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을 사람의 만남이 아름다운 도시로,
열린시대 새 지방자치를 만들어갑니다.
성광진(회원, (사)대전교육연구소장)
부산에 갔다. 도시의 명물이라는 감천문화마을에서 집의 속살을 되새겼다. 50년대 전쟁 피난민들이 판잣집을 형성하면서부터 지금까지 서민들이 살아온 그 작은 집들과 골목에서 씁쓸한 추억들이 떠올랐다. 그때 도시에는 집이 부족해도 너무 부족했다. 농촌에서 찌든 가난을 벗어나려고 도시로 이주했던 60년대와 70년대에는 전쟁 피난민들과 겹쳐서 단칸방 한 가족 셋방살이가 당연한 모습이었다. 대도시의 집 한 채만 가져도 주인은 지주마냥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문간방까지 세를 주어 서너 가구가 함께 살아가는 집이 부지기수였다. 그 시절 위세를 부리는 주인집 자식과의 다툼 때문에 무던히도 속을 태우던 부모님의 모습이 아련하다. 그래서일까. 지금도 집은 삶에서 재산 이상을 넘어서는 자존심이자 가치이다. 소중한 삶의 터전이기도 하지만 어린 시절 셋방을 떠돌던 이들에게는 세상에서 남부럽지 않게 살아가고 있다는 자부심이기도 하다. 90년대 들어오면서 도시의 재개발과 신도심 개발로 아파트를 선호하게 되고 영악한 이들이 아파트를 이용하여 전매하면서 빈부가 갈리게 된다. 부동산 투기가 광풍처럼 몰아치며 서민들도 새로운 아파트를 분양받기 위해 분양 신청의 긴 줄에 서게 된다. 아파트를 간신히 마련한 이들도 한 곳에 오래 머물지 않았다. 새로운 개발지역의 아파트로 이주하며 평수를 넓히는 것이 유행이 되었다. 아파트가 유일한 재산인 서민들로서도 평수를 넓히는 것이 유일한 재산 증식의 방법이었다. 따라서 이사를 자주 다녀야 했다. 이렇게 자주 이사를 다니다 보면 평수는 넓힐 수 있었으나, 문제는 아이들이다. 아이들은 여기저기 동네와 학교를 전전해야 한다. 동네 친구가 만들어지지 않는데다가 학교에서도 교우관계를 형성하는 데 어려움을 갖게 마련이다. 이사로 다른 동네로 가게 된 아이들은 뿌리가 뽑혀 다른 땅에 심어놓은 작물과도 같다. 공감대를 갖지 못한 또래들과 어울리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해야 한다. 여기에서 관계를 제대로 맺지 못하게 되면 아이들 사이에서 따돌림을 당할 수도 있다. 사춘기를 넘어야 하는 중학교에 이르면 부모보다 친구와의 관계에 더욱 무게가 실리게 마련이다. 또래 관계가 자신의 인간적 정체성을 정립하는데 많은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따라서 동네 친구들의 존재는 소중하다. 부모나 교사보다 친구가 주는 영향이 절대적인 시기도 있다. 잘못된 행위로 문제를 일으킨 경우에 친구들 때문이라고 주변에서 말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다 옳다고 보지는 않지만 또래집단의 영향력이 그만큼 크다. 따라서 아이들이 정서적으로 안정되고 더 잘 성장할 수 있도록 동네에서 잘 정착하는 것이 필요하다. 환경적으로 문제가 될 것이 없다면 이사를 자제하는 것이 좋다. 그러나 요즘은 동네라고는 해도 농촌공동체 시절의 동네는 아니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한 마을이 필요하다’라고 하지만, 그 마을에 공동체로서의 요소가 있어야 한 동네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은 이웃들도 서로 잘 오가지 않는다. 과거에는 동네에 공터가 있으면 모든 아이들이 몰려 함께 어울려 놀았다. 자연스럽게 동네에서 누나, 형과 동생이 되고 언니가 되는 그런 동네 문화가 있었다. 하지만 요즈음은 학원을 다니지 않으면 또래 아이들은 만날 수가 없는 동네가 되고 말았다. 아파트 놀이터에도 이제 아장아장 걷는 코흘리개들과 이들을 보살피는 부모나 조부모들뿐이다. 그래서 아이들을 어쩔 수 없이 학원에 보낸다는 부모들도 꽤 많다. 그래도 아이들을 위해서는 여간하면 한 동네에 오래 머무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동네에 오래 지내다 보면 또래 친구들이 자연스럽게 형성되고 정서적으로도 안정되기 때문이다. 이제 도시에서도 동네가 제대로 만들어졌으면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한 군데 오래 정착해 사는 것이 중요하다. 아이들도 동네 친구들을 만들어야 하지만 어른들도 정든 이웃이 필요하다. “아니 무슨 사람이 이십 년을 같은 집에서 사나? 같은 동네서 이십칠 년이나 살았다고? 거기다 돈도 안 되는 변두리 지역의 허름한 단독주택이라니..... 참 답답하구먼.” 부동산 투자에 밝아 꽤 많은 재산을 모았다는 사람이 핀잔 비슷하게 하는 말이다. 그런데 그렇게 오래 산 덕을 아이들은 입었을 것 같다. 아들은 서른 나이가 되어 여기저기로 흩어진 동네 친구들과 여전히 모임을 갖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모임을 매우 소중하게 여기는 것으로 보인다. ※ 이 글은 지난 9월 디트뉴스24(www.dtnew24.com)에 기고된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