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을 사람의 만남이 아름다운 도시로,
열린시대 새 지방자치를 만들어갑니다.
데이트 어플로 전락한 지자체
요즘 나는 한 인스타그램 계정을 눈여겨 보고 있다. 청춘포털(@youth.portal.official)에서 운영하는 계정이다. 최근 올라온 게시물 제목이 무려 ‘대전 돌싱글즈 1기 모집’이었다. 네? 뭐라고요? 아무 생각 없이 피드를 슥슥 내리다 손가락을 멈칫했다. 내용은 더 상상초월이었다. 우선 참석대상은 대전에서 활동하는 만19세~39세 ‘돌싱청년.’ 수많은 00청년을 봤지만, 돌싱청년은 처음 들어봤다. 게다가 지원조건에는 이런 말이 써있다. “연인X, 애매한 관계X, 재판중X, 소송중X = 법적 싱글 아님 지원불가”
한 장을 넘기면 더 자세한 내용이 나온다. 돌싱글즈 1기에 참여하려면 사진 1장과 이혼확인서 또는 이혼사실증명서가 필요하다. 프로그램 내용은 사랑이 피어나는 차(TEA) 만들기, 차에 어울리는 음식 같이 먹기, 커뮤니케이션 및 커플 매칭까지. 참, 다채롭기도 해라・・・ 아래 설명에는 친절하게 강조 표시(※)를 해가며 참여 비용은 발생하지 않는다고 알려주고 있었다.
청춘포털 인스타그램 게시물 갈무리
이 희한한 프로그램은 도대체 누가 기획한 건가. 프로필 아이콘을 터치해보니 ‘대전 서구 청년공간’이라고 적혀있었다. 확인 결과, 청춘포털은 대전 서구에서 공식적으로 운영하는 청년공간이었다. 그러니까 이혼확인서까지 확인하면서 ‘돌싱’들을 매칭시키는 프로그램을 구청에서 지원하고 있다는 말이다. 프로그램 참여 비용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했으니, 돌싱글즈는 세금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대전 서구민인 나는 처음엔 황당했지만 갈수록 처참해졌다. 이혼한 청년들을 ‘돌싱청년’이라는 요상한 신조어로 불러가며 짝 맺어주기에 혈안인 지자체가 내가 살고 있는 바로 이곳이라니. 우후죽순 등장하고 있는 자극적인 연애 프로그램을 공공예산을 써가며 실제로 구현해놓았다니. 심지어 대전 서구는 2021년 공공기관 소속 미혼남녀 만남의 장 <심통방통 내짝을 찾아라>를 진행하려다, 시대착오적이라는 시민단체의 비판을 받고 사업을 철회한 적도 있다.
나는 이 게시물을 보는 내내, 돌싱글즈가 인구소멸,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목적 하에 기획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떨쳐낼 수 없었다. ‘애매한 관계’에 놓인 ’이성’이 없으며 재판이나 소송 중이 아닌 ‘돌싱’들을 모아 짝을 지어주면, 자연스럽게 결혼으로 이어져 아이를 낳게 만들 수 있겠다는 서구청의 큰 그림 아니었을까? 묻진 않았지만 이미 대답을 들은 기분이다.
지역에서 살아가는 청년여성으로서 돌싱글즈는 매우 달갑지 않다. 저출생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 파악은 뒤로 미뤄둔 채, 지금 당장 ‘이성애’ 연애를 하고 결혼하는 청년을 늘려 조금이라도 출생률을 끌어올려보겠다는 얄팍한 수가 보여 불쾌하기까지 하다. 몇 년 전, 여성을 출생률을 올리는 도구로만 바라본다고 비판 받은 ‘가임기 여성 지도’와 무엇이 다른지도 모르겠다.
올해 초 대전시는 결혼하면 500만원의 지원금을 준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했고, 대전 서구는 저출생 대책의 일환으로 ‘다자녀 공무직 재고용 방안’을 발표했다. 정년 시점에 있는 공무직 중, 미성년 자녀의 수에 따라 정년 후 재고용하겠다는 뜻이라고 했다. (청년)여성인 나를 겨냥한 정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나는 심드렁하기만 하다. 나를 나로서 보지 않는 정책들은 결국 지역에서 살아갈 마음을 뜨게 만들 뿐이다.
이렇게 지자체에서 문제의 원인을 제대로 바라보지 않는 와중에, 지역의 청년여성들은 하나둘 떠나고 있다. 단기 일자리만 넘쳐나는 와중에 그나마 질 좋은 일자리에는 여성이 낄 틈 없는 지역의 일자리 문제, 수도권에 비해 훨씬 수직적이고 성차별적인 조직 문화 등은 청년여성이 지역에서 살아가기 힘들게 만든다. 거기에 여성을 출산의 대상으로만 보는 지자체의 뒤쳐지는 관점까지 추가되었다. 그러면서 지역에 청년여성이 빠져나간다며 지방소멸을 우려하고 있다. 내가 보기엔 당연한 결과 같은데 말이다.
청춘포털의 짝 맺어주기 프로그램은 돌싱글즈가 끝이 아니었다. 가장 최근엔 ‘나는 솔로 2기’를 진행한다는 소식이 업로드되었다. 여기에 참여하려면 누군가와 사귀는 사이가 아니며, ‘썸’도 타지 않고, 애매한 관계의 ‘이성'이 있지도 않아야 한다. 완벽하게 들어맞는 지원조건에도 나는 그저 동태 눈으로 피드를 ‘슥뽕’할 뿐이었다.
청춘포털 인스타그램 게시물 갈무리
나는 짝 맺어주기 프로그램 때문에 이곳에 살고 있는 게 아니다. 내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믿음, 그런 나를 진심으로 지지해주는 친구들과 동료들이 있어서다. 지방소멸을 걱정하는 지자체라면 이런 걸 뒷받침해줄 수 있는 정책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진짜로 지역에서 청년여성이 다 사라져 버리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