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국동 窓> 파국의 코미디 - 국회는 스스로 해산하라
차병직(참여연대 집행위원장, 변호사)
희극의 결과는 비극이었다. 2004년 3월 12일 정오를 전후하여 대한민국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벌어진 일은 여전히 코미디였다. 그러나 야당 의원들이 한마음이 되어 연출한 코미디는 국민에게 희망이나 즐거움을 주기는커녕, 헛웃음조차 나올 수 없게 만들었다. 오히려 좌절과 분노만 안겨 주었다.
대통령에 대한 탄핵 소추 의결에 193명의 야당 의원이 찬성했다. 그리하여 탄핵소추안은 그들의 이성이 아닌 감정에 따라 통과됐다. 그 순간부터 노무현 대통령의 권한은 헌법에 따라 정지됐다.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심판에 대한 기각 결정을 할 때까지, 대통령은 직무를 수행할 수 없다. 하게 되면 그 직무 행위는 무효가 된다. 총선을 불과 한 달 앞두고, 내홍으로 갈팡질팡하던 야당들이 이제 임기 첫해를 막 넘긴 대통령을 몰아낸 결과다.
대통령을 비롯한 고급공무원의 탄핵 소추를 의결할 수 있는 것은 국회의 헌법상 권리다. 그러나 헌법 제65조는 아무 때라도 의결할 수 있다고 하지 않는다. 대통령이 직무 수행을 하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반했을 때 할 수 있다고 규정할 뿐이다.
그렇다면 탄핵 소추안을 발의한 야당의 주장은 무엇인가. 노 대통령이 기자 회견에서 열린우리당의 지지를 호소한 것이 헌법이나 법률에 위배하는가. 약간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는 있다. 그러나 중앙선거관리위원회도 선거법을 위반한 것은 아니라고 결정했다. 단지 총선을 앞두고 대통령이 정치적 중립을 유지해 달라고 권고했을 뿐이다. 이 결정을 야당은 마치 선거법 위반을 확인한 것처럼 떠들어댔고, 급기야 탄핵 소추 발의의 이유로 내세웠다. 헌법재판소에 가면 금방 밝혀질 사실인데, 야당은 정략적으로 국민을 속이려 시도한 것이나 다름없다. 언론의 여론 조사 결과 헌법 학자들도 그것이 탄핵의 이유가 될 수 없다는 압도적 의견을 표시하지 않았는가.
야당이 노 대통령에 대해 요구한 것은 다른 게 아니라 사과였다. 사과만 하면 탄핵 소추안을 철회할 것처럼 나왔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야당의 요구를 거절했다. 야당의 요구는 국민에게 사과하라는 게 아니라 야당에 사과하라는 것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었던 듯하다. 그래서 탄핵 시도 포기를 먼저 요구했다.
이 부분에서 핵심은 이것이다. 야당의 태도로 보아 정말 노 대통령이 진지하게 머리숙여 야당들에 대한 사과를 했다면 비극의 코미디는 중단됐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다면 대통령의 야당에 대한 사과를 하지 않은 행위가 헌법상 탄핵의 이유가 될 수 있다는 말인가!
노 대통령은 야당들의 탄핵 소추안 의결을 강행하기에 앞서 홍보수석을 통해 국민에게 유감을 표시했다. 그러자 야당들은 예상보다 빨리 서둘러 투표를 감행했다. 이러한 야당들의 행위는 그 정당성 여부를 떠나, 수차례의 여론 조사 결과로 나타난 국민 의사를 무시한 것이다.
물론 재적의원 3분의 2를 안전하게 넘겨 행한 의결의 정당성도 인정할 수 없다. 보통 국회의 안건 처리는 제안 설명에 이어 토론을 거친 다음 표결한다. 이런 절차는 친절하게 국회법에 규정도 마련되어 있다. 때로는 이런 절차를 무시하고 날치기로 통과시키는 편법과 탈법을 필요한 관행처럼 알고 있는 것이 우리 국회다. 그러나 대통령 탄핵 소추안은 사정이 다르다. 정치적으로 가장 중요한 안건일 뿐만 아니라, 국회로서도 극도로 진지하게 행사해야 할 권한이다. 그래서 헌법의 의결정족수나 절차도 다른 경우와 달리 까다롭고 엄격하다.
그렇다면, 제안 설명이다 토론은커녕 사실상 국회의장이 경호권이란 강제력을 발동한 상태에서 야당들만 일방적으로 처리한 탄핵 소추안 의결에 정당성이 있을 리 없다. 국회의장은 정상적 안건 처리가 불가능했던 상황을 변명할 것이다. 역시 바로 그 점이 또 하나의 핵심이다. 대통령 탄핵 소추안은 그런 비정상적 상태에서 의결할 수 있는 안건이 아니란 것이다. 대통령 탄핵이란 정상적 상태에서 토론을 거쳐, 이성적 분위기에서 판단하여 의결할 수 있을 때 하라는 것이 헌법의 요구다. 따라서 야당들이 정신없이 해댄 탄핵 소추안 의결은 무효라고 주장해도 국회로서는 할 말이 없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야당들에 대해 한가지만 더 묻고 싶다. 그들이 내세운 이유와 그들이 강제력을 동원해 처리한 탄핵 소추안을 헌법재판소가 과연 이해하리라고 생각하는가. 헌법재판관 중 적어도 6명 이상이 그들의 편에 서리라고 기대하는가. 그렇다면, 야당 의원들은 헌법 과외라도 좀 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국민과 대통령에게 사과하고 전부 물러나야 한다. 그 길만이, 처리해야 할 일은 미루어 두고 처리할 수 없는 것을 서둘러 해 내고마는, 우리 국회가 초래한 어처구니 없는 사태를 조금이라도 진정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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