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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핵 위기 어디로 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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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 핵 위기 어디로 가나?                                                                                                                  장 수찬 (목원대학교) 1. 북한은 핵을 생존을 위한 필요불가결의 선택으로 생각하는가? 아니면 대미관계의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카드로 사용하려 하는가? ■ 남북한간의 군사비 대결에서 절대 불리한 위치 (남한이 군사비용 8배를 사용) ■ 북한의 군사동맹체제의 붕괴, 남한의 대중국 대러시아 관계정상화로 북한을 포위 ■ 핵보유국으로서 북한 주민달래기(강성대국 이미지 조작)   ■ 미국의 공격에 대한 두려움 2. 남북관계에서 ‘상호주의 (reciprocity)\'의 문제는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 돼지의 게임 (pig\'s game) ▶ Tit-for-Tat Game   김책 공과대학 (62학번)과 북한 핵의 아버지 ▶ 북한 핵의 아버지: 이 성기: 교토 대학 (Kyoto Imperial Univ.) 화학박사학위 (1931년): 북한은 남북 군사대결의 균형이 무저지면서부터 핵을 발전시키기 위한 준비를 해 왔고, 핵준비는 이성기와 같은 헌신적인 과학자들의 생명을 건 투쟁으로 준비되어 갔다. ▶ 적어도 13개 이상의 국가로부터 핵관련 연구의 도움을 받았다.    1. 원자핵 에너지 원구소 설립 (1962년) 2. 애국적 청년과학자 모집 (1970) 3. 애국적 청년과학자들은 레디에이션 (radiation)으로 인해 생식능력 불구자가 되기 전에 아기 생산을 하도록 종용 받았다.   4. 북한 과학자들은 대머리현상, 눈썹이 빠지고. 코피가 항상적으로 쏟아지는 신체이상 현상에도 불구하고 핵연구를 지속적으로 수행한다. 5. 청년과학자들이 쓰러지면 다른 애국청년과학자들이 그 자리를 대신 차고 들어오면서 연구는 계속되었다. 일벌처럼 한 놈이 쓰러지면 다른 놈들이 핵원자로를 다시 들어가는 식의 개발 6. 북한과 파키스탄의 거래: 북한이 미사일을 제공하고, 파키스탄이 원심분리기술을 제공 (우라늄, 플로토늄 축출). 북한 과학자들 Khan Research Laboratory에서 핵관련 브리핑을 받음, 최고의 핵전문가 AQ Khan이 지난 7년 동안에 북한을 13회 이상 방문. 북한 핵과 위기의 무한 순환의 한반도 1. 제1차 핵위기(1993~1994): 제네바 기본합의서로 위기 해결 1993년  한-미가 연합으로 team-spirit 훈련을 재개하자 북한은 이에 대응하여 NPT(Nonproliferation Treaty) 탈퇴. 1992~1993 위기: 북한 공격 검토 1994년 빌 그레함에 이어 카터가 평양방문을 방문하였고, 뒤이어 미국-북한        은 제네바 합의에 동의하였다. 그러나 미국은 북한의 제네바합의가         이행되기 이전에 김정일 정권이 붕괴할 것으로 예견하고, 제네바합의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미적거리기 시작했다. 미 공화당이  94년 11월 중간선거에서 승리함으로써 제네바합의는 완전 백지화되었다. 이때 미국은 경제제재(economic sanction)를 해제하는 것도 미루고, 중유공급일정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 1994년 여름, 페리 전 국방장관이 영변 핵시설을 방문했을 당시, 창        문은 깨지고, 죽은 새들이 떠다니고, 핵연료를 쓴 핵 연료봉이 버려져 있고, 핵연료봉들은 플로토늄 재농축에 사용될 수 없는 수준의 것들이었다. 1994년 빌 클린턴은 대북한 군사적 공격이 현실적으로 가능한지 심각히 검토하였다.   ○ 1994년 5월 19일: 국방장관 빌 페리보고서에 의하면, 전쟁 발발시 적어도 90일 이내에 52,00명의 미국병사, 490,000명의 남한병사 사상자, 예상하기 어려운 민간인 사상자 발생.   100만 이상 사망자 발생할 것으로 예상하고 대북한 공격을 포기 ○ 클린턴 대북공격 포기---->대북 협상으로 전환 --> 북한과의         협상이 마무리 단계에 진입 ○ 플로토늄의 reprocessing을 중단하는 대신, 경제원조(에너지)와 민간용 핵발전소 건설 약속, 북-미 관계 정상화, 평화협정 체결 1998년 8월 3일: 북한은 장거리미사일 능력을 과시하는 광명성 1호 인공위성을 발사 ..............위기가 다시 고조.          1998년 11월 :윌리엄 페리가 대북 조정관으로 임명 ○ 1999년 5월 평양을 방문하고, 핵재처리 시설인 금창리를 방문하고 핵시설을 확인 ○ 1999년 9월 : 페리보고서 의회에 제출 : 포괄적 대북 접근방식(comprehensive Agreed Framework ) 2000년 6월 15일 : 남북 정상회담 (김대중-김정일), 6.15 남북공동선        언 발표 2000년 10월 17일: ○북한 인문군 차수 조명록 (김정일 다음가는 제2인자)의 워싱턴 방문 (미국무성 벤자민 프랭클린 룸 테라스에서, 보름달을 보면서 와인을 올브라이트와 함께 마시다) ○ 10월 18일 빌클린튼 대통령을 백악관에서 만나서, 조명록이 직접 테러리즘을 포기 혹은 비난하고, 김정일의 친서를 전달하며 평양방문을 초청. ○ 미국무부 장관 올브라이트 그로부터 7일 이후(10월 24일) 평양을 방문----> 양측은 포괄적 협상내용 마무리 단계에 돌        입 ○ 올브라이트를 집단체조에 초대: 대포동일호 카드섹선에서 발사되자  김정일 말하길 , “저 미사일이 북한이 발사하는 처음이자 마지막 미사일이 될 것이다“. ”미국이 원한다면 대중국 견제를 위해 한반도에 계속 주둔해도 상관없다.“ ① 북한은 단거리 미사일인 스커드를 제외한 모든 미사일 수출, 발전, 실험을 중단한다. ② 북한은  테러리즘을 반대하고 지원을 중단한다. ③ 북한은 핵발전 계획을 포기한다. ④ 북한은 IAEA로 하여금 핵포기를 포괄적으로 검증하도록 한다. 미국은 일본과 함께 수십억 달러에 이르는 경제원조 약속 ⑥ 미국은 북한과의 전쟁상태를 종식 (평화협정체결)하고 관계를 정상화한다. ⑦ 민간 경수로를 미국과 한국의 부담으로 건설하여 에너지 대체를 도와준다.    2000년: 빌 클린턴 중동평화협상에 집중, 부시의 당선에 따라 부시측이 새로운 행정부의 대외정책의 발목을 잡는 협정체결에 반대함으로써 클린턴이 <포괄적 대북협상, Agreed Framework>을 마무리 짓지 못함 2001년 3월 6일: 콜린 파월 신임 국무장관(곤돌레자는 고문), 클린턴 정부의 대북협상을 지속한다고 발표. 그러나 부시 행정부 내의 네오콘의 반대에 부닥침 2001년 김대중 대통령 와싱턴 방문하여 부시행정부와 대북관계 조정 실패 ○ 대북관련하여 많은 시간을 김대중 대통령과 협의 후 부시 기자회견장에서 북한 맹비난, ‘사람들을 굶기는 주제에 핵무기 개발은 미친        짓이다“ 2. 제2차 북핵위기: 미국과 북한의 ‘위기 회피전략’: 9.19 공동선언(2002년)으로 북핵위기 무마   2002년 Bush 행정부 <Agreed Framework> 폐기<--- 클린턴 정부의 대외정책 실패 사례로 지적 - 네오콘들 ‘대륙간 미사일 방어체계’ 구축위해서 천문학적 숫자의         비용을 justify하기 위해, 악의 축 국가들을 활용.   - Bush는 왜 북한을 악의 축이라고 부르는가? : 국방부장관 럼스펠        트 지싱에 의        해, 어떤 국가들이 핵무기를 보유가능하고, 테러리스트들과 관련될 것인지를 검토, 검토한 후 3개국 (이란, 이        라크. 북한)으로 압축, 3개의 악의 축 (triangle axis of evils). - 2002년 1월 연두기자회견에서 ‘북한을 악의 축’이라고 부시가 지        적. - 남북한의 우주선 촬영 야간지도에 감명, 북한으로 납치된 3명의 여자아이를 가진 일본여성과 대담함, 북한을 해방시키는 것이 부시의 종교적 사명. (2002년 4월 회의에서 부시의 대북정책의 윤곽이 드러남) 2002년 10월 : 미국측 협상대표단 James Kelly이,  \'북한이 아직도 비밀 우라늄 농축시설 을 보유하고 있다‘고 사실을 왜곡과장. - 사실상 미국정보부는 북한의 핵 원심분리기로부터 플로토늄을 재처리하고 있다는 증거를 확보하지 못함. - 영국 수상 블레어의 ‘캄보네 팀’도 북한의 핵재처리 시설의 가동을 확인하지 못        함     2004년 Jan: Sig Hecker 직접 영변지역 방문: 현재 북한 핵연료 재처리 시설 높은 수준. 플로토늄을 충분히 축척한 것을 확인 2005년 9월 19일: 북한은 6자회담에서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한국과 함께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개발 시설을 포기한다는 각서에 서명했다. 4일후에 미국 재무성은 방콜델타아시아 은행(BDA)의 북한계좌를 추적하여 동결시키다. ① 미국과 북한는 각자의 주권을 존중한다. ② 미, 한 , 북한은 평화공존을 추구한다. ③ 양국은 관계정상화를 위한 조치를 취한다.   2005년 10월: 부시행정부 6자회담 타결 직후 북한계좌를 추적.   - 북한의 붕괴를 기다리는 것이 왜 위험한가? - 북한의 현금거래를 봉쇄하면 북한은 무기거래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 북한의 계좌추적을 보는 입장: 전반적인 금융제재로 확산되는 효과를 유발하고, 북한의 모든 금융거래를 중지시키는 효과를 가져왔고, 실제적으로도 미재무부는 세계의 모든 은행에게 북한과의 금융거래 중단을 요구했다. 경제개혁 프로그램 자체를 진행하는 것이 어렵다. 미국이 북한의 체제붕괴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면 왜 금융제재를 취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외교부장백남순)  ----> 북한내부의 강경파가  득세할 수 있는 excuse -2005, 9월 19일 6자회담 협정은, 미국에서는 국방부의 매파에 대응하여 국무성의 비둘기파(크리스토퍼 힐 차관보, 국가안전보장이사회의 아시안 담당자 빅터 차)의 승리로 나타났다. - 북한 역시 핵무기를 선호하는 매파와 경제개혁과 핵무기 협상을         선호하는 실용주의파로 나누어져 있다. 클린턴은 실용주의자들에게         주도권을 부여하게 만들었고, 부시는 매파들이 득세하게 만들었다. - 북한의 김계관(북측대표팀단장): 우리가 어떻게 회담을 할 수 있느냐? 미국정부는 북한을 미워하는 사람들과 우리와 진정으로 협상하려는 사람들로 너무 심각하게 나누어져 있다. - 미국이 양자회담을 회피하는 이유는 양자간 회담 자체가 북한을         하나의 정당한 국가로 인정하는 결과를 초래(크리스토퍼 힐의 입장: 양자회담).     - 핵실험으로 대응함으로써 미국의 시도를 봉쇄하려 2006년 10월 15일: 제1차 핵실험: 북한은 사실상의 핵 보유국 지위를 획득 (미국도 이를 묵시적으로 인정)........UN 안보리 결의 1718호로 대북 제재   3. 제3차 북핵위기 (2009년): 2009년 4월 5일 광명성 2호 미사일 발사 (운반체-은하2호) - 3단 추진체가 2단과 함께 해상에 추락하면서 위성체의 궤도 진입        에 실패   - 중국: 에너지와 식량지원 계속할 것을 천명 - ‘98년과 99년의 대미교섭 모델은 전제로 로켓발사를 강행한 것인가?’  ‘김정일 체제이 존망을 걸고 위협과 협상 비즈니스를 강행?’ - 초기에 유엔안보리에서 미·결의안 초안에 대해 중국과 러시아 반대 - 안보리, 대북 의장성명 만장일치 채택 / 추가발사행위 금지 촉구         /6자회담조속 재개 촉구 2009년 4월 15일 북한 6자회담 절대 불참/기존 합의 파기 선언 - 6자회담의 어떤 합의에도 북한을 구속하지 않을 것 - 폐연료봉 재처리 가동: 자위적 핵억제력을 백방으로 강화해 나갈 것/ 경수로 자체 건설 검토 - 4월 22일: 북한당국은 ‘개성공단 특혜 전면재검토’선언(노동자들의 임금 현실화, 토지 사용료 유예기간 10에서 6년으로 단축)   - 4월 27일 : 북한 외무성은 “폐연료봉 재처리 시작”을 공언 /재처리 자위적 핵억제력 강화에 기여한다고 선언 / 경수로 발전소 건설 - 4월 29일: 북한 외무성 ‘외부세력이 후계체제로 권력이양과 관련하여 개입 혹은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한다’고 강력비난/          2009년  5월 25일: 북한 2차 핵실험 강행 (1차핵실험이 3.5강도 비해 2차 핵실험은 4.5에 강도)   2009년  5월 26일:  북한 단거리 지대공 미사일 2발 추가 발사 (미·일 정찰기의 핵실험 정보를 탐지하기 위한 행동을 저지하려는 의도로 추정)         - 【남한-미국의 대응】 2009년 5월 26일:  남한정부 PSI(대량파괴무기 확산방지구상) 전면참여 선언 - UN 안보리 ‘새대북 결의안 작업 착수’/ 안보리 북한 해외금융계좌 동결 검토 (5월 29일)/ 5월 26일 미국은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 - 미국 재무부  추가 대북 금융제재   - 5월 28일 한국 정부 대북정보감시태세 ‘위치콘  3에서 2로격상’ - 중국: 2차 핵실험이후 공동제재에 동참의사 선언 /여전히 6자회담 유지를 선호/ 북한 핵이동북아에 핵 도미노현상을 초래하는 것을 우려   -김정일 일가 계좌동결, 모든 무기 금수대상, 선박 강제수색 현실화 - 중국과 한국의 투자 축소 - 북한의 국외자산동결, 북한 고위 관리들의 여행 제한 및 항공기 운항제한 확대 (중국-러시아도 안보리 대북 제재안에 동의할 것으로 예상) 북한은 왜 핵실험을 강행 했는가? ⓐ 북한 내부을 달래기 위해 - 김정일 체제가 흔들리고 있다. 건강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 후계자 문제가 나오는 것은 위험한 상황이다. - 김정일 체제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 인공위성을 발사했다? - 핵실험 이후 (5월 25일) 북한은 외세가 북한에 개입하거나 안정을 깨트리기 위해 승계문제를 이용하려 한다는 불안감을 드러냈다. - 그러나 대외적으로 국제사회가 이를 인정하지 않자 2차 핵실험까지 강행했다. - 북한이 5월 25일 1967년 주체사상의 기초를 놓은 김일성의 5.25교시가 내려진 날을 택해서  북핵실험을 했다는 사실은 북한 내부를 달래기 위한 내부용 ⓐ-1: 협상용 압박 카드 - 핵보유국이 진정한 전략 목표는 아니다? - 주변국의 핵무장화 (한국, 일본, 대만)와 동북아 국가들 사이의         군비경쟁을 북한이 원하겠는가? - 핵보유는 극적으로 대외협상력 (원조, 북미수교, 대외개방)을 높        이려는 극단적 수단 - 버락 오바마 정부에 대한 실망하고 있고 보다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어 한다.........오바마 정부의 기본 대북 정책 기조는 한반도 평화와 안전을 유지시키는데 있다. 오바마 정부는 북한에게 기다려 달라는 신호를 지속적으로 보냈고 북한은 오바마 출범 이후 50일만에 북한 핵실험을 강행했다. 극단적으로 협상력을 높이려는 행동으로 간주 ⓑ 핵보유국 지위를 확보하고 핵군축협상과 같은 대등한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즉 핵보유국으로 인정 받기 위한 수순  (오바마 행정부 강경대응 예측)          ⓒ 핵보유는 군사비용을 절감하면서 미국과 남한의 군사적 위협에 대응할 수 있는 유일무일한 방안이다. 남한 정부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 20년간의 대북제재 효과는 없었다. ⓑ 중국과 러시아의 적극적인 참여없이는 대북제재는 효과가 없다. ⓒ 한국정부의 PSI 전면 참여는 남한이 미국-북한 과의 관계에서 역할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한다. ⓓ 한국 정부의 PSI 참여가 서해 북방한계선, 군사분계선의 무력시위, 개성공단전면단절, 군사통신선 차단등의 결과를 가져다 주고 있다. ***** 왜 북한은 PSI에 남한이 참여하는 것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가? - PSI는 소위 북한의 무기 상선이었던 ‘서산호 사건 (2002년 12월 9일발생, 예맨행)’을 계기로 부시행정부가 마련한 국제협약이다. - 2003년 5월 31일 부시 행정부는 PSI 기구 공식 출범/ PSI를 출범시킨 계기도 북한이고 PSI 제재의 주대상도 북한이다. / 부시행정부의 맞춤형 대북 봉쇄정책의 일환이다.    ⓔ 한-미 핵우산 명문화 추진 (6월 한미정상회담서) : 동맹국의 적대국의 핵공격을 받을 경우 미국이 핵보복을 대신해 준다. ...........한국의 핵 무장론을 잠재우기 위한 노력 ⓕ 한나라당 보수정권이 국민들의 반북한 정서를 핑계로 긴장조성 기조 정책로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