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재대 일본학과 4학년 윤재군(40) 신입회원 - 배재대학교 일본학과 4학년, 잉글리쉬 21세기 외국어학원 실장. 이 두 가지가 현재 윤재군(40)씨를 나타내는 공식 직함이다. 짧지 않은 시간에 들은 그의 인생행로는 참 화려하다. 대입 원서비가 없어 시험도 치르지 못하고 고3 겨울에 학교를 뛰쳐나와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한 곳이 철강공장. 몇 달하다 너무 힘들어 그만두고 서울로 상경, 신발공장에 취직, 그곳에서 공장장의 눈에 띄어 사무직으로 근무하던 중 선배의 부탁을 거절 못해 처리해주다 해고된 뒤 경기도 광주에 민물횟집에 취직, 그 때부터 칼잡이(?)를 시작했다. 밤낮으로 일한 결과 27살에 작은 횟집을 개업, 갑자기 밀려드는 손님이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인산인해를 이뤄 적지 않은 돈을 벌어들였다. 잘 갖고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한 쪽의 시린 가슴을 채우지 못해 술과 도박으로 세월을 보내다 어느 날 “집에 쌀이 떨어졌다”는 부인의 충격적인 얘길 듣고 정신이 번쩍 들었단다. 수완 좋게(?) 몇 천을 빌려 시작한 노래방이 시작 두 달 만에 에 나오는 바람에 정나미 떨어져 포기하고 미용재료 사업을 시작했으나 IMF로 말아먹고... 단 돈 2만원을 들고 대전에 올라와 일하던 중 지금 학원 원장을 만나 학원에서 아이들 실어 나르는 일 먼저 시작하였다. 열심히 일했고 매일 새벽 4시까지 일어공부도 하였다. 몸은 고되었으나 마음만은 행복했고 그 결과 8개월 만에 일본어 능력시험 1급에 붙었고 지금까지의 배재대학 일본학과의 모든 성적은 올 A+이다. 그의 해맑고 환한 미소 어디에 이런 어려움과 막막함이 녹아있었던 것일까? 많은 고난을 겪은 사람만이 찬란한 미소를 지을 수 있는 특권이 있나보다. 지금까지 겪은 일 중 가장 인상에 남는 일이 무언지 질문해보았다. 얼마 전 김양주 교수(배재대 일본학과)가 주관한 <제1회 유스하라 지역대학>에서 <요사꼬이 오도리 마츠리>에 참가해 거리에서 춤춘 것이란다. 실제로 그는 이틀 연속 오도리에 참가한 유일한 한국인이었으며 그로 인해 <고치신문>에 기사로 실리기도 해 유스하라에선 “윤 사마”로 통했다.^^ 취미는 등산, 특기는 가야금 연주다. 또한 그가 흥얼거리는 전통 민요는 한 번 들어본 사람이라면 쉽게 잊기가 힘들만큼 구성지다. (재밌는 사실은 노래방에서 부르는 어떤 노래든 그가 부르면 트롯이 된다고^^) 현재 사랑스러운 아내와 두 아들과 함께 내동에서 행복한 가정을 꾸리며 사는 그의 장래계획은 내년에 대학원에 진학한 뒤 철학자이자 시인인 마쯔오 바쇼가 갔던 길 따라 사는 것. 인터뷰 중간중간 어디에도 필자가 허접한 농담이라도 풀어내놓을 약간의 틈도 없을 만큼 진지한 인터뷰를 해준 신입회원 윤재군씨! [참연]의 새 식구가 된 것을 진심으로 환영하며 그의 열정과 삶을 사랑하는 태도가 우리 식구들에게도 전해지길 바라며 학원 문을 나섰다. 그가 중간에 했던 말이 아직도 내 귀에 쟁쟁하다. “어느 외국인 엄마가 한 말입니다. 죽는 날은 하루뿐이다. 그 하루를 위해 고통스럽게 고민할 필요는 없다. 떠나고 싶을 때 떠나라. 그리고 버릴 수 있는 자만이 떠날 수 있다” 취재․글 | 허남주 회원기자, 동의보감21한얼한방화장품대전지사장 uki103@hanmail.net /011-9816-27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