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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민명수 선생님을 추모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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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강(회원, 대한기독교서회 사장)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고린도전서 15장 42-49절」 평범했지만 결코 평범치 아니했던, 한 비범한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려 합니다. 시인 한용운은 “아아 님은 갔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님을 보내지 아니했습니다.”라고 노래했던 것처럼 우리는 아직 민명수 선생님을 보내지 아니했습니다. 민명수 선생님이 한사람 한사람과 만나서 나누었던, 소중하고 아름다운 기억을 가지고 영원을 향해 가셨듯, 우리 또한 민 선생님과 나누었던 뜨거운 사랑과 추억을 가지고 살아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민명수 선생님은 소박한 사람이었습니다. 병석에 눕기 전에는, 아니 병석에 누워 있으면서도 청춘남녀의 사랑 이야기가 나오는 드라마를 즐겨 보며, 주인공과 함께 울고 웃고 했던, 만년 소녀 같은 심성을 가진 분이셨습니다. 교사로 인생을 시작하여, 한 가정을 이루어 따님 다섯을 낳아 키우며 어머니로 살아가시다가, 마침내는 시민사회의 일꾼들을 사랑으로, 사랑으로 품어주신 큰 가슴의 어머니가 되셨습니다. 꽃을 좋아해서 끝내는 아름다운 꽃을 꽃보다 더 아름답게 그려냈던 화가이기도 했습니다. 늘 남보다 한 발짝 먼저 길을 만들어 가면서도, 그 만들어진 길을 성큼 먼저 가시지 아니하고 다른 이들을 먼저 가게 하시고서는 뒷전에서 기뻐하셨던 수줍고 여릿한 분이셨습니다. 제가 고인을 처음 만난 건, 아니 우리가 고인과 만나게 된 것은 전두환 군부독재가 기승을 떨치던 1980년대 중반의 시기였습니다. 주부아카데미 14주 과정을 마지막까지 참석하셨던 30여명의 참가자 중의 한 분이셨습니다. 14주 과정에서 민 선생님은 눈에 잘 띄지 않는데, 마지막 1박 2일의 숙박 수업에서 마침내 그분의 숨겨진 진면목을 드러냈습니다. 최열, 이우재, 이현숙, 문동환 이런 분들을 만나면서 고인은 숨겨졌던 보석처럼 얼굴을 드러냈습니다. 고인은 숨겨져 있던 찬란한 보석이었습니다. 자신의 빛을 드러낸 고인은, 곧바로 먹고사는 일의 중요성을 깨닫고서는 먹거리 문제 해결을 위해 고심하다 끝내 한밭생협을 시작하셨습니다. 그리고 대전환경운동연합 출발의 밑거름이 되셨습니다. 이후 전개된 고인의 질풍노도와 같은 삶은 다 아시니 새삼 재론할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대전환경운동연합이, 그리고 여러 대전시민사회단체가 그 분의 품안에서 자라고 단단해지고 뿌리를 내렸습니다. 제가 빈들교회에서 목회할 때, 같은 교회 교인은 아니지만 제 목회에 힘을 더해주셨던 고마운 인연이 있습니다. 4년 전 제가 다시 대전에서 작은 교회를 시작할 때는 교인으로 함께 참석하신 이후, 때론 사업실패 후 방황하는 사람들에게, 때로는 결손가정으로 세상과 문을 닫고 홀로 눈물짓는 이들을 찾아 함께 보듬고 어루만져오면서, 제가 새로운 목회를 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셨습니다. 10여 명 교우들과 함께 10여 일 동유럽을 여행하면서 나누었던 그 찬란한 추억들은 우리가 삶에 시들해질 때마다, 지칠 때마다 우리를 다시 불러일으켜 세우는 소중한 삶의 자산이 되었습니다. 또한 우리는 그분과 함께 새로운 꿈을, 새 공동체의 꿈을 꾸었습니다. 그런데 아직 그 꿈을 이루지도 못한, 아니 아직 시작하지도 못한 이때에 먼저 가시니 그 아쉬움이야 말로 어찌 다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시인 한용운은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된다고 했습니다. 우리 눈에 보이는 것, 우리 손에 만져지는 것은 이 세상에 실재하는 무한한 것들의 아직 작은 부분인 것을 압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성경말씀처럼 사도 바울은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삼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난다고 합니다.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난다고 합니다.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난다고 합니다.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고인이 영광스러운 것으로, 강한 것으로,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날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천년 전에 스스로를 드러내 보이셨습니다. 나사렛 변방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삼십 여년 짧은 삶을 살다간 예수라는 참사람을 통해 당신을 선명하게 드러내셨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오늘 민명수라는 한 평범한 보통 사람의 보통 삶을 통해 당신을 여기 모든 사람에게 확연히 드러내셨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고인은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내 보여준 하나님의 거울이었다고 저는 굳게 믿습니다. 그분은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이제 우리는 잠시 이별의 슬픔을 거두고 다시 만날 소망 가운데 고인을 보내려 합니다. 그너라 우리는 결코 그분을 보내지 아니하렴니다. 이 땅에서 우리 삶이 다하기 전까지 저와 유족들 그리고 그분을 기억하는 모든 분들은 그 분을 보내지 아니할 것입니다. 우리의 기억과 삶이 이어지는 한 그분은 우리 가운데, 우리와 함께 있습니다. 우리의 삶은 그분의 삶이 될 것입니다. 그분과 우리의 삶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의 빛나도록 아름다운 삶이 될 것입니다. 작은 겨자씨 하나가 자라 큰 나무가 되고 그 안에 온갖 새들이 둥지를 틀듯, 고인은 하나님의 품으로 가셨지만 그분이 만드신 큰 나무 그늘 아래서 어떤 이들은 쉼을, 어떤 이들은 다시 새 싹을 키울 새로운 힘을 얻을 것입니다. 그분은 그렇게 우리 가운데 계십니다. 우리는 다시 만날 소망 가운데 오늘 그분을 떠나보냅니다. 그러나 우리는 끝내 그분을 떠나보내지 아니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우리는 함께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