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을 사람의 만남이 아름다운 도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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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희(회원, 사회복지사) 직장인이라면 가장 많은 자신의 시간을 보내는 곳이 일터이다. 당신의 일터는 어떠한가? 라고 물으면 사람들마다 각자 처한 환경이 다르고, 생각하는 것, 떠오르는 것이 다를 테니 답도 각양각색이겠다. 최근 한두 달 사이 인권 관련 토론회, 회의, 교육 등에 참여 할 기회가 있었다. 인권이라는 이슈가 나의 관심사이기도 한데, 어쩌면 그것이 내가 사회복지를 하게 된 이유나 이 직을 유지하는 원동력인지 모르겠다. 수 년 동안 사회복지사들을 지원하는 곳에서 일했던 나는 사회복지현장의 크고 작은 여러 기관이나 조직들을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지켜볼 수 있었다. 사회복지의 실천현장은 기본적으로 인권을 실천하는 현장이며, 그 현장의 사회복지사가 인권옹호자로서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들 말한다. 사회복지 실천이 사회의 취약계층이나 소외된 영역의 누구든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인간존엄성을 보장하는 일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러한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다는 것은 행운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곳의 일하는 사람들은 마냥 행복할 것인가? 어느 직장이 그렇기만 하겠나. 사회복지사의 일터에는 미흡하고 불평등한 처우와 클라이언트로부터의 폭력 위험, 높은 감정노동 요구 등이 존재한다. 그들의 좋은 일터를 만들기 위해 우선 해결해야 할 문제들도 많지만 혹시라도 사회복지사 스스로의 인권과 관련된 사회복지조직 내의 불합리함은 없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기관장의 부당한 요구나 권위적인 상사로부터 오는 인권침해는 없는지, 공식적인 절차를 통해서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지, 문제제기가 어려운 폐쇄적인 조직구조를 가지고 있지는 않은지, 혹시 사직서를 가슴에 품고 바른말 한 마디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기관내의 비민주성에 대하여 생각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 지경이라면 수급자들뿐만 아니라 사회복지사들의 인권도 논의되어야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 아닌가? 며칠 전 한 사회복지사의 어려움을 들었다. 부당하다. 기관의 부당한 처사에 함께 있던 그를 아끼는 모든 사람들은 그에게 강력한 대응을 추천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토록 혼신을 다해서 일했던 그 곳을 그는 이제 조용히 떠날 것이다. 자괴감이 들었다. 왜 모두 하나같이 그에게 부당함에 맞서라고 하지 못하였는가? 나는 왜 못하는가. 아마도 사회 탓일 것이다. 그렇게 부당함을 말하는 자의 편에서 힘이 되어 주고 손을 잡아 주는 사회가 아닌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러한 행위가 드러나 표면화되면 스스로가 낙인이 찍혀 일터에서 버티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정의로움이 이기는 사회가 아닌 것이다. 우리는 요즘 매체를 통해 수도 없이 이러한 세태를 보고 느끼고 있다. 사회복지현장도 다른 여타의 현장과 같이 힘에 굴복하고 자신의 보신에 힘쓰는 자들이 넘쳐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희망을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정녕 행복한 일터를 만들지 못하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