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역사왜곡 교과서 불채택 위한
쿠마모토 충남방문단, 출국 기자회견
2001. 6. 5 오전 11시 30분
대전참여자치연대 사무실
(기독교연합봉사회관 803호)
■ 개 회
■ 인사말
■ 참석자 소개
■ 출국기자회견문 낭독
■ 일본내 활동 소개
■ 질의 응답
■ 폐 회
일본역사왜곡 교과서 불채택 위한
쿠마모토 충남방문단, 출국기자회견
■참여자치대전충남지역운동연대(공주사랑시민단체협의회․당진참여자치시민연대․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새로운태안을열어가는군민모임․아산시민모임․연기사랑시민회․예산주민연대․천안시민포럼․대전유성민주자치시민모임. 청양포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충남지부(금산지회,연기지회,논산지회,청양지회,공주지회,부여지회,서천지회,보령지회,천안지회,아산지회,예산지회,홍성지회,서산지회,태안지회,당진지회) ■전국농민회충남도연맹(연기농민회,논산농민회,청양농민회,공주농민회,부여농민회,서천농민회,보령농민회,천안농민회,아산농민회,예산농민회,홍성농민회,서산농민회,당진농민회)
일본역사왜곡 교과서 불채택 위한
쿠마모토 충남방문단, 출국 기자회견
출국 기자회견문
“ 굽은 역사, 바로 잡으러 갑니다 ”
이른바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 주도한 후소샤 교과서를 보는 우리들의 심정은 분노를 넘어 두려움을 느낍니다.
이 교과서의 근간에 흐르는 총체적인 ‘우익사관’은 군국주의 망령을 부활시키려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새 교과서는 고대사에서부터 그 실체가 부정되고 있는 ‘임나본부설’을 기정사실화 하면서 침략을 합리화하는 잘못된 역사 인식의 틀을 자라나는 새싹들에게 주입시려고 하고 있습니다.
특히 한국사를 ‘종속’ ‘복속국’ ‘종주권’ 등의 용어로 폄하하고, 또한 군대위안부 강제동원 등 일본이 저지른 침략과 만행의 역사를 은폐․축소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의 식민지 수탈을 강화하기 위해 마련한 시설들을 마치 ‘조선개발과 발전을 위한 시혜’였던 것처럼 왜곡시켰습니다. 그런데도 이런 거짓말투성이 교과서가 버젓이 일본 문부과학성 검정을 통과했습니다. 우리 정부가 일본정부에 전달한 일본 교과서 왜곡 재수정 요구 항목만도 35가지에 이릅니다. 이쯤 되니, 아직도 일제암흑기가 끝나지 않은 것 같고, ‘21세기 평화의 시대’는 올 것 같지 않은 착각이 들 정도입니다.
지금까지 일본 정부의 태도는 여전히 추악한 과거로의 회귀 욕망에서 한치도 벗어나 있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일본 우익진영인 ‘새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측은 문제투성이 교과서를 어제부터 시판하고 있습니다.
한국민의 교과서 재수정 요구에도 아랑곳없이 고이즈미 일본 신임 총리는 신사 공식참배와 평화 헌법 개정 의지를 뻔뻔스럽게 공언하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일본의 이 같은 역사 왜곡작업은 전후 일본이 재무장과 함께 추진해온 대외 팽창적 신군국주의와 맞닿아 있다고 단정합니다. 이는 이미 우려의 수준을 넘어 인근국가들로 하여금 경계와 위협을 느끼게 할 만큼에 이르고 있습니다.
지난 3월 대전충남 시민사회단체와 쿠마모토현내 시민단체는 일본 지방의회에서 왜곡된 교과서가 채택되지 못하도록 하는 ‘역사 왜곡 교과서 불채택 주민운동\'을 양국 지역민과 함께 벌여나가겠다고 선언한 바 있습니다.
이번의 일본행은 최소한 충남지역과 자매결연을 맺고 있는 일본 쿠마모토현만이라도 우리의 진심을 알아서, 불행해지지 않도록 호소하기 위한 것입니다.
자라나는 양국 학생들이 올바른 역사의식을 지닌, 평화를 사랑하는 민주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공동노력을 기울여 나가자는 호소를 하고자 가는 것입니다.
2박3일동안의 짧은 일정이지만, 일본 쿠마모토현 각계각층 현민들과 만나 함께 평화와 공존의 시대를 열어가는 방법에 대해 말하고자 합니다.
아울러 우리는 일본 역사 교과서 왜곡을 계기로 우리 내부의 왜곡된 역사관은 없었는지 성찰해 보고자 합니다. 일본인들이 부끄러운 과거를 고의로 누락시킨 것처럼, 친일파 문제와 독재 정치, 한국전쟁을 전후한 무수한 양민학살의 진상, 광주학살의 기억, 베트남 양민 학살의 실상들을 애써 외면하여 온 것은 아닌지 뒤돌아봅니다.
일본정부와 수구 우익 진영이 ‘이웃나라와의 관계가 깨지더라도 역사를 최대한 미화시켜 가르치겠다’는 그릇된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이러한 양식 없는 시도는 양국 평화 애호민의 손에 의해 끝내 좌절될 수밖에 없는 것임을 각인시키기 위해 정해진 시간동안 한 명의 일본인이라도 더 만나서, 대전충남지역민의 뜻을 한마디라도 더 전하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돌아오겠습니다.
대전충남 지역민 여러분의 많은 성원과 관심을 바랍니다.
2001. 6. 5
일본 역사 왜곡 교과서 불채택 위한 쿠마모토충남방문단 일동
단 장 / 정수용(52.鄭秀容 전국농민회충남도연맹 의장)
부단장 / 권정안
단 원 / 김용세, 김창태, 남재영, 성기원, 이외원, 이평선, 이예선, 한성준
일본역사왜곡 교과서 불채택 위한
쿠마모토 충남방문단, 출국 기자회견
日, 역사 왜곡 교과서 불채택 위한 쿠마모토충남방문단 활동개괄
1. 역사 왜곡 교과서 불채택 위한 쿠마모토현 방문 목적
1)97년의 군위안부기술 삭제반대 운동의 경험을 살려 왜곡교과서를 채택하지 않도록 쿠마모토현에 요청한다.
2)충청남도와 쿠마모토현이 자매결연을 맺고 18년을 거쳐 다방면으로 교류를 하고 있는 것과 관련하여 21세기에도 올바른 역사인식에 기초해서 양지역과 청소년들의 우호가 깊어지도록 쿠마모토현의 각계각층 현민들에게 요청 한다.
3)올바른 역사인식에 기초한 양 지역민간의 우호와 연대를 굳건히 하고 왜곡역사교과서 불채택운동에 대한 공동대응과 일본내 운동을 고조시키기 위한 계기를 만든다.
4)한국내 일본 교과서 왜곡문제에 대한 정부차원의 재수정 요구에 이어 민간과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새로운 대책과 실천방도를 제시한다.
2. 방문단 명칭 및 구성
- 명 칭 / ‘일본 역사왜곡 교과서 불채택을 위한 쿠마모토 충남방문단’
- 구 성 / 충남지역 각계각층의 입장과 의견, 실천활동을 전개할 대표들로 구성(총 10명),
(농민대표1명, 교사대표3명, 교계대표(기독교)1명, 학계대표 2명(공주대,대전대교수), 시민사회단체대표 3명 등) <명단 별첨> 그 외 방송 및 신문 취재진(3명)
3. 방문일정
- 6월 7(목)~9일(토) 2박3일간 / 6월 중순 경 지방의회에서 교과서 채택건이 상정될 예정이며 ‘채택지구협의회’별 1차 선정이 예정돼 있음
<항공편>
6월7일/ 아시아나항공 인천신공항 출발 오전 11 30분
후쿠오카공항 도착 오후 12시40분
6월9일/아시아나항공 후쿠오카공항 출발 오후 1시45분
인천신공항 도착 오후 3시10분
4. 방문 후 일정(예정)
6/7(목) 후쿠오카공항도착(12:45) ) 전차로 구마모토로 이동
오후 1조/
쿠마모토현지사 면담(2:45),쿠마모토현 교육장 면담,현의회 방문
2조/
쿠마모토시 시장면담, 쿠마모토시교육장 면담, 시의회 방문,
<공동> 쿠마모도 노동회관 도착(5:30), 기자회견, 환영집회(6:00), 현 제 시민사회단체와 간담회 및 식사(8:00), 신 쿠마모토호텔 숙박(10:00)
6/8(금)
오전 쿠마모토성 및 가등청정 신사 견학(8:00), 현교조본부, 고교조 간담회(9:00), NHK인텨뷰-쿠마모토 방송 인텨뷰(9:40), 쿠마니치신문사 방문(11:00),신문박물관 견학(11:50), 쿠마모토시내에서 교과서 왜곡저지 캠페인
오후 (2개 조로 나누어 요청사업)
1조 懸北 방문조
쿠치시교육위원회 방문(요청),키쿠치시민과 간담회,다마나시로 출발,다마나시교육위원회 방문(2:30), 아라오시장 방문, 아라오시교육위원회 요청(5:00), 아라오 환영집회(8:00), 교류간담회(10:00), 아라오숙박<2박>
2조 懸南 방문조
야베마치에서 오오야노바루 군사연습장 견학(1:00),야베마치교육위원회 방문요
청(1:30),야스시로교육위원회 면담,야시시로신사견학(6:00),야스시로환영집회 (9:00),야스시로숙박(11:00)<2박>
6/9 1조 아라오시에 있는 식민지시기 강제연행되고 희생된 한국사람들의 유골
이 있는 절간(금강사)을 방문,오오무타역에서 전차로 후쿠오카로 이동, 후쿠오카 공항도착,귀국
2조 야스시로神社방문, 야스시로에서 전차로 후쿠오카로 이동,오오무타에서
1조와 합류,공항도착,귀국
(쿠마모토현내 각 자치단체, 교육위원회, 현 시민, 언론기관 등을 만나 교과서 불채택을 바라는 충남도민의 뜻을 전하고 협조요청. 민간단체와의 공동 대응방안 협의 등 중심)
- 왜곡교과서 채택시 양 자치단체간 자매결연 협정 파기 등 후속조치 요구 계획 전달
5. 기대효과
- 쿠마모토현내 역사 왜곡 교과서 채택을 저지하는데 기여
- 쿠마모토현내 왜곡교과서 반대에 대한 시민이해 증진
- 쿠마모토현과 충남도간 교류협력 내용적 강화
- 충남지역운동연대와 쿠마모토현민회 등 양지역 시민간 다방면 교류 강화
- 한국내 일본 교과서 왜곡문제에 대한 대응방안 선도
6. 충남시민단체와 쿠마모토 현민의 회와의 교류경과
- 지난 97년 \'아이들의 인권을 살리는 현민의 회\'(이하 현민의 회)와 충남지역 시민단체간 교류의 시작됨.
- 쿠마모토현민의 회는 97년 현의회에 우익단체들로부터 군위안부 기술 삭제 청원이 제기된 후 쿠마모토현 교육위원회가 이를 통과시키려 하자 충남지역시민단체에 공동대응을 요청했고 청원활동 등 공동저지 운동을 벌여 이를 무산시킴.
- 이를 계기로 두 단체간 자매결연 체결과 매년 상호 방문교류사업을 지속적으로 벌이고 있으며 유사시 전시입법 반대운동을 비롯 북한동포돕기 운동을 함께 추진한 바 있음.
- 매년 상호 교류방문을 통해 교사. 농민. 학생.지역.환경 등으로 점차 교류 분야와 폭을 확대하고 있음.
- 올해의 경우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문제에 대한 충남-쿠마모토 교사, 학생 간 한.일역사 공동수업 진행 등 공동대응과 양 지역 농업문제에 대한 공동연구 작업에 중심을 두고 있음.
7. 쿠마모토현내 일 역사교과서 왜곡문제에 대한 시민단체 움직임
- 2000년 10월 / <1차>일 역사교과서 왜곡 반대에 대한 쿠마모토현민의 회와 충남지역시민사회단체 공동기자회견(충남시민사회단체 대표단 쿠마모토현 방문)
- 2001년 2월 / <2차>일 역사교과서 왜곡 반대에 대한 쿠마모토현민의 회와 충남지역시민사회단체 공동입장 발표
- 2001년 3월 말 / 쿠마모토 현민의회 대표단 충남방문 / 충남-쿠마모토 교사, 학생 간 한.일역사 공동수업 진행 및 공동대응키로 합의
- 현민의 회 대표단 출국 후 시민들과 함께 하는 全懸차원의 시민운동 벌일 것 제기
- 2001년 4월14일 /
* 제1차 회, 8월까지의 구체적 운동 방향 논의( 시민 약30명 참가)
*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ꡑ의 역사교과서와 公民(도덕)교과서 열람.
- 2001년 4월-5월 /
* 키쿠치시/ 시의원(怒留湯) 중심으로 교과서네트워크 키쿠치ꡑ를 만들고 키쿠치郡의 다른 町,村(일본의 행정단위)에 호소해서 광범한 시민들을 불러 일으키는 운동을 진행중.
- 쿠마모토시,야스시로시 조직결성.
- 懸北지역,히토요시(人吉),아마크사(天草),미나마타등,키쿠치시 등 쿠마모토현하의 각지에서도 시민과 교사가 중심이 된 운동체를 조직 결성 결의.
8. 일본 쿠마모토현의 교과서 채택과정과 일정
3월 / 검정결과 판명․견본작성개시(3월말)
4월 / <채택기간개시>
- 견본발송(1만권/5월중․하순기간)
- 현․선정심의회(選定審議會)개최(제1차 심의, 선정 기준 마련)
- 각 기초자치단체별 교과서회사에 요청
5월 상순 /
- 현․선정심의조사원회(개최 4번정도)
- 선정자료의 작성
5월 하순 /
- 현․선정심의회(제2차․현(懸)에 답신)
6월 상순 /
- 현․채택사무설명회(지도․조언)
- 채택지구별 교육장모임
- 현․시․정․촌지방의회(地方議會)시작
6월 중순 / 채택지구협의회(제1차 선정)
6월 하순 / 교과서도서전시회(10일간)
7월 상순 / 채택협의회조사원회(조사자료작성)
7월 중순 / <시정촌(市町村)교육위원회에서 심의>
채택지구협의회(제2차 선정)
7월 하순 / 시정촌교육위원회(채택))
8월 / 현교육위원회에 보고
↓
현에서 문부과학성에 보고
↓
문부과학성에서 채택결과를 집약(8/15)
↓
교과서회사로 전달
<참고자료1> 교과서 왜곡 문제에 대한 충남-쿠마모토간 향후 대응계획
1) 문부과학성 검정통과 저지운동에서 내용 수정운동으로 전환
- 그동안 일본 문부과학성 검정 통과 저지운동을 검정통과 이후 내용 수정 요구를 해 나가고 있음.
- 불채택운동은 수정요구 운동을 중단하자는 것이 아니라 수정을 압박하는 것이며 수정이 되지 않았을 경우에 대비한 준비임.
2) 쿠마모토 현에서의 교과서 \'불채택\' 촉구 주민운동 전개
- 일본 문부과학성에 역사교과서 검정 통과이후 출판사별로 자기 회사 교과서를 지방의회에서 채택하도록 하는 조직적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는 바 문제 교과서에 대해서는 지방의회가 이를 채택하지 못하도록 주민운동을 벌여나갈 것임.
- 현재 일본우익단체 ‘새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쪽이 집필한 역사왜곡 교과서에 반대하는 일본내 100개 시민.학술 단체가 ‘교과서 전국 네트워크 결성
- 쿠마모토현내에서도 쿠마모토 현민회를 중심으로 각 시.정.촌별로 네트워크 조직이 결성돼 교과서 채택이 사실상 결정되는 7월 중순까지 집중적인 채택반대운동을 벌일 예정임.
- 충남지역 시민단체와 교과서 내용 공동분석, 공동청원 등 활동추진.
(현재 쿠마모토현 시민단체와 충남지역시민단체에서 교과서 내용 자체분석 중)
3) 충남-쿠마모토 교사, 학생 간 한.일역사 공동수업 진행
- 전교조 충남지부 주최로 올 8월 경 충남에서 쿠마모토현 교사.학생과 충남 지역 교사.학생
간 공동수업 첫 추진.
- 일회적 수업아닌 매년 정례화 해 추진됨.
- 올바른 양국 역사 이해와 바람직한 한,일 관계 정립 목표
(현재 세부 추진계획에 대해 협의가 진행중임)
4) 농민, 기초지역으로의 운동확대 도모
- 전농충남도연맹과 쿠마모토 농민단체간 교류, 양 기초지역간 교류(현재 당진 시민단체와
야시시로 시민단체간 교류문제 협의중) 확대로 부문,지역으로의 운동으로 확산 시도.
<참고자료 2>. 쿠마모토 현민의회에서 보내온 공동사업 제안문
대전충남참여자치지역운동연대 및 전교조충남지부 앞
여러분들이 ꡐ현민의 회 3월방문단ꡑ을 뜨겁게 환대 해 주신데 대하여 깊은 감사를 보냅니다.이번 방문을 통해서 일본의 교과서문제에 대한 한국국민들의 높은 관심과 분노가 얼마나 강력한 것인지를 더욱 잘 알게 되였습니다.
현재 현민의 회에서는 교직원조합과 연대해서 전 현적인 교과서 네트워크의 조직화로 나섰습니다.쿠마모토시,야스시로시,키쿠치시에서는 벌써 네트워크가 꾸려졌습니다.懸北지역,히토요시(人吉),아마크사(天草),미나마타등지에서도 네트워크의 조직화를 지향하여 움직이고 있습니다.
금후 보수우익세력의 공격에 맞서 ꡐ새로운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ꡑ의 교과서 불채택을 위해서 다종다양한 전술을 구사하는 운동을 벌여 나가려고 계획하고 있습니다.
98년도의 교과서공격에서는 충남대전의 시민단체와의 국제적인 연대로서 쿠마모토현내 우익보수세력의 청원을 취소시키는 획기적이고 커다란 승리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이번 공격에 대해서는 98년의 투쟁을 수배나 더하는 힘이 요구되고 있습니다.우리들 한일간 양지역 시민운동의 교류합의문에 기초해서 현민의 회에서는 충남대전의 시민들과 함께 굳게 연대해서 일본정부와 보수우익세력의 공격에 대처해 나가자고 마음 다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제안하고 싶은 것은 충남대전의 다양한 시민대표로 구성된 교과서 문제 방문단이 구마모토를 방문하여 쿠마모토현민 전체에 대한 호소와 현지사,현의회,언론,각교육기관에 대한 요청,각 지방자치체와 교육위원회에 대한 개별적인 요청사업을 해 주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충남방문단의 구성은 전교조나 시민단체만이 아니라 경제단체역원등 폭넓게 충남을 대표하는 분들이 참가해 주시면 더욱 효과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구마모토에서도 현민의 회의 힘만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현의회의원이나 시정촌의원,현교조,고교조,그 외의 노동조합,대학교수,시민단체등이 폭넓게 결집하는 환영실행위원회를 조직하겠습니다.
일정은 5월중순경의 2박3일로 예정을 잡아 주시면 합니다.될수록 많은 시정촌을 돌아 수많은 현민들과 만나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우리들의 이 제안을 충남대전참여자치지역운동연대 및 전교조충남지부에서 정식으로 검토해 주실 것을 부탁 드립니다.
2001년 4월21일
‘평화헌법을 살리는 쿠마모토현민의 회ꡑ사무국장 우에무라 후미오(上村文男)
사무국국차장 다나카 노부유키(田中信幸)
<참고자료 3>. 日 교과서 왜곡 최근일지
▲ 96년6월 : 중학교 역사 교과서 전부에 위안부 기술 등장
▲ 97년1월 : 위안부 기술 등의 삭제를 요구하는 `새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 발족
▲2000년8월 : `새 모임\' 교과서 검정신청 보도
▲ 9월 : `새 모임\' 교과서 침략 미화, 황국사관 중심 검정 신청본 보도돼 파문
10월 : 주일 한국대사 \"역사왜곡 좌시 않겠다\" 천명
12월 : `새 모임\' 교과서 200여곳 수정 통보 보도
▲2001년2월 : 한국, 중국 `새 모임\' 교과서 문제 정식 제기
: `새 모임\' 교과서 검정통과 기정사실화
28일 : 정부 이한동(李漢東) 총리주재 긴급 관계부처 회의
이정빈(李廷彬) 외교 주한일본대사 초치 정부 입장 전달
▲ 3월1일 : 김대중(金大中) 대통령 3.1절 기념식사서 \"日 올바른 역사인식 가져야\" 언급
4일 : 일본 언론 `새 모임\' 교과서 1차 수정결과 보도
29일 : 일본 우익교과서 등 8종 검정통과 결정
▲ 4월3일 : 일본 정부 검정결과 공식 발표, 정부 강력 유감 성명
4일 : 한승수(韓昇洙) 외교, 주한일대사 초치 항의
10일 : 최상룡(崔相龍) 주일대사 일시소환(19일 귀임)
정부, 제네바 유엔 인권위에서 교과서 왜곡 정식 문제제기
12일 : 정부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대책반 출범(반장 김상권 교육차관)
전문가 분석팀 일본 교과서 왜곡실태 검토시작
19일 : 주일대사, 한 외교 `교과서 친서\' 일본 고노 외상에 전달
20일 : 전문가 분석팀 검토결과 종료
24일 : 국사편찬위 2차 정밀검토결과 종료
26일 : 일 고이즈미 새 내각 출범
27일 : 김대통령, 고이즈미 일 총리 통화시 적극적 대처 촉구
30일 : 정부 대책반 재수정안 확정
▲ 5월3일 : 당정회의, 당에서 정부 재수정안 보완요구
7일 : 정부 재수정안 최종 확정
8일 : 한 외교, 주한일본대사 초치해 정부 재수정안(35개항) 공식 전달
국방부 6월초 예정 ‘한일 수색훈련 구조훈련 무기연기
일 총리, ‘교과서 왜곡 안된다’ 입장 발표
9일 : 여야의원 교과서 가처분 신청 방일
16일 : 일본 교과서 검토위 활동시작
18일 : 일 문부과학성, 일 총리 중국 교과서 수정요구 거부
21일 : 일, 6월 중순 교과서 재수정 검토 완료예정(일본 신문보도)
23일 : 일 총리, 가미가제 찬양 발언
일 총리, 야수쿠니 신사 공식 참배 입장, 헌법개정 발언
25일 : 일본제품불매운동본부 역사교과서 왜곡항의 국토순례
28일 : 정부, 일교과서 동아시아지역회의 공식제의
29일 : 김대통령,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총리에게 교과서 해결 촉구서한
▲ 6월1일 : 언노련, 알본문부과학성 앞 항의시위
4일 : “새역사 만드는 모임‘ 휴소사 교과서 시판 시작
12일 : 세계 70개국,130개도시
일본 대서관,영사관 역사교과서 재수정 집회촉구 예정
<참고자료 4>. 쿠마모토 충남방문단 명단(10명)
번호
분류
이 름
나이
영 문
한 자
약 력
연락처
휴대폰
1
농민
정수용
52
jeong
su
yong
鄭秀溶
전농 충남도연맹 의장
822-3866
011-9808-7578
2
시민
권정안
49
kwon jeong an
權正顔
공주대 한문학과 교수
공주사랑시민단체협의회 공동의장
충남교육연구소장
858-4952
850-8179
011-209-8179
3
김용세
43
kim yong se
金容世
대전대 법학과 교수
대전참여자치연대 정책위원
280-2318
017-406-3357
4
성기원
34
sung
ki won
成基元
예산주민연대 사무국장
333-4000
016-409-3506
5
이평선
53
Lee
pyung
seon
李平仙
충남지역신문협회부회장
867-6676
016-799-7667
6
이외원
42
Lee
eoy won
李外源
출판기획사 운영
673-4484
011-9807-1001
7
교계
남재영
45
南在榮
목사,
기독교타임즈 편집국장
02-399-4387
018-312-4283
8
교육계
김창태
46
kim
chang tae
金昌泰
전교충남지부
수석부위원장
565-3441
019-456-5602
9
한성준
37
han
seong joon
韓成俊
예산여고 교사(역사)
334-0619
333-8368
10
이예선
41
lee ye sun
李禮善
공주고등학교 교사(역사)
011-661-8609
<취재진>
1
언론
곽철웅
34
kwak
chul woong
郭喆雄
KBS대전방송총국 TV제작국 프로듀서
470-7333
011-456-7357
2
조신호
29
cho
sin ho
金弘植
KBS대전방송총국 TV제작국 카메라맨
470-7333
3
박현식
30
park hyun shik
朴賢食
충남지역신문협회 기자
천안신문사 취재부장
016-464-7306
<참고자료 5>. 5월 8일, 한국 정부가 일본정부에 전달한 35개 항목의 재수정 요구 주요내용
1. 수정요구 항목
┌────┬──────────────────────────────┐
│ 출판사 │ 항 목 수 │
├────┼──────────────────────────────┤
│ 扶桑社 │ 25 개 │
├────┼──────────────────────────────┤
│ │ 10 개 │
│기존 7종│(日本文敎出版 7개, 東京書籍 6개, 大阪書籍 5개, 敎育出版 5개, │
│ │ 淸水書院 5개, 帝國書院 5개, 日本書籍 2개) │
└────┴──────────────────────────────┘
2. 주요내용
일본 교과서 왜곡 수정요구안은 `새로운 역사를 만드는 모임\'측의 후소샤(扶桑社)
교과서를 중심으로 주로 근현대사 부분의 시정요구가 많았다.
근현대사 부분에서는 특히 한반도 위협설이나 한국강제병합 정당화, 강화도 사
건의 계획성 은폐, 동학농민전쟁 오도 등이 대표적인 왜곡 사례로 지적됐고 군대위
안부 문제 누락.축소도 별도 항목으로 다뤄졌다.
고대사, 중세사 부분에서는 임나일본부설의 기정사실화, 임진왜란 정당화 등이
지적됐고 중국과의 관계에서 한국에 대해 조공, 속국 등의 용어를 사용해 일본사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부분도 곳곳에 보였다.
◇ 한반도 위협설 = 후소샤 교과서는 한반도를 일본을 향해 대륙에서 돌출돼 있
는 `팔뚝\'으로 묘사, 일본의 한국 침략.지배를 합리화하는 논리인 `한반도 위협설\'
을 분명히 드러냈다.
후소샤 교과서 최종본은 \"일본은 유러시아 대륙에서 조금 떨어져있는 바다에 떠
있는 섬나라이다. 이 일본을 향하여 대륙에서 한개의 팔뚝이 돌출돼 있다. 그것이
조선이다. 조선반도가 일본에 적대적인 대국의 지배하에 들어가면, 일본을 공격하는
절호의 기지가 되어 배후지가 없는 섬나라 일본은 자국의 방위가 곤란해진다고 생각
했다\"고 적고 있다.
후소샤는 수정전 검정신청본에서는 \"조선반도가...절호의 기지가 되어\" 뒷부분
에 \"이러한 의미에서 조선반도는 일본에 끊임없이 들이대고 있는 흉기가 될 수 밖에
없는 위치관계에 있다\"고 까지 기술했었다.
이에 대해 우리 정부는 \"일본 방위를 위해 한국을 침략.지배했다는 한반도 위협
설을 강조하는 것은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자위전쟁으로 합리화하기 위한 것\"이라
며 수정을 요구했다.
◇ 한국강제병합 = 후소샤 교과서는 \"일본 정부는 한국병합이 일본의 안정과 만
주의 권익을 방위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영국, 미국, 러시아 3국은 조선반
도에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을 서로 경계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한국 국내에서는 일부에서 병합을 수용하자는 목소리도 있었으나...\"등으
로 기술하고 있다.
이는 한국병합과정에서의 침략행위와 강제성을 은폐하고,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합법적인 것으로 기술한 것으로 지적돼 수정이 요구됐다. 수정요구 의견에는 극소수
친일파를 일부러 부각해 기술했다는 지적도 포함됐다.
일본문교출판도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만주 하얼빈에서 암살했다.그래서
일본은 한국을 병합하며 식민지로 지배했다\"며 한국강제병합이 안중근의 이토사살때
문인 것으로 기술해 일본의 계획성을 은폐, 역시 수정요구대상이 됐다.
◇ 임진왜란의 침략성 정당화 = 후소샤 교과서는 임진왜란 부분을 기술하면서 제
목을 `조선출병\'으로 달아 일방적 침략사실을 숨긴 것으로 수정대상으로 요구됐다.
또 \"히데요시는 명을 정복... 인도까지 지배하려는 거대한 꿈에 빠져들어 대군
을 조선에 보냈다\"는 부분도 임진왜란의 원인을 명나라 정복과 히데요시의 개인적
망상으로 돌려 기술한 것으로 지적돼 역시 수정 요구대상이 됐다.
기존 7종 교과서 중 하나인 일본 문교출판의 이 부분 기술도 \"조선이 (명을 공
격하기 위한) 일본군의 통행허가를 거절하자...대군을 조선에 보냈다\"고 적어 전쟁
발발의 책임을 조선에 전가했다.
7종 교과서 곳곳에 사용되고 있는 \"군대를 보냈다\",\"바다를 넘는다\"는 기술도
침략성을 은폐하기 위한 표현으로, 고쳐야 할 부분으로 지적됐다.
◇ 임나일본부설 = 후소샤 교과서는 \"바다를 건너 조선으로 출병...임나라는 곳
에 거점을 둔 것\", \"고구려는 백제와 임나를 지반(地盤)으로 한 일본군의 저항으로
인해\", \"임나로부터 철퇴하고, 반도 정책에 실패한 야마토 조정...\" 등의 내용을 담
아 임나일본부설을 기정사실화했다.
그러나 임나일본부설은 한국과 일본의 50여년간 연구결과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설이므로 명백한 오류라는 지적이며 임나에서 철수한 것을 전제로 기술한 것은 오류
이므로 삭제해야할 것이라는 수정요구의견이 제시됐다.
도쿄(東京)서적 등 6개 기존 교과서도 \"6세기에 야마토국이 한반도에서 세력을
잃었다\", \"세력이 약해졌다\", \"야마토 정권이 한반도 남부에 세력을 뻗쳤다\"등으로
기술해 허구인 임나일본부설에 근거한 기술부분이 발견됐다.
◇ 한국사 폄하 = 고대부터 현대까지 일본사의 우월성을 증명하는 비교대상으로
한국사를 거론하고, 한국사를 언급할 때 조공, 종속, 속국 등의 용어를 사용한 것으
로 곳곳에 수정대상이 발견됐다.
후소샤 교과서는 \"고구려가 돌연 야마토 조정에 접근했고, 이어 신라와 백제가
일본에 조공을 했다\"고 기술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한국과 중국의 사서에는 없는 내용이며 6세기 이후 삼국이
일본보다 정치.문화적 우위에 있었다는 것이 한.일학계의 통설이기 때문에 잘못된
내용이라고 수정요구안에서 지적했다.
후소샤 교과서는 또 조선의 서구 열강에 대한 인식과 국제적 지위 부분에서 \"중
국의 복속국이었던 조선도 마찬가지...\"라고 운운, 조공체제하에서의 속국과 근대
식민지와의 차별성에 대한 설명없이 조선을 중국의 `복속국\'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또 전근대 동아시아 국제질서와 관련된 부분에서도 \"조선과 베트남은 완전히 그
내부에 들어가 중국 역대 왕조에 복속됐다\", \"일본은 중화질서 바깥에서 자유롭게
행동했다\"고 적어 당시 국제관계를 왜곡했고, 조선과 대비해 일본이 자주독립국이었
던 것처럼 기술했다.
도쿄 서적 등 4개 기존 교과서도 \"중국의 속국으로 위치지워져 있던 조선은 ...
일본과의 국교도 거절했다\"고 기술, 역시 조선을 중국의 속국으로 표현했다.
◇ 군대위안부 누락 = 후소샤 교과서는 일본군에 의해 자행된 가혹행위의 상징인
군대 위안부 관련 내용을 고의로 누락시켜 잔혹행위의 실체를 은폐, 수정요구대상이
됐다.
이는 최근 유엔인권위원회에 보고된 바 있는 국제보고서의 내용과 지난 93년 일
본 관방장관의 담화에서 위안부의 강제성과 일본군의 개입사실을 시인했던 것과 배
치된다.
도쿄서적 등 4개 기존 교과서도 군대위안부 관련 내용을 누락시킨 채 \"여성과
어린이를 포함한 일반 사람들도 많은 희생을 했다\"로만 기술, 역시 고의누락으로 수
정요구를 받았다.
◇ 동학농민운동 오도 = 후소샤 교과서는 동학농민운동을 \"동학의 난이라 불리는
농민 폭동...동학당은 서양의 기독교에 반대하는 종교를 믿는 집단\"등으로 묘사했다.
이는 반봉건, 반외세운동을 `동학의 난\'이나 `폭동\'으로 표현한데다 농민운동을
종교집단 운동으로 한정함으로써 오해의 여지가 있는 것으로 지적됐다.
오사카(大阪)서적 등 2개 기존 교과서도 \"동학을 믿는 농민들이 큰 반란을 일으
켜...\"로 기술, 동학농민운동을 `반란\'으로 규정지어 `항쟁\'이나 `농민운동\'등 객관
적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 정한론 = 후소샤 교과서는 \"1873년, 개국 권유를 거절한 조선의 태도가 무례
하다고 하여...정한론이 터져나왔다\"고 기술, 일본이 기존의 교린 체제를 일방적으
로 파기하려 했기 때문에 조선이 조약체결을 거부했던 당시 상황을 설명하지 않고
일본 입장에서 편파적으로 기술했다.
도쿄서적 등 4개 기존 교과서도 \"일본정부는 조선에 국교를 열 것을 요구했으나
조선이 응하지 않아 국내에 정한론이 일어났다\"고 기술해 역시 정한론의 발생원인을
조선측에 떠넘겼다.
◇ 강화도사건 계획성 은폐 = 후소샤는 강화도 사건을 \"일본 군함이 조선의 강화
도에서 측량하는 등 시위 행동을 했기 때문에 조선군대와 교전한 사건\"이라고 기술
했다.
이는 강화도사건이 조선의 발포를 유도한 계획적인 군사작전이었다는 사실 등
도발의 주체, 목적, 경위를 은폐한 것으로 수정요구 대상이 됐다.
데이코구(帝國)서원 등 2개 기존 교과서도 \"일본의 군대가 강화도에서 포격당하
는 사건이 일어났다\"고 적어 조선의 포격을 유도한 일본측의 저의를 은폐하고 강화
도사건의 원인을 조선측에 전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