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위기와 15대대통령 선거에 즈음한 시민사회대표자 공동시국선언(1997/1]
경제위기와 15대대통령 선거에 즈음한 시민사회대표자 공동시국선언
한세기를 마감하는 15대 대통령선거를 맞는 우리들의 마음은 무겁기 그지 없습니다.
무엇보다 우리들이 부닥뜨린 경제 위기 현실이 200억불의 외부 지원금으로만 극복될 수 없다는 위기의식 때문이며, 깨끗하고 공정한 선거가 또다시 위협 받고 있다는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백척간두에 선 나라의 운명을 염려하는 충정에서 15대 대통령 선거와 경제위기에 즈음한 우리의 주장을 밝히고자 합니다.
경제난국은 재벌개혁과 공정한 고통분담으로 풀어야 한다.
먼저 현재의 금융위기를 지켜보며 우리는 정부의 관치, 특혜 금융과 재벌의 과잉중복 투자가 한국경제의 가장 큰 해악이라는 국내외의 지적에 귀기울일 것을 권고합니다. 경제위기에 대한 단기적인 대책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우리들은 이해합니다. 그러나 구조적 경제개혁의 근본적 접근을 수반하지 않는 대중요법식의 단기적인 처방은 위기를 일시적으로 유예하는 데 그칠 뿐이며 장기적인 또다른 위기를 방치하는 것이될 뿐입니다.
이러한 인식위에서 우리는 현재의 난국을 극복하기 위하여 몇가지 방안을 제안드립니다.
첫째, 재벌의 일대변혁이 필요합니다. 재벌은 성실한 자기개혁을 시작해야 합니다. 지금껏 가장 큰 특혜를 누려온 최대의 경제적 수혜자가 앞장서서 자신의 병리를 치료하고 책임을 분담하지 않는다면 어떤 다른 사회계층도 고통분담에 동참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번의 위기가 국민 모두가 공동으로 일치된 노력을 기울일 때에만 극복될 수 있다는 점에서 재벌기업들의 총체적 자기반성과 경영합리화의 노력은 절실히 요구됩니다. 무엇보다도 재벌들은 경제위기를 악용하여 무조건 감원과 특혜금융만을 주장하는 등 책임전가식의 자세를 버리고 기업경영의 투명성과 투자자들의 이익을 보장하여야 합니다.
둘째, 공정한 고통분담을 위하여 국민적 의견수렴의 장이 만들어져야 합니다. 현재의 난국을 극복하기 위하여 먼저 선행되어야 할 것은 국민적 신뢰의 회복이며, 이는 정치권과 재벌의 자기반성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신뢰회복 없는 일방적 구조조정은 새로운 갈등을 심화, 재생산하는 것으로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이제 IMF 구제금융에 따른 외부의 요구가 국론을 더욱 분열시키는 것을 막기위하여 노,사,정 3자와 시민사회 대표자들이 함께 하는 \"경제력 회복과 국민통합을 위한 진지한 협의\"의 장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대다수 국민들을 불안에 떨게 하고 있는 고용불안 문제에 대하여 안정대책을 마련하는 것은 그 일차적 의제가 되어야 할 것이다.
셋째, 현재의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하여는 시급하게 금융개혁을 실천하여야 합니다.
금융개혁은 금융기관들이 정부와 정치권의 부당한 간섭을 받는 관치금융으로부터 독립되어 시장경쟁의 원리에 근거한 책임경영을 할 수 있는 구조적인 개혁이어야 합니다. 또한 관치금융을 없애기 위하여 금융감독기구를 정부의 영향을 받지 않는 독립적인 기구로 만들어야 하며, 정부는 현재의 금융위기를 악용하여 당장의 금융위기극복과 직접 관련 없는 금융감독권의 문제를 날림으로 처리함으로써 관치금융을 더욱 강화하려는 기도를 포기할 것을 촉구합니다.
네째, 허황된 세계화의 환상에서 벗어나 졸부계층의 망국적 소비를 막아야 합니다.
지금문제가 되고 있는 과소비와 사치성 소비재의 과다 수입, 조기유학붐과 사치행각은 분명 심각한 사태입니다. 이러한 관행에 쐐기를 박아야 합니다. 고급자동차와 술, 보석과 모피를 비롯한 사치성 소비재의 소비를 강력히 억제하고 망국적인 지나친 혼수를 절제하여 정부와 국민이 결연한 의지를 가지고 문제를 헤쳐나가려는 자세를 가지지 않는다면 졸부계층의 잘못된 소비문화는 추방할 수 없습니다.
아울러 우리는 정부의 미온적 대처나 재벌의 구태, 언론의 왜곡보도, 졸부계층의 과소비풍조 등에 대해 국민이 한 마음 한뜻으로 치밀한 감시자와 고발자가 되어 잘못된 행태를 고쳐나감으로써, 경제계와 정권으로 하여금 왜곡된 경제구조를 개혁하도록 이끌 것을 간곡히 호소합니다.
깨끗하고 공정한 선거는 한국 사회 위기 극복의 출발점입니다.
경제위기의 본격화에도 불구하고 계속되고 있는 한나라당의 당직자와 후보자들을 중심으로한 지역감정 발언, 정치개혁을 주장하던 정치인들의 이합집산과 줄서기 행태, 이미 심각한 고용불안 속에서도 일부 기업의 불법대량 해고를 내버려 두는 정부당국의 모습 등은 국정의 총체적 표류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국사회를 위기로부터 벗어나게할 정부를 구성하는 이번 대통령 선거는 그러기에 깨끗하고 공정하게 이루어져야합니다. 이에 깨어있는 성숙한 유권자로서 관심가져야할 몇가지를 당부드리고자 합니다.
첫째 ,이번 선거는 그 어느 때보다 깨끗하게 치뤄져야 합니다. 지난날에 대통령에 당선된 사람들은 법정 선거운동비를 과자 값처럼 여기는 천문학적 액수의 돈을 흥청망청 뿌리는가 하면 사후에 대비해서 남은 돈을 금고 깊숙이 감춰 두기도 했습니다. 선거를 매개로 형성된 정경유착은 한국사회를 부도위기에 빠뜨린 주요 원인입니다.
관권 개입 감시 또한 우리들이 소홀히 할 수 없는 과제입니다. 외관상으로 집권당이 없지만 기득권세력을 대변하는 여권 정당들이 엄연히 있으므로 정보 수사기관이 음성적으로 선거운동을 할 개연성을 빼 놓을 수 없으며 당적을 가진 자치단체장들의 선거개입도 있을 수 있습니다. 후보자와 공직자들의 깨끗하고 엄정한 선거중립을 다시한번 호소드립니다. 아울러 선거 막바지에 드러날 금권, 관권선거에 대해 유권자들이 엄중히 심판할 것을 당부드립니다.
둘째, 지역감정을 선동하는 정치를 끝내야 합니다. 깨끗한 정치와 국민통합을 내세우는 한나라당의 후보와 중진이 나서서 우리가 남이가, 대구경북과 부산경남이 대권을 쥐고 나라를 살려야 한다 영남이 가는 곳에 나라가 있다는 식의 지역감정 자극과 지역우월주의 선동은 즉각 중단되어야 합니다. 공정한 정책경쟁으로 선택받는 성숙한 모습을 정치지도자들이 먼저 보여주어야 합니다. 연고주의, 지역주의 선거는 나라를 망치는 공적입니다. 우리 유권자들은 그것이 야당이든 여당이든, 강자든 약자든 누구에 의한 것이든 우리는 이것을 단호히 거부하는 성숙한 선택을 통해 지역갈 등을 극복하고 민족통일시대를 준비해야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언론인들께 공정 보도를 간곡히 호소합니다. 언론은 후보자와 유권자를 이어주는 사실상 거의 유일한 통로가 되고 있습니다. 이에따라 선거보도의 편파성은 선거공정성의 근본을 위협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야당의 연합은 야합으로 매도하고 여당의 연대는 합의로 치켜올리며 진보세력의 후보에 대해 시간과 지면을 할애하지 않는 다는 비판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습니다. 특정후보죽이기를 통한 언론의 줄서기 관행이 노골화되고 있다는 비판에 대해 공정보도를 통해 사실이 아님을 증명해주길 우리는 기대 합니다. 아울러 우리는 유권자인 국민스스로가 보도순위와 시간, 지면의 차별, 보도축소와 누락, 사진,화면 따위에 의해 왜곡되는 선거보도에 대해 깨어있는 감시를 호소드립니다.
이번 대선이 정책대결로 모든 국민이 승리하는 잔치마당으로 치뤄지도록 정치인과 국민 모두가 노력해야 합니다. 민주체제 세우기, 골수에 병이 든 경제 살리기, 민족문제 해결, 교육의 과감한 혁신, 농민과 노동자의 삶, 나아가서 국민 삶의 질을 높이는 일에 관해 생산적 정책을 제시하고 활발한 토론과 이를 통합 합리적 선택이 이루어지길 기대합니다.
1997년 11월 2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