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쌀 판촉활동’에 나선 사연
/ 충남 홍성군 홍동면 풀무학교 전공부 강사 강국주
옥수수는 살아 있다. 불에 태우면 괴로워하고 밟으면 화를 낸다. 원주민들이 옥수수 꿈을 꾸듯이, 옥수수는 원주민 꿈을 꾼다. 옥수수는 시간과 공간을 지배하고, 옥수수 반죽에서 태어난 마야인들의 역사를 관장한다. 카넥이 태어났을 때 옥수수 속대로 탯줄을 잘랐다. 그리고 갓난아이의 피를 묻힌 옥수수 씨앗을 밭에 뿌렸다. 카넥은 이 밭의 옥수수를 먹고 샛별의 빛을 품은 샘물을 마시면서 자랐다.(에두아르도 갈레아노, ‘성스러운 옥수수’, \'불의 기억 2\', 박병규 옮김, 도서출판 따님, 2005, 67면)
1.
인문학이 위기라고 한다. ‘인문학의 위기’라는 말을 한 것이 어디 어제 오늘 일인가? 그래서 무심히 듣고 넘긴다. 하지만 이번엔 뭔가 다른 냄새가 난다. 대학 교수들이 연대 서명도 하고 성명도 발표한다. 한 마디로 이번에는 좀 떠들썩하게 인문학의 위기를 ‘선전’하고 있는 셈이다. 언론에서도 꽤 호의적으로 기사를 실어나른다. 그렇다고 이런 ‘선전’을 마냥 언짢아 할 수도 없다. 나도 인문학으로 먹고 사는 학인(學人)의 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엄중한 책임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내가 느끼는 책임감은 남들처럼 요란하게 인문학의 위기를 선전하지 못했다는 데 있는 게 아니라 다른 이유에서 그렇다.
한편 게으른 내가 요즘 좀 바빠졌다. 전화통을 붙들고 있는 일도 많아졌다. ‘쌀 판촉 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돈 안 되는 인문학’을 공부하는 내가 이제 ‘배고픈 인문학’을 접고 다른 돈벌이에 뛰어들었다고 오해하실 분도 있을 수 있지만, 내가 갑자기 쌀을 사라고 전화를 하고 메일을 보내고 급기야 이런 글까지 쓰게 된 것은 나름의 사정이 있어서다.
2.
금요일 아침, 부산하게 짐을 꾸려 길을 나선다. 충남 홍성 행(行) 8시 기차를 타야 하기 때문이다. 오늘 2학년 수업은 봉희가 주관하기로 했으니 따로 강의 준비를 할 건 없겠고, 이번 주에 하기로 약속한 난민과 국민 사이(서경식)의 한 대목을 인용해 ‘재일조선인’과 ‘디아스포라’ 이야기를 하면 되겠다. 내일 아침의 1학년 수업은 동아시아와 인문(人文)이란 주제로 강의하기로 했지. 교사 회의 뒤 준비하면 될 것 같다. 그런데 오늘 오후에 할 농사일은 뭐더라? 조생종(早生種) 벼인 흑미(黑米)를 수확하기로 했던가? 이런저런 궁리를 하다 보니 기차는 벌써 예산을 지나고 있다.
매주 금요일 아침마다 겪는 내 일상의 한 단면이다. 나는 2년 전부터 어떤 기연(奇緣)때문인지 모르지만, 운 좋게도 홍동 풀무학교 전공부에서 인문학을 가르칠 기회를 갖게 되었다. ‘풀무학교’는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리라 여기지만 혹시 모르시는 분들이 있을지 몰라 아래에 간단하게나마 소개하기로 한다.
풀무학교의 정식 명칭은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다. 1958년 4월 개교한 이래 온갖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어느새 반세기의 역사를 갖는 ‘지역 속의 작은 학교’로 튼튼히 자리잡았다. “이웃과 더불어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교육, 엘리트가 아니라 누구나 타고난 자기(自己)를 실현하는 평민을 기르는 교육, 곧 더불어 살아가는 평민을 기르는 교육이 꼭 필요하다고 믿고, 그러한 학원을 위하여 학교는 작아야 한다고 믿는다”는 말에서 드러나듯, 풀무학교의 건학(建學) 정신은 ‘더불어 사는 평민’이라는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있다.
지금은 전국적으로 유명한 ‘대안학교’가 되어 학교에 입학하기도 힘들다고 하지만, 풀무학교가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이른바 ‘잘 나가는 학교’가 된 것은 최근 몇 년의 일이고 풀무학교 50년 역사에서 대부분은 시골의 이름 없는 ‘똥통학교’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 똥통학교에서 지난 50년 간 이룬 일들은 여기에 일일이 다 열거하기 힘들 만큼 대단한 것이었다. 예컨대 1960년 학교의 무인구판장으로 시작한 풀무생협은 그 자립의 여건이 갖춰지자 1979년 지역 주민들의 자치적인 기관으로 독립했고, 1969년 학교에서 설립한 풀무신협 역시 이와 같은 과정을 거쳐 지역 주민의 자치 기관으로 독립했다. 현재 풀무생협과 풀무신협은 홍동 지역의 든든한 버팀목으로 기능하고 있다. 또한 풀무학교는 1975년 남한에서 거의 처음으로 유기농업을 시작해 그 성과를 지역에 전파해왔다. 그 결과 홍성군 홍동면은 현재 우리나라 소농(小農) 유기농 운동의 중심이 되었다. 이제 충남의 작은 마을 홍동은 일본, 중국, 필리핀, 베트남 등 동아시아 인접 국가에서뿐 아니라 유럽과 미국에서도 ‘모범적인’ 생활 공동체 마을로 이름나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것은, 오랜 숙의(熟議)를 거친 끝에 2001년 풀무학교에 2년제 ‘전공부 생태농업과(科)’가 개설되었다는 사실이다. 이 2년제 전공과정(2년제 대학과정)이 바로 내가 매주 강의를 하고 있는 ‘풀무학교 전공부’다. 그렇다면 왜 풀무학교 전공부를 만들었는가? 좀 길지만 전공부를 시작하면서 표방했던 설립 정신 몇 대목을 옮겨보기로 하자.
간디의 제자요 현대 인도의 정신적 지도자이자 사회개혁자인 비노바 바베는 “모든 마을에 대학이 있어야 지역이 진정 자치가 된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작은 마을에는 초등학교, 큰 마을에는 고등학교, 그리고 큰 도시에는 대학이 있어야 한다고 하지만, 하나님이 그런 계획을 세우셨다면 작은 마을에는 10살 미만 큰 마을에는 15살 미만의 어린이만 살아야 할 것이 아닌가? 삶과 죽음의 모든 일들이 마을에서 이루어지는데 왜 학습만은 마을에서 이루어져서는 안 되는가? 나는 교육의 모든 과정은 마을 단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굳게 믿는다. 왜냐하면 우리 마을은 조각이 아니요 하나의 전체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민주주의의 시대요 지역의 시대다. 또한 지역주민의 교육과 평생학습이 그 지역의 수준과 특성을 결정하고, 이런 여러 지역의 활력이 모여 국가 전체의 활력을 지지(支持)하는 시대다. 경제적 혜택과 일정한 재능을 가진 사람, 제한된 나이의 사람만이 한정된 공간과 시설에서 교육을 받는 시대는 지났다. 모든 주민이 교사고 학생인 학교, ‘조각이 아닌 지역의 삶 전체와 연결된’ 학교, 지역의 입지 조건을 살리고 인간과 지역과 세계의 앞길을 비추는 그런 학교가 필요하다.
... 오랜 준비 끝에 지역을 살리고 생태농업의 일꾼을 양성하며, 경제제일주의로 치달아 위기에 처한 산업문명에 저항하며, 더불어 사는 대안적인 문명문화운동의 기반을 만들어나가기 위하여, 마침내 전공부 생태농업과를 개설하게 되었다. 전공부에서는 나날이 악화되어 가는 환경 문제, 수입개방화로 위기에 처한 농업 문제, 그리고 도시와 단절된 농촌 문제를 고민하고자 한다. 또한 내분비 교란제인 환경호르몬과 윤리가 결여된 유전자 조작으로 심각하게 위협 받는 국민건강의 문제를 함께 걱정하고자 한다. 생명의 수호자로서 농사를 지으며 더불어 사는 지역 사회의 건축가를 기르고자 하는 전공부는, 이제 누군가 해야 할 일을 앞서 실천하는 ‘풀뿌리 주민대학’, 지역과 사회 구현을 위해 ‘더불어 사는 대안대학’으로 발전하려 한다. 지역 속에 숨쉬는 생명과 평화교육은 21세기 우리의 생존이 걸린 문제임이 점점 명백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2001년 처음 입학생을 맞은 이래 지금까지, 풀무학교 전공부는 ‘지역 속에서 지역민과 함께 하는 풀뿌리 농업대학’이라는 애초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풀무학교 고등부는 개교 이래 학력 인정도 되지 않는 마을 속의 ‘고등학교’로 존재하다 지난 1983년에야 비로소 고등학교 학력 인정을 받았고, 2001년 전공부를 만들면서는 고등부 교원에 한해서만 교육부로부터 임금을 지원받고 있는 상황이다. 한편 전공부는 학력 인정을 요청하지 않았기에 졸업한다 하더라도 ‘국가에서 인정하는’ 대학 졸업장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에 상응하는 자격증을 획득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년 10여 명의 학생이 학교를 찾아온다. 정부로부터의 지원도 물론 없다. 따라서 전공부의 학교 재정도 대부분 학교 안에서 자립적으로 마련한다.
현재 학교 수입의 대부분은 전공부 선생들과 학생들이 짓는 농사 수입 및 후원회원들의 자발적인 후원회비로 충당되고 있다. 전공부의 1년 예산이라고 해봐야 고작 1억원이다. 이 1억원으로 농사 실습에 필요한 각종 자재와 종자를 구입하는 등 1년 농사 대금을 마련하고, 이론 수업을 위한 자료나 기자재를 구입하며, 강사를 포함한 학교 교직원 11명의 임금을 지급하고, 도서관에 도서를 구입할 뿐만 아니라, 기타 학교에서 쓰이는 모든 운영비를 충당하고 있다.
나는 전공부에 강의를 나온 지 근 1년이 되어서야 전공부의 재정 사항에 대해 이 정도나마 들을 수 있었다. 이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1억원으로 11명 교직원의 인건비를 포함해 학교 운영의 모든 것을 감당한다니! 1억원이면 일반 학교 교직원 5명의 연간 인건비에도 못 미치는 돈이 아닌가. 그런데 어떻게 ‘대학’을 표방하는 학교에서 이 돈으로 그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전공부는 실제로 6년 동안 그렇게 운영돼왔다.
그렇다면 전공부의 교육 내용이 대학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은 부실한 내용이 아닌가, 의심하는 분도 있으리라 여겨진다. 그러나 전공부의 교육은 그 내용에 있어서도 여느 2년제 대학 못지않다. 아니 오히려 훨씬 질 높은 교육이 이루어진다고 말할 수 있다. 이는 내 개인 의견이 아니라, 전공부를 견학하기 위해 방문하는 수많은 외국인들과 내국인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이다.
한편 전공부는 학생 전원이 기숙사 생활을 한다. 학생들은 오전에는 정해진 교과에 따라 강의실에서 수업을 하고, 오후에는 직접 논밭에서 농사일을 배운다. 모내기, 김매기, 추수 등 농사일이 한창인 농번기에는 특별히 ‘실습주간’을 마련해 보통 2주일 내지 3주일을 농사에만 매진한다. 농업대학인 만큼 여름방학은 두 차례의 논 김매기가 끝나는 7월 말부터 2주 정도의 휴가로 대체되고, 겨울에는 일반 대학처럼 12월에 방학을 한다. 지역과 더불어 사는 농민을 기르는 것을 목표로 하는 전공부의 모든 일정은 그 해 농사 일정에 따라 결정된다.
3.
풀무학교 전공부에서 한 해 생산하는 농산물은 얼마나 될까? 고추, 생강, 마늘, 양파, 고구마, 감자, 배추, 무 등 대부분의 밭작물은 전공부 학생들의 먹을거리가 되고, 환금수입을 올릴 수 있는 작물은 쌀이 유일하다. 요컨대 3천만원 정도의 쌀 판매 대금이 전공부의 한 해 농사 수입인 셈이다. 지금까지 전공부에서는 이 3천만원 상당의 쌀 가운데 3분의 1은 고등부 기숙사에 공급하고, 3분의 1은 지역 홍동농협의 수매에 의해 해결해왔다. 나머지 쌀 3분의 1 가운데 일부는 전공부 학생들이 먹고, 그러고도 남은 쌀은 몇몇 지인들에게 팔아왔다.
그런데 2005년부터 홍동면의 유기농쌀이 적체 현상을 보이고 있다. 2005년 홍동면에는 약 2,200여 톤의 유기농쌀(40억원 상당) 가운데 약 9억원에 해당하는 쌀이 재고로 남았고 올해도 사정은 마찬가지라고 한다. 홍동면에서 나는 유기농쌀은 일반 관행농쌀과 달리 정부 수매가 아니라 전적으로 지역 농협과 생협(풀무생협) 수매로 도시 소비자 단체에 판매해왔다. 2004년까지 홍동의 유기농쌀은 없어서 못 팔 만큼 인기가 좋았다. 하지만 작년부터 이러한 유기농쌀이 재고로 쌓이기 시작했다.
절멸 상태에 있는 농촌과 농업을 살리기 위해, 홍동에서는 오래 전부터 풀무학교를 중심으로 유기농업을 확산시켜왔다. 지금 홍동면 전체 쌀농가의 70%(재배면적으로는 86%이며 학교 인근 문당리의 경우는 쌀농가의 90%)가 유기농쌀 재배로 전환했다. 여기까지 오는 데 꼭 30년이 걸렸다. 1975년 풀무학교에서 처음 유기농업을 제창했을 때만 해도 홍동 농민 대부분은 그 외침에 귀기울이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새 70% 이상의 농가가 유기농업으로 전환해, 자립하는 지역으로 거듭난 것이다. 때문에 홍동면은 다른 농촌 지역과 달리 활기가 넘치고 무엇보다 학교와 지역이 유기적으로 결합해 아이들의 웃음과 젊은 농군들의 목소리가 넘쳐나는 ‘부러운 시골 마을’이 되었다. 그런데 이처럼 남한 땅에서 가장 여건이 좋다는 홍동에서마저 농사를 포기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터져나오고 있다. 유기농쌀이 적체되면서 농민들의 생계가 위협받고 있기 때문이다.
2004년까지만 해도 없어서 못 팔던 홍동의 유기농쌀이 왜 지난 2년 동안 팔리지 않은 채 창고에 쌓이고 있는가? 먼저 2년 동안 유기농쌀을 재배하는 농가는 확대된 데 반해 도시 소비자들의 쌀 소비는 오히려 줄었다는 데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게다가 그때 마침 정부에서 쌀 수매를 ‘포기’한다고 선언하였다. 이러한 정부의 쌀 수매 ‘포기’는 판로가 막힌 일반 관행농쌀마저 직거래시장으로 내몰았고 이로 인해 유기농쌀의 판로는 더욱 줄어들게 되었다. 예컨대 내가 유기농쌀을 소비하고 있었다 하더라도 쌀농사를 짓고 있는 고모부가 수확한 쌀을 수매받지 못해 나더러 이번에 쌀 좀 팔아달라고 부탁한다면 아무리 유기농쌀을 소비하고 있다손치더라도 어떻게 그 쌀을 먹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런 점을 생각한다면 정부의 쌀 수매 포기 정책이 유기농쌀 적체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고 유추해볼 수 있다.
또한 유기농쌀 시장에 대기업이 뛰어들면서 유기농쌀마저 대형화․상업화되고 있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사실 ‘유기농쌀을 대형화(혹은 규모화)․상업화한다’는 것은 이미 그 말 자체가 모순이다. 유기농쌀은 결코 대형화할 수 없다. 상업화될 수도 없다. 유기농쌀은 전적으로 작은 농가 단위에서, 순환가능한 농가의 유기부산물로 생산되는 것이다. 수만 평이나 되는 대규모 농지에, 수입 유기질 비료를 투입해 생산된 쌀은, 말만 유기농쌀일 뿐이지 실제로는 수입 유기질 비료를 통해 마치 공장에서 생산되는 공산품처럼 기계적으로 ‘제작된 쌀’일 뿐이다. 때문에 유기농쌀보다 한 단계 아래인 저농약재배쌀(우리나라의 ‘저농약’ 기준은 유럽에서 가장 농약을 많이 치는 것보다 그 기준이 높다고 하니 듣기 좋은 말로 ‘저’농약일 뿐 기실 ‘고’농약에 다름 아니다)이나 무농약재배쌀이라고 하면 대형화․상업화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유기농쌀은 원칙적으로 대형화․상업화하고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도시 소비자들은 이를 잘 모른다. 그저 ‘친환경쌀’이라고 하면 덮어놓고 유기농쌀인가보다 여긴다. 이 ‘친환경쌀’에 포함되는 게 바로 저농약쌀․무농약쌀․유기농쌀인데, 이 중 유기농쌀이 가장 높은 단계의 쌀이다. 그런데 대기업에서 이 친환경쌀시장이 돈벌이가 된다고 여겼던지 여기에 뛰어들어 기존의 유기농쌀시장을 왜곡하고 있다. 이 점 역시 현재 유기농쌀이 적체되는 원인 중 하나다.
그런데 이것이 단순히 유기농쌀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유기농쌀의 적체 문제는 그것이 유기농쌀이든 농약을 친 쌀이든 상관없이 남한 땅의 쌀 문제 전반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이는 고사 상태에 있는 남한 농업을 살릴 것이냐 죽일 것이냐 하는 문제와도 연결되어 있다.
4.
이 점에서 나는 ‘우리쌀 먹고 팔기’가 당면한 FTA 반대 투쟁에서, 한미 정부의 ‘잔머리만 잘 굴리는 머리 좋은 바보들’과 싸우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투쟁으로 자리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근본적 의미에서는, 우리 농촌과 농업의 보루인 쌀농사를 지키는 일이야말로 FTA 반대 투쟁에 있어 가장 핵심적이고 장기적인 투쟁 목표가 되어야 한다. 또한 이는 미룰 수 없는 긴박한 투쟁 지침이 되어야 한다. 쌀농사가 무너진다면, 그래서 농촌과 농업이 절멸해버린다면, 한미FTA가 아니라 전세계 모든 FTA가 철회된다 한들 우리 삶이 나아지리라고 도무지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지금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도시 소비자들이 ‘남한 땅에서 나는 우리쌀’을 최대한 많이 먹고 많이 파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쌀을 많이 먹고 많이 팔 수 있을까? 이런저런 고민 끝에 노무현 정부에서 잘 한다는 ‘역발상’이란 단어가 떠올랐고, 그래서 나도 발상의 전환을 해봤더니 정말 깜짝 놀랄 만한(물론 정부 입장에서) 발상이 떠오르는 것이었다. 바로 “농업 관련 정부 기관(이하 ‘농관련 기관’으로 약칭)에 종사하는 모든 관료들의 임금의 50%를 남한 땅에서 나는 농산물로 현물 지급하자”는 것이다. 항산(恒産: 일정한 생계, 즉 물적 토대)이 있어야 항심(恒心: 일정한 마음, 즉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아는 마음)이 생긴다는 맹자의 말에 꼭 부합되는 것은 아니지만, 농관련 기관의 종사자들이 임금의 50%를 쌀을 비롯한 우리 농산물로 지급받는다면 쌀농사를 살리는 일에 발벗고 나서지 않겠는가? 그제서야 농업을 ‘자기 일’처럼(사실 자기 일임에도 그 역할과 책임을 방기한 채 자기 일이 아닌 체 살아왔지만) 여기지 않겠는가? 또 이렇게 되면 농업을 팔아 밥 먹고 살던 정부 관료들이 제대로 된 농업 살리기 정책을 한 번이라도 시도해보지 않을까? 천규석 선생은 “아예 농림부를 없애는 게 낫다”고 하셨지만 그건 역시 너무 ‘과격’한 발상이다. 농업이 망하면 농관련 기관 역시 사라지게 마련이니 그나마 마지막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도 그리 나쁜 일은 아닐 것이다.
처음부터 한꺼번에 ‘모든 농관련 기관 종사자들에게 임금의 50%를 농산물로 지급한다’는 정책을 실시한다면 그 충격이 너무 클 것이다. 어떤 정책이든 시범이라는 게 필요하므로, 이 정책도 1년 정도는 5급 이상의 공직(公職)에 한정해 실시하는 게 좋지 않을까 한다. 6급 이하는 같은 ‘공직’이긴 해도 공공의 이익을 대변하는 공직자라 하기에는 항산(恒産)이 부족한 게 사실이다(물론 농민들에 비하면 비할 데 없이 큰 항산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겠지만). 때문에 6급 이하 (준)공무원들은 공평하고 공변되며 자기 개인보다 공공의 이익을 위하는 마음이라 할 공심(公心) 역시 5급 이상 관료에 비해 약할 게 분명한바, 처음부터 이들의 임금까지 50%를 현물로 지급한다면 자칫 반발과 혼란에 휩쓸려 제대로 된 정책을 시행하기도 전에 이 계획이 좌초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우선 첫 해는 공심이 가득하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5급 이상의 관료들부터 임금의 50%를 농산물로 현물 지급하자는 것이다.
지금까지 농관련 기관 종사자들은 열등의식에 사로잡혀 그런 것인지 아니면 공무(公務)에 대한 책임의식이 결여되어 있어서 그런 것인지, 그 정확한 이유를 확인할 수는 없지만, 자신들이 해야 할 역할을 방기하거나 자신들의 직무(즉 공무)에 태만했던 게 사실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우리나라 농업이 이 지경이 되었는데도 나 몰라라 방관만 한 채 이토록 숨죽이고 있을 수 있겠는가. 물론 이것이 나의 오해이길 바란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정부의 농관련 정책이나 농관련 공직자들의 태도만 본다면 이런 오해를 사기에 충분하다. 이 기회에 이런 오해를 훌훌 털어버리시기 바란다. 농관련 기관의 종사자들도 건설교통부와 같은 ‘힘 있는’ 정부기관처럼 솔선해서 자기 부처의 이익에 전념하셨으면 좋겠다. 예컨대 건설교통부는 건설과 교통을 ‘발전’시키는 게 목표일 터인바, 그곳의 직원들(특히 公心이 투철한 5급 이상 관료들) 역시 부처의 목표에 맞게 충실히 온갖 건물을 짓고 도로를 개발하며 자동차를 위해 최대한 노력하고 있지 않은가. 비록 공무를 온전히 수행하지 못하는 경우라 해도, 자기 집을 증축하거나 새로운 집을 구매하고 최소한 자기 자동차의 배기량이라도 늘리는 등 개인적 차원에서나마 자기 직분에 걸맞는 일을 하고 있지 않던가. “윗사람이 솔선해야 아랫사람이 교화된다”는 공자의 말씀처럼, 건설교통부 직원들이 솔선해 건설과 교통을 책임지고 ‘발전’시키고 있으니 우리나라의 건설업과 교통업도 더불어 ‘발전’하고 있지 않은가. 농관련 기관의 관료들께서도 건설교통부 관료들을 본받아 우리 농업을 살리기 위해(우리는 ‘발전’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솔선해주셨으면 한다.
이렇게 농관련 공직자들의 솔선수범으로 인해 우리 농산물의 판로가 열리고 그래서 우리 농업이 살아나는 전기를 마련하게 된다면, 그 공(功)은 모두 정부 농관련 기관의 공직자들에게 돌아갈 것이며, 그로 인해 지금까지 어느 부처보다 복지부동(伏地不動)의 교훈만을 철저히 섬겨왔던, 그래서 쥐죽은 듯 기도 못 편 채 살아왔던 농관련 기관의 공직자들도 건설교통부 직원 못지않게 해당 직종의 인민들에게 존경받으며 공무를 수행할 수 있지 않을까?
기회는 쉽게 오지 않는 법이다. 우리 농업의 마지막 보루라 할 쌀마저 무너지고 있는 이때, 농관련 기관의 공직자들이 임금의 50%를 농산물로 받겠다는 선언을 한다고 생각해보라. 오랜만에 전국 곳곳에서 그 공직자들의 ‘위대한 발상’에 환호작약하지 않겠는가. 정말 좋은 기회다. 농관련 기관의 공직자들은 부디 이 기회를 잃지 마시기 바란다.
5.
앞서 나는 인문학이 위기라는 말로 이 글을 시작했다. 인문학이 위기라는 말에 인문학을 공부하는 학인(學人)의 한 사람으로 엄중한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한 바 있다. 그렇다면 내가 책임감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인가? 나는 왜 인문학이 위기라고 생각하는가? 인문학이 지금 이 글과 무슨 관련이 있단 말인가?
눈치 채신 분도 있겠지만, 우리 농촌과 농업이 절멸 상태에 내몰려 있는데 어찌 인문학이 위기가 아니겠는가. 이렇게 말해도 모르는 분을 위해 잠시나마 농업과 인문학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한다.
사실 나만 해도 풀무학교 전공부에 처음 강의를 와서 인문학 강사를 이렇게 대접해주는 데 크게 놀랐으니, 당시에 나 역시 농업과 인문학의 관련성에 대해 제대로 몰랐음에 틀림없다. 얼마 안 되는 강사 경험이지만 농업학교인 풀무학교만큼 인문학을 대접해주는 곳은 달리 없어 보였고, 신출내기 인문학 강사인 나는 이 점에 퍽 매료되었음을 고백해야겠다. 어쩌면 내게도 인문학을 공부하며 느껴오던 표현하기 힘든 ‘도시에서의 설움’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풀무학교 전공부에서는 농업 실습만큼 인문학 수업이 강조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인문학의 토양이 농촌과 농업이며, 그 토양의 자양분을 먹고자란 인문학은 농민의 미적 감수성을 고양시키는 동시에 농민에게 보다 높은 꿈을 갖게 하고 보다 깊은 사유를 가능케 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농업과 인문학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며, 농촌과 농업이 없는 곳에서는 인문적 상상력도 발휘될 수 없다.
이 강의는 농부와 인문학(혹은 인문주의)의 상호관련성을 확인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농부에게 왜 인문학이 필요한지, 나아가 인문학적 감수성과 상상력이 왜 요구되는지, 그 이유를 직접 깨달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여기서 인문학적 상상력이란 좁게 말해 문학적 상상력이라 할 수도 있을 터인데, 문학적 상상력이란 달리 말해 땅에 뿌리박은 상상력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인문학이란 인간과 세계에 대한 근원적 질문과 상호이해 및 해답을 찾는 것이며, 농사 역시 땅과 자연에 대한 근원적 상호작용과 이해에 바탕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요컨대 인문학을 하는 사람과 농사를 짓는 사람의 세계에 대한 태도는 근본적인 의미에서 동일하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평등안(平等眼: 세계에 대한 공평무사한 시선)이자 너와 나를 동시에 고려하는 보살핌의 정신이라는 말로 요약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인문학적 상상력과 땅에 뿌리박은 농부의 상상력은 동일한 의미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또한 근대산업문명에 의해 땅과 공동체가 파괴되고 농부가 절명(絶命)하는 꼭 그만큼, 근대문학의 종말은 앞당겨질 것이고 인문학의 위기도 가속화될 것입니다. 때문에 ‘農的 가치’(혹은 vernacular value)와 땅에 뿌리박은 농부의 세계관을 회복하는 일은 곧 인문적 감수성과 상상력을 회복하는 일에 다름 아니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본 강의가 이러한 목표에 얼마나 부합할 수 있을지 자신할 순 없지만 함께 읽고 자신의 얘기를 써보면서 이를 체득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이를 위한 세부적 사안으로 비판적으로 읽고 쓰는 수업을 진행할까 합니다. ‘읽기’는 해당 작가의 세계관 및 감수성에 주의(attention)를 집중해 귀기울이는 일이며, ‘쓰기’는 내 속에 있는 감수성 및 상상력을 표현해내는 일입니다. 이 두 가지 작업은 분리된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의를 통해 확인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강의 시간에는 이 두 가지 작업을 동시에 진행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특히 ‘쓰기’와 관련해 생활 속에서 느끼고 체험한 자신만의 고유한 글쓰기에 중점을 두면서, 보편적인 언어로 자신의 속내를 이야기할 수 있는 논리적 글쓰기도 병행해볼까 합니다.
풀무학교 전공부에서 나는 ‘농부와 인문’이라는 수업을 맡고 있다. 전공부에서는 흔히 ‘글쓰기 수업’이라 부른다. 위에 인용한 것은 그 수업의 강의 목표이다. 이를 통해 인문학과 농업이 왜 그렇게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고 말하는지 대강의 사정을 확인하셨을 것이다. 실제 감수성의 측면만 보더라도 도시의 학생들과 농사를 직접 짓는 학생들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을 산 경험으로 알 수 있었다. 수업 시간에 한 학생이 발표한 시 한 편을 들어본다.
기도
이진경
기도는
하나님께 내 얘기만
드리는 게 아니라
가만히 그 말씀
듣는 것이라고 한다.
그럼 세상에서 제일
기도 잘 하는 건
나무거나
풀이거나
돌이거나.
아니, 어쩌면 나도!
그 마음
고요할 때.
물론 농사를 짓는다고 누구나 이런 식의 인문적 감수성이 제고되는 것은 아닐 터이다. 그래서 농사와 인문학이 결합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농사 혹은 농업과 인문학이 떼려야 뗄 수 없는 상호공생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해온 셈인데, 바로 이 점에서 ‘인문학 위기’의 본질을 말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한다. 지금 우리 농촌과 농업이 망해가는데 인문학이 어떻게 위태롭지 않을 수 있겠는가. 따라서 인문학의 위기 극복을 위해서는 모든 인문학도들이 우리 농촌과 농업을 살리는 데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인문학을 공부하는 학인으로서 엄중한 책임감을 느낀다고 했던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였다. 우리 농촌과 농업이 죽으면 인문학도 종말을 고할 수밖에 없을 터,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 시점에서 우리 인문학도들도 위기의 타개를 위해 농관련 공직자들의 선례를 따르는 것은 어떨까? 즉 임금의 30% 정도는 쌀로 지급받겠다고 자발적으로 선언하는 것이다. 물론 이는 상징적 선언이므로 앞장서 ‘선전’ 운동을 주도했던 교수님들께 국한해도 좋을 것이다.
6.
다시 ‘쌀 판촉활동’으로 돌아가자. 풀무학교 전공부에서는 올해에 지역 농협(홍동농협)에 학교 쌀을 팔지 않고, 직접 도시 소비자와 직거래하기로 결정하였다. 이는 지역 속의 학교를 지향하는 건학이념에 따라 적체된 홍동 지역의 쌀 판매에 부담을 끼치지 않으면서, 또 장기적으로는 지역의 쌀 판매 활성화를 위한 하나의 실험으로 도시 소비자들과 ‘1년약정 계약’을 체결해 쌀을 판다는 계획이다. 이 글 끝에 풀무학교 전공부으이 쌀소비 1년 약정에 관한 간단한 문안을 첨부한다. 도시에서 소비자로 살고 있는 <녹색평론> 독자분들도 우리쌀을 많이 먹고 많이 파는게 당면한 우리 운동의 핵심적 사안임을 깊이 인식하시고, 우선 풀무학교 쌀판매에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좋겠다. 또한 이를 참고로 많은 지역에서 이런 운동이 활성화되기를 기대한다.
나는 지난 2년 동안 풀무학교 전공부를 오가며 그곳 학생들과 선생들 및 지역의 농민들에게 너무도 많은 것을 배웠다. 이런 식의 ‘쌀 판촉활동’을 통해서나마 나에게 많은 가르침을 준 풀무학교와 그 지역에 작은 도움이라도 된다면 퍽 다행스런 일일 터이다. 다시 한번 독자 여러분의 깊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린다.
7.
멕시코 치아파스 원주민들에게 옥수수가 그러하듯, 지금 우리에게 쌀은 삶의 모든 것이라고 말해야 한다. 쌀은 밥이며, 쌀은 땀이며, 쌀은 노동이며, 쌀은 눈물이다. 쌀은 슬픔이며, 쌀은 행복이며, 쌀은 시(詩)이며, 쌀은 노래다. 쌀은 우정이며, 쌀은 협동이며, 쌀은 자치이며, 쌀은 민주주의다. 쌀은 평화며, 쌀은 해방이며, 쌀은 혁명이다. 쌀은 우리의 땅이며, 쌀은 우리 모두의 생명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쌀은 모든 학살과 억압과 원한과 분노에 저항하는 가장 강한 사랑이며 스러져가는 마지막 희망이자 절망이다.
<위 글은 녹색평론 (2006년 11-12월) 통권91호 129-141쪽 실린 글 초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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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단체 박상우 국장의 배우자가 살고있는 홍성 풀무학교에서 보내온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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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무학교 농장에서 생산된 유기농산물을 판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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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쌀 종류 : 현미/7분도/백미/흑미(찰벼)/찹쌀
* 현미, 7분도, 백미: 10kg 35,000원/ 20kg: 6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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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비는 학교에서 부담합니다)
2. 주문방법 및 판매방법
1) 한 달 동안 각 가정에서 필요한 쌀의 양을 정하여 1년 단위로 계약하여
매달(또는 두 달에 한 번) 필요한 양을 바로 도정하여 25일에 발송합니다.
2) 20kg을 몇 가정에서 나눌 때는 5kg 또는 10kg씩 따로 소포장 발송 가능합니다.
3) 입금처 : 농협 473042-51-014849 풀무학원 (***입금하시면 발송합니다***)
4) 전화 보다는 쌀구입 약정서를 보내주세요! (첨부파일 다운받은후 작성)
3. 연락처
-. 풀무학교 전공부 (김현주 khj9847@hanmail.net)
전화 (041) 634-9847, 손전화 016-439-2676, www.poolmoo.net
-. 풀무학교 생활협동조합 (이장임 food@poolmoo.net)
전화 (041) 633-8948, 손전화 010-9457-2098, 전송 (041) 631-66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