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을 사람의 만남이 아름다운 도시로,
열린시대 새 지방자치를 만들어갑니다.
리플렛 내용을 첨부해놓았음. 수신 : 각 언론사 담당기자 발신 : 대전산내학살대책회의(금홍섭, 010-3419-0092) 제목 : 여섯 번째 대전산내학살 희생자 위령제 개최안내 날짜 : 2005년 7월 1일 비가와도 제6차 대전산내학살 희생자 위령제는 예정대로 개최됩니다. 많은 성원과 아울러 취재와 보도를 요청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주 제 :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제6차 대전산내학살 희생자 위령제 - 일 시 : 2005. 7. 3일(일) 오전 10시~12시 - 장 소 : 대전 산내초등학교 운동장(대전 동구 산내) - 주 최 : 대전산내학살 대책회의 희생자 위령제 준비위원회 - 주 관 : 제주4.3유가족 / 여순사건유가족모임 / 대전형무소희생자 유가족 대전산내학살 대책회의 / 대전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미군 학살만행 진상규명 전민족특별조사위원회 대전충남본부 - 후 원 : 한국전쟁전후 민간인학살 진상규명 범국민위원회 / 과거사 청산을 위한 국회의원 모임 / (사)민족예술인총연합회대전충남지회 민족놀이패 우금치 - 규 모 : 500명 대전산내학살 희생자 위령제는 산내학살 사건의 진실규명을 통해 민족의 화해와 평화, 상생의 차원에서 지난 2000년 첫 번 째 위령제를 개최한바 있으며, 이후 매년 7월이면 유족 및 대전충남지역 시민사회단체와 각계각층 인사들의 참여로 개최해오고 있습니다. 그동안 산내학살 관련 특별법 제정을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경주해온 결과, 지난 5월 3일 “진실규명과 화해를 위한 기본법”이 국회를 통과했습니다. 애초 기대했던 특별법 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국회를 통과한 기본법은 산내학살 건 등 지난 60년 동안, 은폐되고 굴절되어온 각종 의혹사건들을 국가의 책임 하에 포괄적으로 조사하고 재조명하여 해결할 수 있는 법적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그 역사적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오는 7월 3일, 피해희생이 있었던 날로서 “대전산내학살대책회의”는 희생자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여섯번째 위령제를 준비하고자 합니다. 바쁘시더라도 갈등과 단절을 넘어 평화와 통일을 위한 대전산내학살 희생자 위령제에 많은 관심과 참여를 바랍니다. <대전산내학살 희생자 위령제 식순> <1부 / 개회식> 10:00 ~ 11:00 ․ 개회선언 김두연(제주4.3유족회 회장) ․ 대전산내학살 희생자 영령 묵념 ․ 대전산내학살 희생자 위령제 경과보고 이영일(여수지역사회연구소 소장) ․ 추 도 사 이광재(대전산내학살 유족회 대표) 김두연(제주4.3 유족회 회장) 김천우(여수․순천 유족회 회장) ․ 추 념 사 지역 국회의원 ․ 참석자 소개 ․ 결의문 낭독 한국전쟁전후민간인학살범국민위원회 대표 <2부 / 위령공연 및 헌화> 11:00 ~ 11:40 ․ 위령 공연 및 헌화 주 관 / 민족예술단 \'우금치\' <3부 / 중식 및 해산> 12:00 ~ 12:30 ․ 중 식 <결의문 낭독> 어두운 산내 골령골에 빛을 비춰라! - 산내학살 희생자 여섯 번째 위령제에 부쳐 - 과거사법이 지난 5월 국회를 통과했습니다. 과거사법은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집단 희생사건을 포함, 반공주의를 내세운 국가폭력에 희생된 각종 인권침해 사례의 진상을 밝히고 자 제정됐습니다. 그동안 산내 골령골에 진실의 빛을 비추기 위해 기울여 온 노력은 피고 눈물이고 덩어리진 한입니다. 빨갱이란 손가락질, 연좌제로 칭칭 동여맨 굴레, 배우지 못한 차별을 만신창이가 된 몸뚱이 하나로 버텨 왔습니다. 소박한 삶의 꿈은 일찌감치 접고 단지 살아남기 위해 살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참기 어려운 것은 하얗게 공포에 질려 억울하게 죽어간 내 아버지, 어머니 형제자매, 친지들을 뭉그러진 가슴속에만 묻어 둬야했던 아픔입니다. 왜 아버지가, 어머니가, 형이 없느냐는 주변의 물음에 ‘산내 골령골에서 억울하게 총 맞아 죽어갔다’는 사실을 말하지 못했습니다. 말할 수 없었습니다. 어딘가에 나뒹굴고 있을 내 가족의 유골이 묻힌 골령골을 아무도 몰래 도둑고양이처럼 찾아야 했습니다. 거리마다 덕지덕지 나붙은 반공 포스터와 지워지지 않는 빨갱이 낙인이 자식들에게 까지 대물림하게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과거사법이 국회를 통과한 지 오늘로써 꼭 2달째가 됩니다. 이제 응어리진 한이 풀어질 수 있을까요? 골령골에서 죽은 내 아버지가 이유 없이 끌려가 국가가 휘두른 야만스러운 몽둥이에 개처럼 두들겨 맞고 군화발에 밟히다 총알이 박혀 억울하게 죽어간 사실이 밝혀지는 것입니까? 정녕 그렇게 되는 것입니까? 아~ 이제 산내 골령골을 스스럼없이 찾아가 자식들 보는 앞에서 골짜기가 울리도록 참아왔던 울음보를 터트릴 수 있는 것입니까? 하지만, 하지만….여전히 아니라고 하는군요. 그러기에는 과거사법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하는군요. 독 오른 살모사 똬리 같은 반공과 반인권의 위세와 맞서기에는 택도 없다고 하는군요. 진실을 밝힐 서류를 찾아내기 위해 수색할 수도 없고 찾아낸들 압수할 수도, 영장을 청구할 권한도 없다고 합니다. 조사위원들마저 업무를 공정하게 수행할 사람이 일을 맡기가 어렵다고 합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며칠 전 62명의 국회의원들이 다시 개정안을 내서 조사권한을 강화하고 조사위원회 구성도 공정하게 일할 수 있는 사람으로 구성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이 자리에 함께 해주신 각양각지에서 온 국민여러분! 유가족들이 반 백년 묵은 한을 풀고 내 자식들이 미래의 청사진을 그릴 수 있도록 힘을 실어 주십시오. 국민의 생명을 마음대로 빼앗고도 오히려 그 죄 값을 유가족에게 덮어 씌우는 야만의 폭력은 이제 걷어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유가족 여러분! 역사의 진실은 감출 수 없습니다. 정의의 물결은 거스를 수 없습니다. 우리가 받아온 고통과 소외의 세월이 새로운 대한민국의 기초를 놓고 내 후손들에게 정의로운 세상을 물려주는 값진 거름이 되게 합시다. 어두운 산내 골령골에 빛을 비춰 야만과 폭력의 세월을 세상 사람들 모두가 통렬하게 반성하게 합시다. 감사합니다. 2005년 7월 3일 <대전산내학살 사건이란?> 1950년 7월, 대전형무소에는 제주4.3사건과 여순사건 관련 정치범들로포화상태였다. 정원이 1200명이었으나 3배가 넘는 3-4000명이 수감되어 있었던 것으로 당시 간수들에 의해 확인되고 있다. 수형인들의 대부분은 제주4.3사건과 여순사건 관련자, 전쟁직후 예비검속된 보도연맹원 등이었다. 1950년 7월 6, 7일 양일에 걸쳐 명적계를 보고 분류된 수형인 중 사상범들은 8-10일 사흘에 걸쳐 대전시 산내면 골령골로 끌려가 미군과 사회 유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전원 학살당하였다. 그러나 학살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형무소 관계자들이 3일간 수형인들을 끌고나갔다고 증언하는 것과 달리 현장 총살집행자 등 관련자들은 학살이 총 10일간 진행되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또한 주변에 살던 주민들도 열흘간 학살이 진행되었다는 동일한 증언을 하고 있다. 이는 수형인 학살 이후, 대전 지역의 보도연맹원과 좌익 관련 활동 전력이 있는 이들을 예비검속하여 모두 학살하였기 때문으로 밝혀졌다. 즉 형무소 사상범 외에도 군경이 후퇴를 시작한 7월 14일˜16일 막판까지 골령골에서는 학살이 끊이지 않았던 것이다. 대전형무소에서 학살된 수는 해제된 미군문서에서는 여순사건 관련자 1200명, 제주4.3사건 관련자 300명 등 총 1800명이라고 하고 있으나 3000명 이상이 학살된 것으로 추정되며 앨런 위닝턴 등 외신기사는 7000-8000명이 학살된 것을 보았다는 주장을 하기도 하였다. 대전 산내학살 대책회의 희생자 위령제 준비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