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을 사람의 만남이 아름다운 도시로,
열린시대 새 지방자치를 만들어갑니다.
취재 및 글 : 고제열 회보편집위원장 오랫동안 우리단체 사무처장으로 활동을 하다가 퇴직한 금홍섭 전 사무처장은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를 우리가 지금 매일 사용하는 휴대전화기 같다고 얘기합니다. 우리의 일상 속에 없어서는 안 되는 소중한 단체이기 때문이랍니다. 금홍섭 전 사무처장과의 인터뷰 지금 시작합니다. 고제열 : 오랫동안 일했던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를 그만 둔 지금, 어떻게 지내시나요? 금홍섭 : 힐링의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1994년도 환경운동연합 간사로 시작한 이래 21년의 시민운동을 그만두고 잠시가 될 지 아니면 더 긴 시간이 될지는 저도 잘 모르겠으나, 힐링의 시간을 가지고 있답니다. 처갓집 식구들과 공동경작을 하고 있는 이름도 생소한 아로니아(블랙초크베리) 농사를 3년째 하고 있는데, 지난 7, 8월 1,500kg를 첫 수확하는 기쁨도 봤으며, 지난 9월부터는 옛 충남도청에 마련된 대전시민대학에서 ‘유화과정’과 ‘프레지 기초과정’도 다니면서 새로운 경험도 하고 있답니다. 특히, 고등학교 1학년 때 잠시 접었던 ‘화가’라는 꿈을 30년이 지난 지금 다시 할 수 있다는 기쁨에 매주 토요일이 기다려지고 흥분되기까지 합니다. 현재 한남대학교에서 박사과정 3학기를 열심히 다니고 있고,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참여하지 못했던 국민권익위원회 청렴강사 활동을 지난 10월에만 6~7회 정도 할 만큼 부지런히 하고 있습니다. “백수가 과로사 한다”는 말이 있지요,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를 그만두고 나서 더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고제열 : 오랫동안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 = 금홍섭\' 이라는 등식이 성립되었는데, 동의 하시나요? 또한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를 짧게 소개 하신다면요? 금홍섭 : 저를 중심으로는 그렇게 생각할 수 있으나, 이런 공개된 곳에서 질문을 받을 때는 결코 동의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라는 단체는 금홍섭에게는 모든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곳에서 인생을 배웠고, 사랑을 가졌으며, 지역사회에 대한 책임감과 공공활동가로서의 자세를 깨우쳤으니 말이죠.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란? 요즘 식으로 해석하면 ‘휴대전화기’다 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현대사회에서 사람들에게 휴대전화기는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생활용품이나 다름없지요. 그런 것처럼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도 150만 대전 시민들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1,300여명의 회원들의 이해와 요구뿐만 아니라, 150만 시민들의 아픔과 과제를 함께 할 수밖에 없는 운명공동체와 같은 존재랄까요. 듣고 싶고 말하고 싶고, 보내고 싶고 받고 싶고, 활용하고 싶고 어떨 때는 보고 싶은 존재로 길이 길이 남았으면 하는 바람도 있답니다. 고제열 : 과거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와는 어떤 경유로 인연을 맺게 되었나요? 금홍섭 : 대학 졸업을 앞둔 1993년 겨울 어느 날, 한남대학교 중앙도서관 로비에서 한겨레신문을 보고 있는데, 환경운동연합 공채채용 공고를 보게 되어 그날로 원서를 내고 며칠 후 서울 환경운동연합 면접시험에 응시하러 갔다가 대전에도 환경운동연합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다음해인 1994년 2월 어느 날부터 대전환경연합 간사로 활동하게 된 것이 시민운동의 첫 걸음 이었답니다. 하지만, 사회과학도 출신인 저에게 CO니, 탁도니 하는 용어들도 너무나 생소했고, 당시 같이 활동했던 김광식, 김종남 선배님들의 까칠함에 적응(?)을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1995년 첫 지방자치제 선거를 대응한 시민운동조직단체를 준비하고 있던 몇몇 선배들의 권유로 1995년 3월부터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 사무실로 첫 출근한 것이 길고도 긴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와 인연을 맺게 된 출발선이었습니다. 고제열 : 오랫동안 활동하시면서 많은 일들이 기억 나실 텐데, 그 중 몇 가지만 소개 하신다면요? 금홍섭 : 많은 기억들이 떠오릅니다. 먼저 내 인생을 바꾸었던 김진화를 만났던 기억, 솔직히 만났던 기억은 별로 생각나지 않고 이제는 말할 수 있는데, 같은 사무실에 출퇴근하면서 결혼 전에 비밀 데이트를 했던 기억이 저에겐 가장 잊지 못 할 기억 중에 하나이겠네요. 단체 활동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은 2000년 총선시민연대 활동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당시에는 책임자가 아닌 실무자로 참여 했지만, 총선시민연대의 낙천낙선운동은 뜨거운 정치개혁의 국민적 열망을 모아내는데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가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며, 지역사회 개혁운동의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고 자평하고 싶습니다. 이외에도 특별히 기억에 남는 활동으로 행정 정보공개운동이나 2003년 경륜장 반대운동도 기억나고요. 또 부당한 아파트 전기료 인하운동의 경우 실제로 한국전력 약관개정을 통해 1가구당 2,200원 정도의 전기료를 인하시키는 성과도 각인이 깊습니다. 이런 활동은 아파트에 살고 있는 대전 시민 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들에게 혜택을 드린 셈이나 마찬가지죠. 이외에도 저에겐 도시교통 개혁운동을 빼 놓을 수 없습니다. 1990년대 말부터 요구했던 시내버스 무료환승시스템 도입요구나 중앙버스전용차로제 도입 주장의 경우 대전 시내버스의 서비스를 획기적으로 개선시키는데도 선도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으며, 최근에 논란이 되었던 도시철도 2호선 논란에서 보듯, 교통분야에 있어서만큼은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 활동과 영향력을 결코 무시할 수 없다고 봅니다. 고제열 : 활동을 하시면서 \'대전의 대중교통 전문가하면 금홍섭\'이라 할 수 있는데, 어떠한 경유로 대중교통에 집중할 수 있었나요? 금홍섭 : 아마도 제가 다녔던 학과가 ‘지역개발학과’였는데, 아주 깊이 있게 공부할 기회는 없었어도, 지역개발이나 도시계획에 대한 거시적 이해뿐만이 아니라, 대중교통을 비롯하여 도시교통 전반에 대한 공부를 했던 것이 대중교통운동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게 된 첫 번째 이유였던 것 같습니다. 특히, 대학재학중에 활동했던 동아리 이름이 ‘모듬살이’였는데 당시 대학을 다녔던 학생들이 주로 관심 가졌던 정치, 경제, 사회의 주제뿐만이 아니라, 도시문제나 농촌농민문제에 대한 관련 서적을 집중적으로 읽고 토론하면서 지역사회나 도시문제를 거시적으로 볼 수 있었던 것도 제가 도시교통운동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였다고 생각됩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대전MBC 간판 프로그램이었던 ‘푸른신호등’과 교통방송국에서 수 년 동안 고정출연하면서 교통정보를 다루었던 것도 지속적으로 교통문제에 대해 공부할 수 있었던 절호의 기회였답니다. 특히 대전지방경찰청 교통규제심의위원 활동이나 대전광역시 대중교통위원 활동은 지역의 교통현안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대안모색을 할 수 밖에 없어, 스스로 전공서적과 보고서, 관련 논문을 뒤적이며 공부할 수 있었던 토대가 되기도 했습니다. 고제열 : 대중교통하면 지금의 가장 큰 이슈인 도시철도 2호선 방식인데, 여기에 대한 생각은 어떠한가요? 금홍섭 : 아무리 잘못된 정책결정도 정책결정 과정이 합리적이고 대전 시민들 다수가 동의를 한다면, 안타깝겠지만 저는 그 결정을 동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대전시가 도시철도 2호선 건설방식을 노면 또는 지상고가로 정책결정을 한다면 그 어느 것도 동의할 수 없습니다. 한두 푼 들어가는 사업도 아니고, 자칫 잘못 정책결정을 하면, 결국 150만 대전 시민들이 모든 피해를 보게 되는 사업임에도 불구하고, 대전시는 그동안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는 겁니다. 지난달에 대전시국감이 있었지요. 그런데 그날 평소 보기 드문 장면이 나왔습니다. 보통 국감장에서 여야 국회의원들간 치고 박고 싸우는 게 보통인데, 이날은 도시철도 2호선 관련 여야 국회의원들이 하나같이 ‘심사숙고 해 달라’, ‘면밀히 검토한 뒤 추진할 것’ 등 대전시장에게 신신 당부를 했다고 합니다. 특히 용인경전철로 문제가 되었던 지역구 국회의원, 대구3호선 해당 지역구 국회의원도 건설비용뿐만 아니라, 유지관리비용에 대한 면밀한 검토를 통해 자신들의 오류를 범하지 말 것을 간곡하게 호소했다고 합니다. 가깝게는 지난 2011년도부터 논란이 되고 있는 도시철도 2호선 관련 <건설비용 및 유지관리비용에 대한 검토>나 <기종별 수요분석 및 환승비교분석> 조차도 대전시는 하지 않고 있답니다. 저는 이와 관련 이미 2011년도부터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는데, 아직까지도 대전시는 외면하고 있습니다. 고제열 : 지상철 방식(트램방식), 지상고가방식 두 가지가 팽팽한 가운데, 소수 의견으로 백지화 및 전면재검토의 의견도 있은 것 같습니다. 여기에 대한 의견은요? 금홍섭 : 이미 오래전부터 밝혀왔지만, 저는 그런 소수의견에 동의하고 있습니다. 소수의견이지만 너무나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제가 학교 다닐 때 배운 것은 도심내 경전철을 건설할시 최소한 대중교통 수요가 12,000명은 되어야 한다고 배웠지만, 대전시가 추진하는 2호선 구간의 대중교통 수요는 시간당 1,000대 내외 밖에 되지 않고 있습니다. 대중교통 수요도 없는 곳에 막대한 건설비를 투입해서 도시철도를 건설한들, 결국 시민들은 엄청난 적자만 떠안게 되는 배경이 됩니다. 대전이 대중교통 전국 꼴찌 도시이자, 승용차 중심의 도시라는 사실을 아십니까? 그런데 문제는 현재 자동차 보급률이 인구 1천명당 400대 수준이지만, 선진국처럼 자동차 보급률은 인구1천명당 7~800대 수준으로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며, 대중교통 이용객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교통약자 비율이 통계청 기준으로 2012년 32% 수준에서 2030년에는 55% 수준으로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을 감안해보면, 더 이상 지금처럼 대중교통을 방치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있습니다. 특히, 2007년 도시철도 1호선을 도입한 이후에도 대전시 예측과 달리 대중교통 수송분담율이 약 4% 감소한 핵심 이유는 시내버스 수송분담율이 급속도로 줄어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저렴한 비용으로 단기간에 대중교통 수요를 끌어올 수 있는 방법은 장기적으로 도시철도도 도입해야겠지만 당장은 서울시처럼 1,000여대의 시내버스를 활용한 대중교통 활성화 방안이 최선일 수 있지요. 그런 점에서 도시철도 2호선 도입이 목적이 아닌 대중교통과 대전 도시교통을 살리는 것이 근본 목적이라면, 대전시는 도시철도 2호선에 대한 반쪽자리 결정이 아니라, 전면적인 재검토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고제열 :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 활동이 대전지역에 미친 영향은 어느 정도였을까요? 금홍섭 : 많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자평하고 싶습니다.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 활동은 지방자치 역사와 함께 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그만큼 지방 정부영역의 정치, 사회, 경제, 행정 등 거의 모든 분야에 대한 견제와 감시자 역할을 그동안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가 해왔으니까요. 물론, 역량 부족 등 많은 한계도 있었지만, 150만 대전 시민들의 이해와 요구를 대변하고, 올바른 지방자치 실현이라는 보편적 가치와 목적에 부합하는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의 활동은 그 자체만으로도 많은 성과와 영향을 발휘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과에 대해 아무리 자평한들 지난 과거에 지나지 않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스스로 답하고 준비하는 것이 더더욱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혹자는 “시민운동의 시대는 지나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NGO가 우리사회를 주도하던 시대는 지나갔으나 NGO가 담당해야 할 과제와 역할은 고스란히 남아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시민운동의 위기는 시민운동 스스로 초래한 위기의 문제이지 결코 시민운동이 해야 할 역할이 없어진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런 점에서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가 조직 내외부의 위기를 진단하고 문제해결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한다면,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 스스로 진단하고 있는 문제점은 해결 가능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고제열 : 처음 활동을 시작할 당시와 퇴사한 지금의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의 모습은 많이 변화 했을 텐데요, 어떤 부분들인가요? 금홍섭 : 많은 변화가 있었지요. 사무실은 1995년도 그대로 문화동 기독교연합봉사회관이지만, 규모도 달라졌고 활동내용과 활동방식도 많이 달라졌답니다. 무엇보다 가장 많이 변한 것은 사람이 변했습니다. 1995년 처음 시작했던 시민운동 1세대(활동가, 회원 등)는 거의 남아있지 않습니다. 세대교체라는 거대한 흐름은 그 무엇으로도 막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고제열 :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 운영 방식과 관련 본인이 바꾸고자 애를 썼지만, 변화를 이끌어내기 어려웠던 부분은 없나요? 금홍섭 : 어떤 조직이든 그렇겠지만, 저도 조직외의 업무보다 조직 내의 문제를 접근할 때가 가장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사람의 문제이고 더 나아가서 재정의 문제였기 때문이지 않을까란 생각이 듭니다. 저는 주로 토론하고 협력하는 거버넌스형 조직운영을 통해 사람의 문제와 돈의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했습니다만, 결코 쉽지만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가 풀어야 할 숙제 중에 가장 큰 숙제로 남아있는 것이 사람과 돈 문제 아닐까요? 고제열 : 지금 활동하고 있는 후배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요? 금홍섭 : 우리 활동가들에게는 미안하다는 말 밖에는... 고제열 :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의 의장단 및 임원진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요? 금홍섭 : 잘하고 계셔 특별히 드릴 말씀 없습니다. 다만, 제가 활동가와 실무책임자로 일할 때 가장 고마웠던 임원은 회의 때 결석하지 않고, 정말 중요한 의사결정 및 논란이 되는 의사결정시 고뇌하고 있는 활동가들의 심정에서 판단하고 동의해주셨을 때 가장 고마웠답니다. 고제열 :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질문해도 될까요? 금홍섭 : 가장 어려운 질문을 가장 마지막에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솔직히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지금 이대로가 너무나 좋은데, 아무튼 더 시간을 가지고 깊은 고민을 해 보겠습니다. 경북 안동이 고향이 그는 대학에 진학하면서 대전과 인연을 맺었고, 이제는 당당히 대전히 고향이라고 말한다. 가족으로는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에서 만나 결혼한 부인 김진화(48)씨와 아들 시훈(14)을 두고 있으며, 지금 월평동에 거주하고 있다. 요즘 자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그가 지금 읽고 있는 책은 ‘일상적 공공철학하기’이고, 밭과 집안일 그리고 대학원 수업을 들으며 또 다른 일을 준비하고 있다. 그의 다음 일을 기대해본다. ** 이 인터뷰는 도시철도 2호선 기종 발표 전인 지난 10월에 진행된 점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