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돈의 가치가 전도된 세상에 가상 화폐 두루가 \'짱돌\'을 던지고 있다.
\'소유\'와 \'축적\'의 목적이 되어버린 돈은 본래의 기능만 하는 \'교환\'의 수단으로, 돈 때문에 황폐해진 인간관계는 이웃간의 \'정\'이 흐르는 \'공존\'의 살림살이로….
한밭레츠가 3년 남짓 실험한 훈훈하고
감동적인 삶의 모습 살짝 엿보기!
\"결혼하기 전에, 제가 신랑에게 사준 건데요. 나중에 텔레비전 한대가 더 생겨서 레츠에 필요하신 분이 이용하실 수 있게 하려구요. 아주 새것이에요. \'2만원+3만두루\'에 거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오늘 5시까지 한밭레츠 사무실에 가져다놓을 게요. \"
한밭레츠 홈페이지(www.tjlets.or.kr) \'물품공유소\'에 올라와 있는 한 회원의 글이다.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물물교환이나 중고품 판매가 이루어지는 일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니지만, \'3만두루\'라는 말은 퍽 생소하게 다가온다.
그런데 4백여명의 한밭레츠(LETS, Local Exchange & Trading System, 지역교환거래체계)회원들에게 공동체 화폐 \'두루\'를 이용한 \'경제활동\'이 이미 보편화하고 있다.
충남에 사는 김모 회원에게는 장애가 있는 아이가 있다. 김씨는 아이의 치료를 위해 여러 가지 치료법을 동원했지만 별다른 차도가 없었다. 몇 개월 전 그는 우연한 기회에 같은 한밭레츠 회원으로부터 매주 토요일 \'가족풍물강습\'을 받게 됐다. 김씨 가족이 한달 강습료로 강사에게 지불하는 액수는 5만두루+10만원. 풍물강습을 통해 김씨 가족은 그들만의 고유한 가족문화를 갖게 되었고 이런 안정된 분위기 속에서 아이의 상태가 한결 좋아졌다.
대학생인 이은영 회원은 한밭레츠 회원들을 대상으로 컴퓨터 A/S를 제공하고 있다. 그밖에도 한밭레츠의 단체회원인 한 시민단체의 홈페이지도 관리했었다. 이렇게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이씨가 받는 돈은 월 3만두루. 일반 화폐 3만원에 해당하는 액수다. 이씨는 이렇게 번 두루를 이용해 요즘 치과진료를 받고 있으며, 중고컴퓨터 등을 구입하는 데 쓰고 있다.
한밭레츠 회원 가운데에는 도자기를 굽는 부부 회원도 있다. 이들은 회원들을 대상으로 한 \'품앗이 학교\'안에 도예교실을 열어서 강습료를 두루로 받거나, 종종 찾아오는 회원들이나 \'품앗이 만찬\'같은 오프라인 회원행사에서 도자기를 판매 해 두루를 벌고 있다. 이들 또한 이렇게 해서 들어온 두루를 한밭레츠 회원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밥을 사먹거나, 전통매듭, 우리옷 만들기 등의 또 다른 품앗이 학교의 수강료로 쓴다. 만일, 적절하게 쓸 때가 없으면 \'품앗이 통장\'에 저금 해 두었다가 필요할 때 꺼내 쓴다.
개인택시를 모는 한 회원은 택시운전을 하면서 짬짬이 \'퀵 서비스\'아르바이트를 한다. 이때 그가 챙기는 배달료는 5천두루∼1만두루 사이. 그는 이렇게 번 두루로 농산물도 사 먹고, 가족과 함께 병원도 이용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꿈같은 이야기지만, 이 모든 것은 가상화폐 \'두루\'가 한밭레츠 회원들 사이에서 실제 화폐와 똑같은 \'교환가치\'를 지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것도 자본주의 화폐가 지닌 \'소유\'와 \'축적\'의 기능을 경계하고 \'나눔\'과 \'보살핌\'의 의미를 실천하는 \'현대판 품앗이\'에 비유될 수 있다.
\"한밭레츠는 회원들끼리 물품이나 각종 서비스 등을 현금없이 \'두루\'라는 공동체 화폐로 주고받는 대전지역 공동체 운동이에요. 돈으로 일그러진 삶과 황폐해진 인간관계를 \'두루\'를 통해 바로잡아보자는 취지에서 출발했어요.\"
이렇게 한밭레츠 박현이 실장이 지적한 것처럼 두루는 \'돈의 본래 기능\'을 되살리기 위한 하나의 대안운동이다. 두루가 많다고 해서 부동산 투기를 하거나 은행에 저축해서 이자를 바랄 수도 없다. 그래서 혹자는 이런 지역화폐운동을 \'돈 없이도 살기\'라고 정의 내린다. 돈만 있으면 다 되는 세상에서 돈 없이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하나의 전형을 두루가 보여준 셈.
처음에 두루는 원화처럼 실물이 있는 것이 아니라, \'품앗이 통장\'을 통해 두루화폐의 가감이 기록되는 계정의 형태였지만, 올 3월부터는 실제 \'지폐\'를 발행 해 유통될 예정이다.
\'자치\'와 \'공존\'의 문화 정착시키는 지역화폐운동
박현이 실장은 얼마전 대전 용두동에서 일어난 강제철거현장에서 \'두루\'가 지닌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한다.
\"철거과정에서 나이 많은 주민들이 많이 다쳤어요.갈 곳이 마땅치 않아 한 교회에 임시숙소를 마련하고 계셨는데 치료비조차 없었어요. 그때 \'대전의료생활협동조합\'에 가입된 의사, 간호사, 한의사가 와서 무료 진료를 했어요. 한밭레츠를 인연으로 지역 인간관계가 거미줄처럼 얽혀 있어서 공동체의 문제를 \'품앗이\'처럼 해결해 나갈 수 있거든요.\"
대전의료생활협동조합은 한밭레츠 회원들이 이끌어낸 최고의 히트작. 공동체 화폐 두루가 교환을 목적으로 한 경제활동뿐만 아니라, 그것을 뛰어넘어 지방자치시대의 진정한 \'자치\'와
\'공존\'의 문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돈의 노예가 되면 공동체나 환경도 파괴되지만, \'돈이 사람의 얼굴을 하면\' 쓰면 쓸수록 서로 이익이 되는 화폐거래가 된다. 그래서 종종 두루와 같은 지역통화를 \'윈-윈(win-win)시스템\"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세계적으로 한밭레츠와 같은 지역화폐 시스템은 2천개 이상. 가장 대표적인 오스트리아의 레츠공동체 \'블루마운틴\'은 약 2천여명의 회원을 보유하고 있다. 또 미국의 레츠공동체 \'타임달러\'는 미국 전역에 2백여개의 단체를 거느리고 5만여명의 회원이 참여한다. 스위스의 협동조합 형태인 \'WIR\'은행도 대표적인 지역공동체다.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지역통화운동의 미래를 박현이 실장은 이렇게 내다본다. \"작은 소단위 지역을 중심으로 지역통화운동이 활성화되면 IMF와 같은 외부의 위험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어요. 실업, 육아, 교육, 의료, 복지 등으로 연계성의 범위가 더욱 넓어지면 그만큼 지역공동체 외부로부터 가해지는 여러 위험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탄탄한 안전망이 구축되는 거죠.\"
21세기형 \'품앗이\'와 \'두레\'를 실험하고 있는 한밭레츠. 인간과 돈의 가치가 전도된 세상에서 \'두루두루 여러 사람에게 도움이 되라\'는 뜻으로 탄생한 \'두루\'가 두루두루 퍼뜨릴 수 있는 따뜻한 삶의 온기가 더욱 기다려진다.
* 참여자치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7-06-18 15: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