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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골 통신 ⑦ 반값등록금, 기본소득 그리고 알파고 전성우(회원, 한남대학교 홍보팀장, 전 한국일보 기자) 대학가에서 등록금 납부 시기가 되면 국가장학금에 대한 학생들의 불평이 봇물처럼 터져 나온다. 자신의 집안 형편에 비해 소득분위가 높게 책정돼 국가장학금을 못 받거나 적게 받는다는 불만이다. 본인보다 훨씬 부유한 집 애들도 국가장학금을 받는데, 평범한 형편의 자신은 못 받으니 속이 상한다는 것이다. 인터넷에는 서울 강남에서 외제차를 두 대씩 굴리는 집은 국가장학금을 받고, 맞벌이 월급쟁이 집은 못 받는다는 이야기들이 넘쳐난다. 탈세와 지하경제가 만연한 우리나라에서 세금이 공평하다고 믿는 사람이 별로 없듯이, 소득분위가 정확히 산정된다고 믿는 이들도 많지 않다. 다른 사람들이 세금을 덜 낸다고 의심하듯이, 국가장학금도 남들이 더 빼먹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실제로도 그렇지 않을까 싶다.) 지난번 대통령선거에서 반값등록금은 여야 후보의 공통적인 공약이었지만 방법은 달랐다. 박근혜 후보는 소득분위에 따라 국가장학금을 차등지급하는 방식을 제시했다. 반면 문재인 후보는 모든 학생의 등록금을 절반으로 줄여주고, 저소득층에게는 장학금을 추가 지급하겠다고 했다. 선별적 복지냐, 보편적 복지냐의 이분법으로 본다면, 박근혜 방식은 선별적, 문재인 방식은 보편적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시행되는 제도는 대통령에 당선된 박근혜 방식이다. (박근혜 후보는 노인연금의 경우 대학 등록금과 달리 모든 노인에게 보편적으로 지급하겠다고 공약했으나, 당선 후 선별적 지급으로 후퇴했다.) 만약 문재인 방식이 적용됐다면 어떠했을까. 부잣집 애들에게 왜 대학등록금을 지원해주냐는 불평이 끊임없이 지속되었을까? 무상급식을 생각해보면 답이 있을 것 같다. 처음엔 많은 국민들이 이건희 손자에게 왜 국민의 세금으로 공짜(?) 밥을 줘야 하느냐고 했지만, 지금은 그런 불만을 말하는 국민이 많지 않다. 문재인의 반값등록금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이 방법은 명시적으로 모든 등록금 고지서의 금액을 절반으로 줄이는 것이기에 우리 사회가 수용하고, 적응하면 끝이다. 내가 상대적으로 ‘더’ 못사는데 ‘덜’ 받았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할 필요가 없다. 물론 보편적 복지가 선별적 복지에 비해 재정 부담이 훨씬 크다는 반론이 있다. 하지만 ‘선별’에 드는 막대한 행정비용과 그에 승복하지 못하는 끊임없는 불만들, 그리고 훨씬 더 심각한 문제인 선별적 복지의 ‘사각지대’에서 삶을 포기하는 이웃을 생각해야 한다.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 대결을 계기로 ‘기본소득’ 이슈가 주목을 받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인류 역사에서 기계화, 자동화는 인간의 일자리를 지속적으로 잠식했다. 그러나 그것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인공지능 로봇시대는 더욱 커다란 변화를 몰고 올 것이다. 올해 1월 세계경제포럼은 첨단기술의 발달로 향후 5년 내에 50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란 전망을 내놓았다. 19세기 초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초래할 실업의 위험에 반대해 기계를 파괴하는 등 폭동을 일으킨 러다이트 운동을 거론하는 이들도 있다. 기술 발전이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란 말이 통하는 시대는 저물었다. 그렇다면 일자리가 없는데 소득이 어떻게 생기며, 소득이 없는데 소비는 어떻게 가능한가? 총수요 하락과 상품의 과잉공급은 총체적인 경제 공황으로 이어지게 된다. 그래서 연령과 소득 등을 구분하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일정 소득을 지급하는 기본소득이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는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기본소득에 대한 많은 연구와 실험들이 진행 중이다. 이를 국민투표에 붙이는 스위스 같은 국가도 있다. 국내에서도 이재명 경기 성남시장과 박원순 서울시장 등을 중심으로 기본소득과 유사한 정책들이 시도되고 있다. 기본소득, 더 이상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아니다. 복지국가 이슈와 더불어 기본소득에 대한 국내의 활발한 논의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