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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일(장애인복지신문 기자) “가려운 곳을 앞으로도 계속 긁어주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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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및 글 : 고제열(회보편집위원장) “사회운동하다가 생각이 같은 사람들이 모여 시민단체를 만들었는데, 벌써 20년이 되었네요. 20년이 지난 지금도 마음은 여전히 한 가지입니다. 시민들이 가려워하는 곳을 긁어주어야 한다는 것”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의 창립 때부터 함께 하고 있는 정진일(56)회원은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의 산증인이라 할 수 있는 그는 지금 장애인복지신문의 대전충남 지사장을 맡아 장애인의 복지를 위한 현장을 분주히 누비고 있다. 충북 옥천이 고향인 그는 3살 때 소아마비균에 의해 양쪽다리의 마비를 앓았다. 그로인해 특수학교에서 교육을 받아야만 했고, 교육을 위해 대전으로 이사를 했다. 학교를 졸업하고 전북 익산의 귀금속제조업에서 근무를 몇 년 하다가 대전장로교회청년연합회의 회장을 맡으면서 대전에서 기독운동을 시작했다. 이후 전국기독청년협의회 부회장을 맡으면서 시민참여의식도 더 길러졌다. 이후 장애인운동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1989년 4월 7일 장애인복지신문을 창간하고 지금까지 26년간 활동을 하고 있는 중이다. “목발을 집고 데모에 참여한 이유는 개인이 사회를 독점하지 말고, 시민이 사회의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어요. 그때는 참으로 열심히 한 것 같아요, 데모 있는 날에는 제 집 앞에 담당 경찰이 와서 못나가게 저를 막기도 했으니까요”라고 과거를 회상하는 그는 “장애인의 복지향상을 위해 그 누구보다 장애인들이 먼저 마음의 문을 열고 적극적으로 행동할 때 가능하다고 봅니다. 그래야 시민들도 동참을 하거든요”라며 장애인이 먼저 활동할 것을 주문했다.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의 복지․인권운동본부장을 맡아 활동했던 그는 “장애인단체가 문제를 제기하면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 등이 함께 연대를 해 주었기 때문에 장애인복지가 점점 좋아지고 있다고 봅니다”라며 “민선 단체장 시대가 되면서 많은 후보들이 우리의 요구를 공약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발전이라면 발전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1998년 IMF시대에 공무원 사회에서 사회복지공무원을 구조 조정한다는 계획이 있었는데, 장애인단체가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와 손을 잡고 구조조정을 막은 일이 있기도 합니다”라고 일화를 소개했다. 그는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에 바라는 점으로 “시민의 가려운 부분을 계속 긁어주고, 그 어떠한 권력에 굴하지 않고, 우리 사회의 잘못된 점에 대해 과감히 외쳐주는 단체가 되길 여전히 바란다”고 말하면서 시민들에게도 “장애인시설이 자신의 동네에 설치되는 것을 막는 님비현상을 극복해 주었으면 합니다.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는데 너무 자기만 보는 근시안적 사고가 없길 바랍니다”라고 요구했다. 그는 이어 “시민운동단체는 언론보다 더 강해야 합니다. 그래야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으니까요”라며 “시민들도 시민단체를 비판하지만 말고 회원가입도 하고 회비도 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라고 덧붙였다. 그에게 3월과 4월은 1년 중 가장 바쁜 날들이다. 장애인복지신문의 창간 기념일과 장애인의 날이 있기 때문이다. 지원금을 일체 받지 않은 신문의 정상적인 운영을 위해 축하광고를 받아야 하는 일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는 마지막으로 “내가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계속 활동을 할 것입니다.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에 참여하고 활동했기 때문에 타성에 젖지 않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참 고마운 단체입니다”라고 밝혔다. 그의 가족으로 안양노회 사무국장으로 근무하는 부인 안혜숙(54)과 고교 3년, 중학교 3년인 두 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