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을 사람의 만남이 아름다운 도시로,
열린시대 새 지방자치를 만들어갑니다.
어느 토요일 오전 필자는 다섯 살 작은 아이와 함께 동네 놀이터에서 죽비의 내리침과 같은 말을 듣게 된다. 다름이 아닌 “까불어도 돼!” 화장실이 급해 아이에게 근처 상가 화장실에 다녀온다고 하고, 아이만 놀이터에 두고 화장실을 다녀왔다. 화장실을 다녀오니 아이가 그네를 타고 있는데 그 옆 그네에 타고 있던 건장한 체구(?)의 아이가 필자의 아이에게 말을 걸고 있다. 순간, 걱정이 앞선 필자는 걸음이 빨라졌는데, 아이들의 대화는 다음과 같았다. “너, 몇 살이니?”, “응 다섯 살”, “나는 일곱 살인데, 그래도 너 나한테 까불어도 돼!” 위 대화를 듣던 필자는 순간 죽비의 내리침과 같은 느낌을 받으면서도 그 아이에게 이렇게 말해버렸다. “너, 이 아이가 까불면 때리려고 하지?”, 그러자 그 녀석 “아니요, 재미있게 놀려구요.” 아이들의 눈높이와 어른들의 눈높이는 이렇게 다른가 보다. 어른들의 세계에서는 상대방과 자신의 여러 면을 재고, 또 재고 나서 충분한 고민 끝에 여러 이유로 관계 맺기에 노력하는 반면, 아이들은 두 살이나 많으면서도 동생과 함께 놀기 위해 “까불어도 된다.” 는 말을 하며 관계 맺기에 주저함이 없으니 말이다. 그런데 기실 필자에게 “까불어도 된다.”는 말이 죽비의 내리침과 같았던 이유는 다른 곳에 있다. 어른들의 모습이 온전히 투영된 작금의 등나무처럼 꼬인 정국상황에 충분한 해법이 될 것 같다는 느낌에서이다. 새 정권이 들어서면서 정부는 <한국방송> 사장을 해임하고, 검찰은 법원의 조정 권유를 받아들인 행위를 업무상 배임으로 의율하여 정연주 사장을 기소하고, 방송사에 경찰을 투입하고, <문화방송> 피디수첩을 수사하고, 와이티엔 사장에 대통령 특보를 임명하는 등 정권의 언론장악 또는 정권의 언론탄압이라는 오해의 소지(?)가 다분히 있는 일련의 조치를 취했다. 그리고, 와이티엔 노조는 구본홍 사장 출근저지 투쟁을 벌여 6명이 해고되고, 33명이 중징계를 받기에 이른다. 물론 이 방송의 대표 프로그램이었던 ‘돌발영상’은 강제 폐지되었다. 이뿐 만이 아니다. 이번 정부에 들어 25개 시민단체에 대한 정부 보조금 지원 제외를 발표하더니, 시민단체 압수수색, 시위피해 집단소송제 추진, 검찰의 때늦은 환경단체 수사, 비영리 민간단체 지원법 개정안 발의, 시민단체 회원명단 요구, 시민단체를 지원한 지자체와 기업에 대한 조사 등 시민단체를 옥죄는 다각도의 조치가 취해지고 있다. 급기야, 촛불정국에서 유모차를 끌고 아이들의 미래를 걱정하며 외쳤던 엄마들의 외침은 국감 현장에서 윽박과 조롱의 대상이 되고, 촛불 참가자에 대해 관대한 인상을 준 판사는 거대 언론으로부터 사상 검증의 대상이 되기에 이르렀다. 이래서야 민주주의의 정착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 중에 하나는 “관용”이고, “소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금의 정국은 관용은커녕, 소통을 위한 어떤 노력도 존재하지 않고, 오히려 편가르기만 더욱 심화되고 있다. 그리고 상대편에 대해 “까불면, 알지?”가 난무한다. 녀석이 만약 “너, 이제부터 형이라고 해”라고 말했다면 녀석과 필자의 작은 아이는 잠시 동안의 행복을 결코 누리지 못하였을 것이다. 국민들도 마찬가지다 이 정권 들어 전 정권보다 조금이라도 더 행복해지길 원한다. 공권력을 등에 업은 국가 및 다수파가 “까불어도 된다”고 주저 없이 말하는 장면을 접하는 것은 진정 요원한 것인가? 글 | 문현웅 협동처장 / 변호사