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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찬 회원(상임의장, 목원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권력감시운동을 더 전문화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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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및 글 : 고제열(회보편집위원장) 고등학교 학생회장을 했던 한 남학생, 이 학생은 고등학교 때부터 사회를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봤으며, 대학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고교 졸업 후 아버지와 같이 농사를 지었다. 그의 고향은 경북 상주다. 농사를 짓다가 대전의 모 대학 경영학과에 합격했다. 하지만 입학도 하기 전에 군대를 가게 된다. 그가 학교에 복귀한 것은 1981년. 조용히 학교생활을 하기에는 시대가 그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그가 바로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 상임의장을 맡고 있는 장수찬(57) 교수다.   “그 당시는 격동의 시대였어요. 동생도 운동권에 푹 빠져 있었고요”라고 말하는 그는 “민중신학, 실존신학, 해방신학 등등을 공부하면서 의식을 쌓아갔죠”라고 말했다. 그러던 중 1981년 5월, 대전에서 광주까지 걸어서 간 그는 5·18 1주기 기념식에 참석했다. “엄청난 충격을 받았어요, 청년학도로서 이대로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고요”. 그는 그때부터 행동신학에 푹 빠져 들었다. 그러던 중 학내 동아리인 농악대의 회장이 되어 공연을 주도 하다가 제적을 당한다. 교수들의 탄원으로 구제를 받지만 학교 측에서 농악대의 일방적인 해체를 공고한다. 해체무효 투쟁을 벌이던 중 또 제적을 당한다. 이후 1984년 1월 학원자율화조치가 발표되면서 제적을 면하게 된다. 학원 민주화 투쟁이 활발히 일어나게 되면서 46일이라는 최장의 수업거부 운동을 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했다. 1985년 졸업한 그는 아리랑출판사를 만들어 지역의 사회과학의 사상적 토대를 만드는 일에 뛰어든다. 이후 충남민주운동청년연합(민청)의 사무처장을 맡은 그는 유인물을 배포하다 체포되어 14일간의 구류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1985~87년 4·19현판식 및 호헌철폐 운동 등 민주화   투쟁을 늦추지 않던 그는 1987년 12월 대통령선거에서 김대중 후보를 비판적 지지한다. 하지만, 예상외로 대전에서 적은 표가 나오자 그는 좌절을 하게 된다. “그때는 정말 충격적이었어요. 우리의 생각보다 사회변화는 더디게 진행된다는 것을 실감한 것이죠”라며 “민주주의에 대한 공부를 더 깊게 하기로 결심을 했죠”라고 회상했다. 민청의 의장을 지내기도 했던 그는 1990년 초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노스웨스트 일리노이 주립대학에서 정치학 석사를 공부하고, 미시간 주립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밟았다. 이때 공부한 것이 비교정치학이었다. 미국에서 강의를 하던 중 2000년에 목원대의 행정학과 교수로 부임해왔다. “산업화의 성공, 사회자본 등을 연구하면서 국가의 역할이 끝났다는 것이 그 당신 신제도학파의 주장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시민사회로 관심이 옮겨갔어요”라고 말하는 그는 “시민사회운동단체들의 역할이 점점 더 커지는 것도 이러한 경향과 다르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2004~5년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 정책위원장을 지낸 그는 시민사회연구소의 연구소장과 이사장을 맡아 시민사회역량 강화를 위해 일조를 했다. 이후 2014년부터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의 의장으로 선출되어 왕성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민주주의 절차와 참여를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사람으로서 우리단체의 변화를 이끌고 싶은데, 현재 우리단체의 모습은 좀 지나칠 정도로 사무처 중심의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라고 평가하는 그는 “창립 20주년을 맞아 우리단체의 모습을 성찰하고 변화할 수 있도록 더 노력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정부는 아직도 투명성과 민주성이 부족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단체의 권력감시 운동은 여전히 제1의 운동과제입니다. 권력감시를 집중할 역량의 분화도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봅니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우리단체 의장 외에도 한국NGO학회 회장, 충남 참여와 소통 활성화 기획단 단장, 충남 자치행정분과 자문위원장 등을 맡아 분주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살고 있는 집은 계룡산 도예촌으로 유명한 공주 반포면 하신리. 미국감리교회 선교사인 미국인과 결혼한 그는 슬하에 2남 1녀를 두고 있다. 첫째는 미국에서 사회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고, 둘째 역시 미국에서 연극학과에 재학 중이다. 막내는 대전국제크리스찬스쿨에 재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