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을 사람의 만남이 아름다운 도시로,
열린시대 새 지방자치를 만들어갑니다.
대흥동 4거리에 위치한 카페 ‘다시서는 봄’에서 유병규(44) 회원을 만났다. 이 카페는 1989년에 ‘해방공간’으로 문을 연 이후 민주화운동 세력의 집합장소로 유명세를 치룬 장소였다. 그러나 지금은 예전의 영광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그 역시 80년대 기독교 사회운동의 최일선에서 활동했으며, 현재는 대전지역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의 공동대표로 일하고 있다. ○ 카페를 왜 인수했나요? “누구든지 자연스럽게 찾아올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합니다. 노래도 하고 토론도 하고 그냥 술만 마셔도 되고...” ○ 이전의 사람들은 적자운용으로 문을 닫은 것으로 아는데? “예, 맞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합니다. 전 대전일보 기자였던 이훈웅씨가 합류한 이유도 다양한 문화아이템을 개발하기 위함이죠. 아마추어를 위한 공간으로 전시회, 시낭송 발표회 등등의 일들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 흑자운영이 가능할까요? “물론 지금은 적자입니다. 그러나, 6개월 이후에 흑자로 돌아설 것입니다. 문화카페에 대한 다양한 욕구가 분출되고 있고, 저 또한 자신이 있습니다” 유병규 회원은 대전에서 처음으로 이벤트회사를 설립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1993년 ‘아리랑이벤트’를 창립해 지금까지 직접 운영을 하고 있다. 크고 작은 행사진행을 많이 하지만, 특히 장애인 체육대회, 노인대학행사, 소외된 계층을 위한 무료행사 등등을 많이 한다. “돈 안되는 일만 하죠?”라며 자족의 웃음을 보였다. 그에게는 두 명의 딸이 있다. 딸들의 이름이 참 재밌다. 첫째는 화연(化然) 뜻은 ‘될때로 되라, 즉 자연스럽게 되라’이다. 둘째는 사효. 뜻은 해탈이다(‘효’자를 일반옥편에서는 찾을 수가 없단다). 딸들의 이름뿐만이 아니라 그의 자녀교육 또한 각별하다. 그의 거실에는 TV, 소파 등이 없고 오로지 책만 있다. 학원도 안보내고, 학습지도 구독하지 않는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인위적인 것을 배제하고 자연스러움을 강조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이들은 마을 앞에 있는 논에서 나물을 캐기도 하고 엄마아빠와 월1회는 꼭 산에 오른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많이 가져야 하는데, 바깥일이 많다 보니 그러지 못한다”라는 유병규 회원의 새로운 도전 문화카페 <다시서는 봄>의 성공을 기대해본다. [문화카페 다시서는봄 : 221-5884] * 참여자치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7-06-18 15: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