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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사업

김종현 회원님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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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님 소개 부탁드립니다. 제 이름은 김종현이고 아들은 넷이고 손자는 12이예요. 따로하는 일은 없고 대전산내학살유족회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와 어떤 인연으로 회원으로 가입을 하시게 되셨는지요 지난 2000년도 4월쯤에 당시에 산내학살사건으로 제가 직접 기독교연합봉사회관에 위치한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에 찾아가 복진국이라는 활동가를 알게되었고 그때 산내유족회가 생겨나게 되었지요. 처음엔 정말 적은 수의 사람들이 활동했지만 작년에 회원찾기운동을 해서 많아졌지요 지금은 전국 각지에 다 있어요. 그래도 200명이 안돼요. 활동이 활발하지 못한 것이 아쉽지만 사람들이 연로하고 다 떨어져 있으니 하는 수 없지요. -정확히 대전 산내학살 사건과 대전산내유족회에 대해서 설명해주실수 있는지요. 사실 이런 단체 활동해본적도 없고, 처음으로 조직해서 활동하는겁니다. 대전산내에서 당시 산내에서 7000여명이 넘는 민간인학살이 자행되었어요. 그런데 그렇게 된거 아직도 모르는 사람도 있고, 숨기는 사람도 있고, 아니면 가족이 다 몰살 당해서 찾는 이가 없는 것도 있고...... 오늘만해도 이제껏 이런모임을 모르고 있다가 늦게 알게돼서 우리한테 연락이 왔어요. 그것도 친구 통해서요. 여튼간에 지금도 발굴작업을 하고 있어요. 나도 그래요. 제가 어렸을 때만해도 정말 우리아버지가 정말 빨갱이고 나쁜 사람이어서 그렇게 된 건줄 알고 있었어요. 나라 교육이 그랬단말이죠. 그래서 나 젊었을 땐 우리 아버지 얘기 해본 적이 없어요. 그런데 알고보니 그게 아니더란말이예요. 우리아버지는 순수 민간인이었고, 민족을 생각하는 그런 사람인데 그렇게 대전교도소에 잡혀 들어가서 미결수로 있다가 억울한 죽음을 맞게 된거지. 난 당시에 알지도 못했어요. 그런데 친척들이 알려줘서 우리아버지가 7월 5일에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게되었어요. 그런데 미군 쪽 문서를 보니까 7월2일부터 학살이 했다고 되어 있어서 7월 1일에 위령제를 모시게 되었어요. 계속 실외에서 했는데, 장소가 학교에서 지내다보니 일요일만 지냈어요. 그래서 9번 위령제를 지낸 중에 하루만 날짜가 맞고 다 틀렸어요. 그래도 올해부터는 실내에서 지내기로 해서 얼마나 좋은 줄 몰라요. 하여튼 주로유가족 찾아서 대신 신고해주고 위패도 모셔서 위령제도 같이 지내고 그러고 있어요.   -사회에서 받으신 차별이 있으셨나요? 6.25이후에 빨갱이 집안이라고 우리 할아버지,할머니를 비롯해서 삼촌들,나까지 주재에 끌려가서 두들겨맞고, 공무원시험도 못보고, 아무것도 못했어요. 여러 가지 차별 많이 받았어요. 당시에는 몰랐는데 연좌제때문인것을 군대에서 처음 알게되었어요. 우리유족회 회원들이 다 그래요. 다 억울하게 죽음을 맞이하고 남은 가족들은 사회에서 상처받고 그런 가족사 다 숨기고 살고. 나를 이렇게 받아주지 않는 나라를 어떻게 조국이라고 할 수 있나 싶어서 그 이후로는 나라에서 발급하는 자격증같은것은 딸 생각도 아예 안했어요. 그래도 후에 세상이 좋아져서 연좌제가 없어지니 살만은 해졌죠. 그래도 이후에 당시 그 시대 정권이 또 등장할지 모르니 아직도 쉬쉬하는 가족들이 많죠. 지금 정권도 좀 분위기가 그러니까. 심지어는 대전이나 동구쪽 기관에 있는 사람은 관심도 없잖아요. -앞으로 바람은 무엇인가요. 진실위원회에서 결정문이 완전히 나온다면 공식적인 사과와 명예회복을 바라는거죠. 그리고 우리 유족회가 많이 힘드니까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가 많이 도와줘서 해원했음 하는거죠. 대한민국의 역사바로잡기도 제대로 되었음해요. 그리고 앞으로 과거사재단이 생기면 위령사업, 추모과 설립과 함께 유가족생계보상대책등을 잘 세원야하는데 잘 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하늘에서 허락하는 날까지 열심히 하고 잘 되리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