이 취업하는 학생보다 더 많아진 것이다. 결국 학교에서는 드디어 일반계 고교처럼 학교에서 보충수업이나 자율학습을 하자는 요구까지 자연스럽게 나타났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직업교육기관으로서 특성화고등학교는 관련 산업에 취업하는 것이 학교의 설립 목적에 부응하는 것이다. 설립 목적에 반하는 대학 진학으로 인해 비판에 직면하자, 교육청은 취업률을 학교 평가에 넣고 취업을 독려했다. 그러자 아르바이트 노동까지 취업에 포함시키고, 저임금 착취 노동을 일삼는 악덕 사업주들을 가려내지 않고 학생들을 보내기에 이른 것이다. 현장 실습생들은 사업주들에게 먹잇감이 되기 쉬웠다. 현장 실습이라는 이유로 근무 조건이나 임금에서 불이익을 당해도 속수무책이었다. 견디지 못하고 중도에 돌아오는 학생을 학교는 무책임하고 방종하다고 비난하기 일쑤였다. 도리어 사업체에 밉보여 다음에도 현장 실습 의뢰가 오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제대로 된 직업학교로서의 기능을 갖기 위해서는 변화하는 사회에 빠르게 적응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특성화고의 교사들에게 새로운 변화에 적응할 수 있도록 교육과정 작성과 평가에 자율성을 주어야 한다. 또 학교가 사업체와 직접 연결하여 현장 실습을 교육과정으로 만들어 개입해야 한다. 현장실습 과정이 학교의 수업 과정과 직접 연결되어 자신의 직업으로 이어져야 했으나, 졸업을 앞둔 학생들이 거쳐야 될 하나의 경험에 불과했다. 지금 중요한 것은 취업률이 아니라, 학생들이 보람을 갖고 성장할 수 있는 실속 있는 직업 교육과정이다. 산업사회에서 요구하고 있는 인재를 길러내면 사업체도 좋은 조건으로 데려갈 수밖에 없다. 급변하는 사회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특성화고에 자율적 권한을 전면적으로 부여하여 스스로 변화에 적응할 수 있도록 했으면 한다. ** 이 글은 디트뉴스24에 기고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