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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정치의 현실과 지방의제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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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정치의 현실과 지방의제21                 김제선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 사무처장, chamseon@empal.com   최근에 지방의제21의 제도화 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노력들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지방의제21이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사회적 합의체로서 제대로 된 녹색거번넌스(governance) 기구로 자리매김하는 것은 매우 필요한 일이라 생각된다. 문제는 이러한 지방차원의 녹색거번넌스를 현실적으로 가능하게 할 방안일 것이다. 지역사회의 독점적 지배구조   지방자치가 도입되면서 지역민의 삶의 질이 중심이 되는 새로운 자치행정, 지방정치에 대한 기대가 사라지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지방자치가 풀뿌리민주주의로 역할하기 보다는 풀뿌리 보수주의로 기능하는 것이 쉽게 확인된 것이다. 관료와 토건업자 중심으로 구성된 지방정치인들은 중앙소용돌이의 한국사회 특성에 맞춰 해당 지역의 패권을 장악한 중앙정치세력에 줄을 서서 공천을 받고, 지역감정을 선동하여 지역유권자를 동원해서 당선되었다.   당선 되서는 관치행정을 혁파하고 참된 자치와 참여의 시대를 여는 자치행정, 지방정치를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지역민의 개발욕구를 부추기며 없는 개발욕구도 만들어 내면서 무분별한 개발을 추진해왔다. 토건업자들에게는 아름다운 일일지 모르나 수요를 과다 계상하고 재원조달 계획도 부실한 상태에서 수많은 대형개발 계획을 발표하고 강행되어 왔다. 이러한 개발 계획은 관변지식인들에 의해 계산된 비용편익에 의해 합리화되곤 했으며, 완공된 결과물은 예측 수요에 미치지 못하는 이용율을 기록하며 적자를 내기 일쑤였다. 이로 인해 지역민들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데 투여할 지방 재원이 일부 계층의 부와 편익을 증진 시키는데 투여될 뿐 아니라 나아가 그 시설물들의 운영 적자분의 보전하는데 까지 허비되는 것을 목도해왔다.   지방의회도 이러한 무분별한 개발주의를 견제하는 균형점이기 보다는 이에 편승하는 강력한 응원군이었고 대다수의 지역 언론도 일방적이고 무분별한 개발주의를 부추기는 형편이었다. 투명성과 합리성이 없는 개발지상주의의 관철은 셀 수 없이 많은 부정과 비리를 드러내기도 했고 이렇게 지역민과 유리된 지방정치․자치행정은 우리에게 절망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참여민주주의의 기제로 기대되었던 지방자치가 계층중립성을 명백하게 상실하고 지역민의 쾌적한 삶에 역행하는 성장주의의 화신이었으며 환경파괴의 선도자로 다가온 것이다.   아직 지역사회차원에서는 지역 권력이 독과점 되어 있고 정치행정엘리트집단과 토착재력가집단, 수구적 지역 언론을 중심으로 한 지역사회 지배연합이 주도하는 형편이기 때문에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사회적 협력이 용이치 않다는 구조적 문제점을 갖고 있는 셈이다. 지배연합의 이익을 위해 지방정치의 정책 결정은 계층 중립성을 상실하고 무분별한 개발에 편향되어 있다. 뿌리 깊은 정경유착과 인맥․학맥에 의한 독점구조 속에서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거번넌스 자체가 불가능한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지역사회의 견제와 균형의 상실은 한국지역사회에 대한 실증적 연구에서도 입증되고 있다. 학계에서는 그동안 시민운동차원에서 문제 제기되어 온 성장연합을 발견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오히려 단체장 독점적 권력구조만을 발견된다는 것이다. 봉건영주에 준하는 후견주의 지방정부만이 확인되고 있다. 지역사회의 기업인 집단이 독립적 집단으로 존재하여 지방정치인과 교섭하고 협력하여 성장 우선적 정책을 입안, 관철하는 것이 아니라 독점적 권력으로서 자치단체장에게 개인적 충성과 후견의 관계를 맺고 있음이 관찰되고 있다는 것이다. 참여정부의 분권과 지방의제21   이런 마당에 참여정부의 지방분권, 균형발전정책은 지방자치단체에 더 많은 권한을 부여할 것이다. 지금까지 중앙정부가 갖고 있던 행․재정적 권한이 지방자치단체로 넘어올 뿐 아니라 지역산업의 육성을 위한 계획의 수립권(지역 혁신 계획 수립권)과 지역산업 지원을 위한 재정 지출권 까지도 거머쥐게 되었다. 자치단체는 지역대학․지역 언론의 지원 육성까지 관장하게 되었으며, 민간단체에 대한 중앙정부의 지원 지침도 폐지됨으로써 자치단체의 뜻에 부합하는 민간단체에 대한 지원 육성에 대한 자율권도 신장되게 되었다. 지역사회의 작은 비판과 견제력도 자치단체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게 된 상황은 지속가능한 발전을 염원하는 집단들에게는 통제 불가능의 새로운 공룡이 출현하는 것과 다를바 없다.   그 동안도 견제 장치 없는 권력으로서 지방자치단체와의 거번넌스는 마치 시혜요 구걸과도 같았는데 더 큰 권한을 갖게 되면서도 자신에 대한 견제 세력화의 가능성이 있는 집단에 대한 직접적인 영향력이 오히려 커진 지방자치단체가 도시의 쾌적성과 지속가능성을 중심으로 역할하도록 협치의 장으로 나오라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지방의 입장에서는 지방분권과 균형발전 정책을 반대할 수 없다. 왜냐하면 강한 지방 분권의 필요성이 제기된 배경에는 과거 방식의 지역균형개발 정책이 중앙에 과도한 권력이 집중되어 소용돌이처럼 지방의 인력과 재원을 빨아들이는 까닭에 지역에 투자를 해도 소기의 효과를 거두지 못한 사정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 때문에 진정한 지역균형발전을 위해서는 분권이 전제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회적 합의가 적어도 지역사회 내에서는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권화 되었으나 지방이 자율적 발전의 역량을 갖추지 못한다면 중앙의 권한과 재원이 주어져도 비효율적인 낭비만 일삼아 지역을 오히려 피폐화시킬 뿐 아니라 결국에는 다시금 중앙에 의존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분권과 동시에 지역혁신이 추진되어야 한다는 사실 또한 명약관화하다. 물론 거꾸로 지역이 자기혁신을 하려 해도 필요한 권한이나 재원을 중앙이 독점하고 나누어주지 않는 한 혁신이 제대로 이루어지기 어렵다는 점에서 혁신을 위해서도 분권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지역혁신은 지역의 정치행정은 물론 광범위한 사회문화적 분야에 이르기까지 총체적인 변화를 유도하는 내용을 포함하여야지 단지 산업기술혁신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 점에서 참여정부의 혁신정책을 살펴보면 번지수가 틀려도 보통 틀린 것이 아니다. 국가균형발전법에서는 지역혁신의 개념을 앞에서 제기한 분권의 실현조건으로서의 혁신이라는 개념에서 벗어나서 기술․산업적 의미에 국한시키고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의 지역혁신체제란 ꡒ지식의 창출과 확산을 목적으로 기업과 관련기관들이 협력체제를 구축하고 있는 상태ꡓ라 정의되고 있으며, 지역혁신도 지방의 경쟁력 제고와 (경제적)자립화를 위한 수단으로서만 인식된다. 국가균형발전법에서의 혁신개념에서는 혁신 대상이 지역의 기업과 대학으로 되고 있다. 기업과 대학이 협력하여 기술과 생산력의 혁신을 이루자는 것이다. 이는 부패와 무능의 지역유착구조를 척결한다는 분권론적 지역혁신의 개념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분권이 지방이 통치의 객체에서 주인이 되는 변화를 추구한다면 혁신은 주민이 통치의 객체에서 주인이 되는 변화를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혁신의 기본적 의미는 경제․기술․산업에 국한된 innovation이 아닌 민주적 지역정치, 문화, 사회를 만들어내는 reform이어야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의 혁신이란 정확히 지방자치단체의 혁신이어야 한다. 지방정치의 정점에 서 있는 단체장과 지방의원, 지방행정, 그리고 이들과 연계된 언론, 경제, 학계 등의 지역지배구조가 보다 투명하고 공정하게 주민을 위해 봉사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선결과제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지방에 주어진 권한과 자원이 과연 지역경쟁력을 향상시키고 주민 이익을 위해 쓰여질 것인지를 장담하기 어렵고, 지속가능한 발전으로 자리매김하기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현재와 같은 참여정부의 분권혁신 작업이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지방에 권한을 준다는 것이 지방을 구성하고 만들어 가는 많은 사회적 주체들에게 주는 것이지 단체장에게 몰아주는 것이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중앙 ― 지방간 분권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지역 내 분권도 중요하며, 한편 자치단체와 시민사회간의 거번넌스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지방의제21은 참여정부의 분권 정책이 오히려 지역혁신을 가로 막고 구조적 부패 요인의 척결이 아니라 심화가 초래될 수 있는 상황, 무분별한 난개발의 일반화, 경쟁력제고를 빌미로 한 효율성 지상주의 속에서 지역민 삶의 피폐화, 부패의 분산으로 귀결될 수 있다는 점에 깊은 경각심을 가지고 새로운 방향을 정립해야 한다. 먼저 지방의제21의 정체성을   문제는 참여정부의 지방분권, 균형발전 정책 이전에도 독점적 지배력을 행사해왔던 자치단체의 독주로 시민사회와의 거번넌스가 실현이 어려웠는데 지역 사회 내 세력의 구도는 균형이 한쪽으로 더욱 기울고 있다는 것이다.   녹색거번넌스의 필요성은 더욱 높아지는 객관적 상황과 이를 실현할 주체적 조건은 더욱 나빠지고 있다는 괴리를 어떻게 넘어설 수 있을까가 지방의제21이 당면한 문제라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일반 시민들은 의제21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고 있다. 설혹 지방의제21 추진 기구는 활성화되어 있다 할지라도 지속가능한 발전이 지역민의 합의로 자리 잡지는 못하는 현실을 우리는 고통스럽지만 받아들여야할 것 같다. 참여자들 가운데에서도 자치단체의 일정한 보조금을 수령하고 일반 환경단체와 유사한 사업을 추진하며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사실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이런 속에서 지방의제21이 앞으로 어떻게 발전해나가야할 것인가.   지방의제21추진기구가 환경관련 시민사업을 추진하는 공공사업 대행기구인지, 지역사회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의제의 실천을 평가하고 문제점을 발견해서 해결을 추진하는 거번넌스 기구인지, 자치단체장의 요구에 따라 자문에 응하고 일부 사업을 시행하는 정책자문 기구인지가 모호한 정체성의 문제부터 풀어야하지 않을까 싶다. 자신의 정체성이 무엇인지도 정립치 않은 속에서 현재의 조직과 인력의 안정만을 추구하는 것으로 지방의21 제도화가 추진된다면 또 다른 형태의 자치단체 홍보기구화, 관변화를 용인하는 것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앞에서 검토한 것처럼 녹색거번넌스를 실현할 필요성은 더 커지고 있지만 이를 실현할 기반과 주체적 여건은 매우 불안정고 취약한 현실임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녹색거번넌스의 방향성을 포기하는 댓가로 현재의 불안정한 지위를 안정화하는 것 안주할 수는 없다.   물론 지방의제21추진기구들이 거번넌스로 역할하기에 지방정치의 현실은 너무나 동떨어진 현실을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 한 단계 발전하는 의제21운동의 모색이 가능할 것이다. 녹색건번넌스의 필요성이 더욱 높아진 당위와 현실의 불일치를 극복하려는 것이 우리의 출발점이 되어여 한다. 그 시작은 지방의제21의 정체성을 다시 곧추세우는 일이어야 한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강력한 영향 속에서 사회의 양극화는 지방의 빈사, 지방내의 양극화를 또다시 재생산 해내고 있다. 우리들이 자치단체와의 공동 사업을 제대로 수행하기도 벅찬 현실 속에서 마을에서부터 공동체가 무너지고 신뢰가 사라지며 파괴되 가고 있다. 참여정부의 지방분권이 지역의 부패에 미칠 영향 평가와 대안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지방분산, 균형발전 정책이 지속가능한 발전에 미칠 영향 평가와 대안이 마련되고 있지 않다. 이런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해나갈 주체로, 지역혁신의 중심적 주체로 지방의제21이 나서면 많은 시민들이 환영하고 참여하지 않을까. 새로운 형태의 비판과 협력, 참여와 생태, 공생의 새로운 지역발전 모델을 지방의제21이 제시하고 사회적 합의를 추진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객관적 조건은 어렵지만 우리 스스로가 결단하고 원래의 위상을 강력히 주장하며 맞서 싸워나가면 해결될 많은 문제가 있을 것이다. 조직과 재정의 안정화도 이러한 본래의 역할을 감당할 때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다. 이런 본래의 역할을 감당치 않으면서 이루어지는 제도화는 어떤 면에서 지속가능한 발전을 파괴하는 세력에게 구걸하고 시혜를 받고자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기도 하다. 현재에 안주하는 피동적 자세가 아니라 소명의식을 갖고 주체적으로 나선다면 자치단체가 의제를 작성하고 선포하지만 이행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평가하고 문제제기부터 시작해야 한다. 문제제기에 대한 보복으로 자치단체가 지방의제21을 외면한다면 참다운 거번넌스를 위해 이에 맞서 싸워야 한다. 제도화 되어있지 않고 언론환경도 지방권력과도 불편한 여러 시민사회단체들도 성장하고 발전하는데 의제21처럼 중앙정부의 지지와 이미 지방자치단체 스스로가 선포한 의제를 갖고 있는 우리가 못할 것이 무엇이 있을까 싶다. 시민사회단체와의 관계도 이런 정체성문제가 풀린다면 갈등적이기 보다는 적극적인 참여와 협력이 가능할 것이다. 이미 참여정부가 제대로된 지역혁신을 포기한채 지역혁신협의회를 만들었다면 이를 지역차원의 경제적 지속가능성의 추진 기구로 자리 잡도록하고 환경적으로 지속가능성을 만들어 가기 위한 기구로 의제21이 자리 잡도록 나서야할 것이다.   자치단체의 시민사회 포섭 및 홍보 보조기구의 위상이 아닌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정책모니터 평가 협의기구의 위상을 확보하고 이의 실천을 위한 시민참여 기구로 만들어가면서 마을별로 사랑과 우애에 기초한 공동체운동을 개발하고 실천한다면 지방의제21의 미래는 밝을 것이다.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인 조건에서 추진되는 지방분권과 분산에 대응해서 지역혁신의 중심주체로 의제21이 나서고, 의제의 실천 이행을 점검 평가하는 사회적 합의기구의 위상에 걸 맞는 활동을 벌이는 한편으로 지역공동체를 가꾸는 실천을 벌여나가는 지방의제21을 꿈꿔본다. 어려움이 없지는 않겠지만 여럿이 꾸는 꿈은 꿈이 아니라 현실이 된다고 한다. 소명의식을 가지고 일한다면 불가능한 꿈만은 아닐 것으로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