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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현(회원, 대전광역시의회 예산결산특별위원장)
대전시의회는 2년 전 의원 연찬회 때 신해룡 전 국회예산정책처장을 초청해 예산에 관한 연수를 실시했다. 신 전 처장은 예산전문가인 앨런 쉬크의 여섯 가지 유형의 나쁜 예산 사례를 들며 “국민 세금을 낭비한 죄는 용서받지 못할 죄”라고 했다. 나쁜 예산 여섯 가지는 첫째 정부 능력을 초과하는 세입을 전제로 한 비현실적 예산, 둘째 일부 관계자만 알고 있는 숨겨진 예산, 셋째 재원 조달 방안이 불확실한 선심성 현실회피적 예산, 넷째 관행적으로 반영된 반복적 예산, 다섯째 세입 상황에 따라 지출 규모를 조절하는 저금통 예산, 여섯째 재원 부담을 미래 시점으로 미루는 예산 등이다. 대전시의원들은 시청과 교육청의 연 7조 원에 달하는 예산을 심의하며 낭비가 없는지 살피지만 전문 보좌관이 없는 실정에 의원 혼자 면밀히 살피긴 쉽지 않다. 특히 9명의 시의회 예산결산위원들은 본예산과 2~3차례 추경 및 결산 등으로 다른 의원들에 비해 연간 한 달 이상 회의를 더 해야 하고, 소속 상임위를 넘어 시청·교육청 전체 예결산을 심의해야 해 큰 부담을 느낀다. 하지만 초선 의원으로서 4년 연속 예결위원을 맡은 필자는 그만큼 시청·교육청 업무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지난해 12월 5일 필자는 권선택 시장에 대한 시정 질문에서 순세계잉여금이 과도하게 발생하고 있으니 이 예산을 청년 정책에 반영해줄 것을 요구했고, 올 추경에 170여억 원의 청년 예산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지난 6월 시의회 정례회에서 2016 회계연도 결산 심의가 있었는데, 시의 3조 4550억 원의 일반회계 세입 중 이월사업비를 제외한 미집행 잔액인 순세계잉여금이 2764억 원에 달했다. 이는 세입액의 8.0%로, 400조 원의 국가 예산에 적용하면 32조 원을 쓰지 않고 다음 해로 이월한 것과 같다. 문재인정부 들어 첫 일자리 추경 11조 원 편성이 야당의 거센 반발에 부딪혔는데, 32조 원의 예산을 남겼다면 국민을 분노케 할 일이다. 그런데 순세계잉여금이 민선 6기 들어 급증하고 있다는 게 심각한 문제다. 민선 5기 때 4년간의 순세계잉여금이 연평균 815억 원이었던 데 비해 민선 6기 3년간은 연평균 2122억 원으로 금액상으론 2.6배, 세입결산액 대비 순세계잉여금 비율상으론 민선 5기 연평균 3.0%에서 민선 6기 연평균 6.4%로 2배 이상 급증했다. 예산 집행이 매우 악화됐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매년 회계·세무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결산검사보고서와 중기지방재정계획 등에 단골로 등장하는 지적 사항이 ‘순세계잉여금 축소’이지만, 순세계잉여금은 불가피하게 발생하기도 한다. 예산의 1% 이내인 예비비 집행 사유가 없을 경우 발생하는 잔액, 각종 입찰사업의 낙찰 차액, 불용액, 연말 세입 초과분 등 3% 전후의 미집행 잔액은 불가피하다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를 초과하는 과다한 잉여금은 예산 집행의 나쁜 사례라 할 수 있다. 지난해 대전시는 상수도 고도정수처리시설 민간위탁을 둘러싸고 시민들과 충돌한 바 있다. 결국 이를 철회했지만 당시 민간위탁을 해야 하는 명분이 총 1670억 원의 예산 가운데 1168억 원이 부족해 민간투자를 받고 25년간 운영권을 민간에 주겠다는 것이다. 권 시장이 기자회견과 시민들과의 만남에서 “시의 예산이 없다”라며 호소하고 다니는 사이, 지난해 지방세 세입 초과분 1446억 원을 한푼도 추경에 반영하지 않고 남겨 올 순세계잉여금이 대폭 늘어난 것이다. 세입예산 담당자들이 지방세 세입 초과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면 전문성이 부족한 것이고, 알면서도 시장에게 보고하지 않았거나 예산에 반영하지 않았다면 책임을 물어야 한다. 시민이 낸 세금을 쌓아두고도 시장이 맨날 돈 없다는 얘기만 하고 다니게 한다면 제대로 된 보좌 기능이라 할 수 있을까? 좀 더 전문성 있고 책임 있는 인사로 교체가 필요한 대목이다. 올해도 지난 추경에서 금년도 지방세 변동분을 한 푼도 반영하지 않았다. 지난해 미집행 잔액인 순세계잉여금이 많았기 때문인데, 2차 추경을 하지 않는다면 올 순세계잉여금도 지난해와 비슷할 것이다. 이는 앞서의 나쁜 예산 사례 중 두 번째인 ‘일부 관계자만 알고 있는 숨겨진 예산’에 해당한다. 시교육청도 지난해 총 세입결산 1조 8461억 원 가운데 649억 원의 순세계잉여금을 기록했다. 수치상 시보다 적은 금액이지만 예산 규모 대비 적은 수치가 아니다. 교육청은 교직원이 많아 인건비가 1조 원을 넘는다. 인건비에선 잔액이 거의 남지 않으므로 인건비를 제외한 예산 대비 약 8%에 해당하는 금액이므로 시와 마찬가지로 개선이 요구된다. 시와 교육청이 시민들이 낸 세금을 시민들을 위해 충실히 예산에 반영하고 집행해 예산 운영의 나쁜 관행을 개선해 주길 바란다. ** 이 글은 지난 7월 금강일보에 실린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